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기업의 기초자산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29장: 왜 경영자가 필요한가

by 도영진

2022년부터 4명의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가 온라인으로 매주 월요일 아침 7시부터 2시간씩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함께 읽고 토론합니다. 각자의 현장 경험과 관점이 만나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갑니다.


아래글은 2025년 9월 8일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들어가며

월요강독회 블로그를 어떤 챕터부터 시작할지 고민이 많았다. 책 <매니지먼트>는 제목대로 경영의 거의 모든 개념을 다룬다. 많은 경영학 서적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강조하는 요즘, 이 철학적인 내용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고민 끝에 제29장 '왜 경영자가 필요한가(Why Managers?)'를 시작점으로 골랐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전개하기 위해서 이 본질적 질문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영자의 존재는 당연해 보이지만, 100년 전 헨리 포드는 기업에 경영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저 자신을 돕는 '보조자(helper)'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럼 오늘날은 경영자가 있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강독회 참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의견을 모았다.


경영 체계란 기업이 커진다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인위적으로 구성해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구조가 형성되었더라도 규모가 커지거나, 환경이 변하면 인위적으로 그 구조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런 경영의 전환을 단순한 적응이 아닌 '상변화(Phase change)'라 정의했다. 마치 외골격으로 지탱하는 곤충의 구조에서 내골격을 갖춘 척추동물의 구조로 바뀌듯, 조직을 지탱하는 설계 원리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경영자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AI 등 파괴적 기술과 새로운 지정학 질서가 거의 모든 산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영자가 자기 기업이 어떤 체계로 돌아가는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전환의 시대, 우리는 기업의 핵심 자산인 진짜 경영자를 확보하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그 치명적인 질문을 던진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경영의 본질 (책의 핵심 내용)

경영은 소유의 위임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은 소유권에서 파생된 부속 기능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관(organ)’임을 강조했다. 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재산 관리'와 '경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이때 소유주가 경영 구조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면, 소유권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경영 구조는 '자연스럽게 진화'하지 않는다

조직이 커진다고 경영 시스템이 저절로 정착되지는 않는다. 복잡성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기존 방식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며,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대체되어야만 조직은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상변화(Phase Change)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경영자의 중요한 과업이다.


경영자는 '비용'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피터 드러커는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경영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경영자는 기업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빨리 가치가 떨어지며, 끊임없이 보충해야 하는 핵심 자원이다. 경영 팀을 구축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지만, 잘못된 결정 한 번으로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는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경영자를 향한 뼈아픈 질문들 (토론 내용)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

기업 수명은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S&P500에 머무는 기간이 지난 60년간 약 33년에서 절반 이하(16년)로 감소했다. 이는 기술적 파괴와 비즈니스 모델의 노후화가 가속화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매킨지(McKinsey & Company), EY 글로벌, S&P 500 트렌드 보고서 (2023)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은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고안한 이루 지난 100년간 거의 그 본질이 변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업계가 전면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 전환을 만드는 주체는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아닌 테슬라, 중국 스타트업, 혹은 빅테크 기업들이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전환은 결국 올드 패러다임에 속한 과학자들이 죽고 그 자리를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자들이 대체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원래 패러다임 전환기에 구시대의 기업들은 실패하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AI는 경영학 100년의 전제였던 '인간만이 유일한 의사결정자'라는 가정을 깨뜨리고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경영 구조의 '의도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기존의 낡은 경영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솔루션만 도입하는 것은 곤충의 껍질 속에 척추동물의 근육을 넣는 것과 같다.


기능 조직의 함정: '기술자'와 ‘관리자‘는 많지만 '경영자'는 없다

산업 전환기를 맞이한 오늘날, 경영자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칠수록 눈앞의 문제에 매몰될 뿐, ‘우리 기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훈련이 부족하다. 전체를 조망하는 경영적 사고의 결여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기업을 위태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된다.


전통적 제조 기업들의 경우, 견고한 기능 조직(Functional Organization) 구조가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거대 조직 안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도 커리어의 정점에 오를 수 있다. 예컨대 구매나 생산 등 특정 부문의 수장이 일반 기업의 사장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구조는, 리더들로 하여금 해당 영역의 ‘성벽’ 안에 안주하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숙련된 ‘기술자’나 유능한 ‘관리자’가 기업 전체를 책임지는 ‘경영자’로 진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제조 대기업 임원들이 타 산업군에서 경영자로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은 뼈아픈 방증이다. 그들의 탁월한 도메인 지식은 특정 시점의 특정 조직 안에서만 유효할 뿐,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경영 역량’으로 확장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경영자라는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신임 임원의 보임 기간이 평균 1.5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장 비싼 자원을 소모품처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경영을 하는 주체이면서, 조직에 의해 제대로 경영되어야(be managed) 하는 존재다. 리더가 끊임없이 성장하며 공동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마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글로벌 선도기업에 대한 벤치마킹이나 과거의 성공 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 구조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끌어줄 설계 기능을 구축해야 한다. 고도화된 경영 상태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과거에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남의 방식'을 해체하고, 우리 기업만의 전략적 골격을 세우는 고통스러운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 고민의 부재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전환기에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치명적 결함'이 될 것이다.


경영자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전문가(Expert)인가, 아니면 기업의 생존 구조를 설계하는 경영자(Manager)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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