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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Nov 24. 2020

私小한 우울에 대한 탐구

1. 나의 우울에 관한 짧지 않은 개요(1)

나의 우울의 시작은 어디일까? #.1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유전, 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인간관계, 뇌의 문제, 육체적 건강, 앞선 요인들에서 시작된 스트레스 등 다양한 대내외 사안들이 전부 언급된다. 우울증을 야기하는 이유들이 많다는 이야긴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지나칠 정도로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인간 사회 내에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는 반증이다. 우울증의 유발 요인은 다양한 게 아니라 어쩌면 전부다.


나 역시 우울감과 우울증을 오가며 힘든 나날들을 오랜 시간 보냈다. 우울증의 요인 만큼이나 다양한 우울증의 증상들로 고생했다. 종종 성마른 분노로, 마치 특촬물의 괴수 역을 맡은 배우가 모형으로 만든 작은 건물들을 박살내는 것처럼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기도 했다.


내가 처음 심각할 정도로 분노를 터뜨렸을 때는 딸아이가 5살 때 쯤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느라 꽤 오래 공을 들여 기억을 떠올려봐도 생각나지도 않을 아주 작은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나는 분노에 눈이 멀었고 딸 아이가 세면대에 세수를 할 때 쓰던 받침대 역할을 하던 화장실 의자를 밟아서 부수고 남은 조각을 집어던졌다. 딸아이는 울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의잔데”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녹색 괴물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얼굴을 감싸고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분노의 이유던 분노가 뻗어나간 상황이던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중심기압이 920 헥토파스칼이 넘는 초A급 태풍 같았고 아내와 딸은 태풍의 오른쪽에 위치한 듯 했다. 가정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강풍에 날아갈 듯 위태위태했다. 그 이미지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 사건이후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부순 의자 색깔만큼은 정확하게 기억난다. 민트색에 하얀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귀여운 제품이었는데 나는 그 민트색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딸 아이를 붙들고 내딴에는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의자를 찾으러 인터넷이며 오프라인 매장을 엄청나게 헤맸다. 모양만 똑같은 하얀색 의자를 구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그 의자가 화장실 한구석에 기념비처럼 남아있다. 종종 나는 그 의자를 쳐다보거나 한쪽 발을 올리며 딸을 오즈 같은 이세계로 날려버렸을 캔사스주의 허리케인 같은 화를 떠올려본다.


우울증은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죽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자살을 하지 않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는 철학적인 책 제목처럼 매일 아침 실존철학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책 제목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침 약을 먹을 때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간 새>의 잭 니콜슨처럼 처방 받아 먹어야 할  알약을 혀 밑에 숨겨두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한 백 알쯤 모으고 알약을 위장에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 솔직하게 말하면 한 열 알쯤은 한꺼번에 먹어보기도 했다.


출근을 하려고 차를 몰면서 생각만으로는 고양이만큼 죽었다 살아난 것 같다. 죽을 용기까지는 없어서 - 또는 죽을 만큼 중증의 우울증은 아니어서 또는 심각한 약의 부작용은 없어서 - 매일 덤프트럭이 내 차를 덮쳤으면 좋겠다고 상상만했다. 비겁한 마음에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진단을 받고 나서 부터 꽤 많은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다. 우울증이 사고를 유발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죽음을 생각하는 생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화라는 콘트롤 되지 않는 힘도 죽음에 대한 이상한 끌림도 모두 우울에 의한 것이었다. 이 두 에너지를 다스리기 위해서도 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요는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 남들의 네 배 정도는 되는 힘을 써야 했다. 회사에 갔다오면 정말 아무 것도 할 기력이 남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우호적이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으므로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무엇이라도 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 와중에 나는 점점 각질이 잔뜩 생긴 뒤꿈치 처럼 갈라졌다.


고갈이 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라고 하려고 또 부질없는 애를 썼다. 엄청나게 먹었고 무언가를 엄청나게 사 들이기도 했다. 소화를 시키거나 소유하게 되면 그것이 에너지가 될 거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울증은 이렇게 계속해서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나쁜 생각을 만들고 그것들을 지향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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