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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Mar 01. 2019

# 여행이 가져다준 변화들

에필로그_여행이 남긴 결과와 이후의 일들

하이타트라, 슬로바키아




하루 종일 바쁘다는 율리가 바깥일을 하다 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귀국길에 오르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많은 숙박객 중 하나가 떠나갈 뿐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와 준 그녀가 고맙게 느껴졌다. 공항버스가 출발할 시각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았기에 율리에게 라운지 한쪽 벽에 설치된 보드를 비워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준비해 간 사진 한 세트를 부착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여행의 초입에서 실험적인 방식으로 시작한 전시가 최종적으로는 그럴싸한 격식을 갖춘 사진전으로 변모했지만 초심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해서 최초의 마음가짐을 되살려 마지막 남은 것들을 소박하게나마 다른 여행자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은 순간을 담아낸 사진들이기에 내 뒤를 이어 아테네를 방문할 여행자들에게 사진 속에 담긴 에너지를 조금은 나눠줄 수 있을 듯했다. 


내 의중을 전해 들은 율리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간에도 뜻깊고 고마운 일이 될 거라며 반색을 표했다. 곧이어 그녀가 마리아와 함께 보드 위에 매달려 있던 부착물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나보다 예술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던 율리였다. 화려하게 꾸민 결과물보다 소신 있는 작업 태도와 상식을 뒤집는 시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 나를 자주 자극해 오곤 했다. 새 캔버스처럼 깨끗해진 보드에 사진을 디스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수다스러운 마리아의 조언에 미소로 화답하며 무질서와 질서가 병치된 진열 형식으로 사진을 하나하나 부착했다. 다 해놓고 나니 사진들의 배치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에스토니아에서 어느 복합 문화 공간의 중앙 기둥을 빌려 열었던 첫 전시와 마찬가지로 다시 실험적인 방식의 작은 사진전을 연 셈이었다. 귀중한 선물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율리 자매와 깊은 포옹을 나눈 후 짐을 짊어지고 숙소를 나섰다.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한국에서는 동료 예술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I am a forest’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응원해 주었던 그들이기에 만나자마자 회포부터 풀었다. 여독이 몰려오지 않을까 했던 우려와는 달리 심신의 상태는 상당히 좋았다. 이전의 여행들에서도 건강한 기운을 안고 귀국하곤 했지만 이번이 역대 최고였다. 


소피아, 불가리아


돌아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온 여행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뭐니 뭐니 해도 ‘I am a forest’ 프로젝트였다. 세계인들을 만나 우정과 연대를 나눴고, 예술의 힘을 빌려 나 자신을 꾸준히 발산했다. 수많은 이들의 직접적인 호의에 국내외의 격려와 지지가 더해지면서 여행을 출발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귀국했다. 이 세계의 주체라는 인식으로 밀어붙인 프로젝트였기에 모든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고, 계속해서 이어진 공감의 목소리들을 통해 나도 이 사회에서 나름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했다. 누군가가 이루어 놓은 사회적 소산들에 기대려 하지 않고, 세계에 직접 참여하려 했던 시도가 나를 더욱 다부지게 만들었다. 헤아려 보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는 총 40여 개국 출신 115명. 참여자들에게 숲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러기에 충분한 작업량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빚어낸 성과라 더더욱 뿌듯했다.   


레고랜드에 의한 춘천 벌목과 평창동계올림픽의 500년 된 가리왕산 원시림 파괴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벌여 나갔지만 사실상 프로젝트가 아우르는 바는 우리 안의 내적 질서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자연성의 복원, 관계의 회복, 객체에서 주체로의 복권을 우리들 자신에게 제안하고자 했다. 방향성이 그랬기 때문인지 어느 시점부터 프로젝트는 더 넓은 관점으로 참여자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유효할 화두였기에 더더욱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수고스러웠지만 그만큼 의미 있었다.  


많은 참여자들이 촬영을 마무리한 후 크고 작은 변화를 보인 점도 뜻깊었다. 작업을 끝내고 나면 참여자들의 표정과 태도에서 생기가 돌았다. 한동안 괴리되어 있던 정신을 다시금 대자연에 접속한 까닭인 듯 보였다. 심지어는 이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인생 자체가 아예 바뀐 이도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상대로 작업을 해 왔기에 그들에게서 일어난 변화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혜자는 물론 나였다. 자연성 회복을 끊임없이 되뇌며 기회가 닿는 족족 대자연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점점 더 내면이 단단해졌다. 지쳐가는 순간마다 값진 인연이 등장해 진심 어린 응원과 지지로 나를 다시 나아가게 했다.


플리트비체, 크로아티아


혹시 국내에서도 ‘I am a forest’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서 며칠 날을 잡고 원하는 이들에 한해 작업을 하겠다고 귀국과 동시에 공표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며칠로는 턱도 없는 수준. 이동 간에 어수선하게 벌여 온 프로젝트였기에 창작의 갈증이 잔뜩 쌓인 상태였다. 홈구장의 이점을 살려 시간을 여유롭게 안배하며 국내 신청자들과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행위 예술, 바디 페인팅, 결혼식, 누드, 연주, 명상 등 주제를 달리하며 30여 명의 참여자들과 협업을 했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일부 참여했다. 전통 피리 연주자가 자작곡을 만들어 프로젝트에 헌정하기도 했다. 태어난 지 169일 된 꼬마 신사도 참여해 몰도바의 4세 소년 드라고쉬가 가지고 있던 최연소 참여자의 기록을 경신했다.  


‘I am a forest’ 사진 시리즈를 들고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예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업 결과를 인터넷으로 하나씩 올릴 때는 몰랐는데 115명의 사진들을 나란히 배열해 놓으니 생각보다 모양새가 괜찮았다. 행사에 함께 참여한 예술가들 역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그 무렵,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지켜본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를 직접 메고 따라붙어 국내에서의 작업 상황을 한동안 인터넷에 소개해 주었다. 


여름에는 참여자들에게 약속했던 야외 예술 축제를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개최했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한 행사에 ‘I am a forest’ 프로젝트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자연이 풍요로운 강원도의 어느 자작나무 숲이었다. 사진만 전시했던 앞서의 행사와 달리 이번에는 참여자들의 자필 메시지도 모두 내걸었다. 숲에서의 전시 역시 참여자들과 약속한 바였다. 자필 메시지를 한 장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여행했는지 모른다. 축제 도중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사진과 자필 메시지를 하나하나 비닐로 포장하느라 고생스럽긴 했지만 참여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뿌듯했다. 사진에 더해 자필 메시지까지 함께 걸어 놓으니 앞선 전시보다 규모가 훨씬 웅장했다. 내 생애에서 두 번 다시 만들어 내지 못할 결과인 듯해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아쉬웠다. 


교외 풍경, 플로브티브, 불가리아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프랑스의 액상프로방스에 위치한 폴 세잔 스튜디오의 관계자에게서 인터넷으로 연락을 받았다. 아름다운 프로젝트라고 평하면서 스튜디오 측에서 시행하는 예술 지원 사업에 응모하라는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울 생각이니 지원 서류를 꾸미라고 권했다. 폴 세잔은 모네, 르누아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세기의 화가이자 피카소가 스승처럼 여겼던 회화의 거장. 후줄근한 차림으로 극동 유럽을 배회했던 나에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마음은 뿌듯했다. 저쪽의 적극적인 태도는 여전했지만 거품이 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고 응모를 유보했다. 


여행 도중 세르비아의 한 도시에서 전시회 개최를 제안받은 적도 있었다. 지역 문화예술센터의 관계자격 인사가 현지 젊은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다며 워크샵을 동반한 전시회를 열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시 당국의 지원까지 끌어낼 태세였으나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운 데다가 일정도 분주한 시기여서 차기에 행사를 도모하는 쪽으로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프로젝트 작업과 더불어 여행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자립 탐구 면에서도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자립적 삶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고, 관점과 자세도 좀 더 견고해졌다. 자기 주도적 삶의 커다란 방해꾼이었던 외부 의존적 태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인습, 내 안팎의 권위주의도 더욱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타성의 쇄도를 피해나가는 솜씨도 전보다 나아졌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과 부대낀 여정이었던지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좀 더 성숙해졌다. 길 위의 인연들과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삶에 대한 의욕도 커졌다. 세계 각국으로 더 넓게 확장된 관계망 역시 귀중한 자산으로 내 안에 쌓였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반 뼘쯤 더 깊어졌다. 사실상 내면세계의 토양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한 변화가 후에 하게 될 두 번째 필생의 여행을 이끌어 냈다. 


물론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았다. 대인배가 아니다 보니 별것 아닌 일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과 비교하자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은 발전이 있었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들로 남았다. 견문을 넓히고 활기를 채우는 정도에 그쳤던 과거의 여행들과 비교하자면 이번 여행은 필생의 여행이나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달팠지만 짜릿했고, 길었지만 풍요로웠다. 같은 길을 걸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기에 자신만의 주제어를 배낭에 깃발처럼 매달고 길을 나서길 권한다. 고양과 좌절 모두를 자양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한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구시가,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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