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는 천재야
이 글은 내 가치관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글에서 언급한 해법과 관련된 글이기도 하다.
곡을 선물 받아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있다. 좀 지난 일이긴 한데,
누가 어떤 노래를 들으면 내 생각이 나더라고 말했다.
혹자는 그게 무슨 선물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직접 작사를 한 것도 아니고 선물이라 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그 노래를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곡이었건만, 원래부터 그렇게 좋았나 싶었다. 지금도 나는 그 곡을 아주 특별하게 여긴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에게도 그런 노래가 생겼다. 그리고 아주 곤란한 가치관도 생겼다. 오직 이 곡을 서로 주고받고 싶어 하는 사람하고만 인생을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의 결혼은 다소 늦어질 것 같다.
공교롭게도 언급된 두 곡은 모두 아이유가 직접 작사를 했다. 역시 아이유는 천재야.
사소한 틈새의 1mm 그게 널 다르게 만들지
잔뜩 찡그려 웃는 버릇이나 자주 고르는 단어 하나하나
모두 바라보게 만들어 널 숨기지 마 Don't be silly
때때로 넌 자신 없어 하지만 그 수줍음조차 그저 좋아 난
흐리거나, 시리도록 맑을(손에 닿거나, 아득히 멀어질) 네 모든 날들의 어느 열렬한 관객이 될게
난 나의 너를 믿어 You're stunning, so stunning Go on 이 느낌 이어가
Ballad, Disco, Hip-Hop 상관없어 너 끌리는 대로 해
좋아 그건 또 그대로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I trust my you
가, 너만의 승리를 이뤄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오늘도 스치듯 그 말이 날 쉬게 하는 걸 아는지
스르르 기분 좋은 웃음이 나 또 어떻게든 파고들어 와 넌
어둡거나, 눈부시게 밝을(소란하거나, 아득히 고요할) 그 모든 날들의 어느 열렬한 관객이 될게
난 나의 너를 믿어 You're stunning, so stunning Go on 이 느낌 이어가
Ballad, Disco, Hip-Hop 상관없어 너 끌리는 대로 해
Oh 좋아 그건 또 그대로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막이 오르는 순간 조금 철이 없길 바라 놀아 어린아이처럼
다 숨죽인 무대 한가운데에서 그저 넌 너답게 웃어줘, 날아줘
넌 너의 나를 믿어 You're stunning, so stunning
Go on 노래를 이어가 Country, Classic, Lo-Fi 상관없어 너 끌리는 대로 해
Oh 좋아 그건 또 그대로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I trust my you
가, 너만의 승리를 이뤄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IU - 관객이 될게
세계가 독방 속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 삶이란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한 편의 영화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 세계 속 모든 카메라는 나를 찍고 있고, 나는 유일한 주인공으로서 의무를 다해 100년짜리의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의무감을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았다.
그 무렵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이 영화를 볼 관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관객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생각해 봤다.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볼 수 없다. 부모님은 나보다 먼저 삶을 마감할 것이며, 다른 이들은 그정도의 애정도 없거니와, 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만나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내 영화의 클립 또는 숏츠 정도를 봐주는 고마운 시청자들이 되겠다.
그렇다면 내 인생을 끝까지 지켜봐 줄 수 있는 관객은 누구인가. 배우자가 떠올랐고 자녀가 떠올랐다. 이변이 없다면, 그들은 남은 내 모든 시간을 함께할 존재들일테니 말이다.
그리곤 언젠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결혼을 해야만, 나의 영화를 지켜봐 줄 관객을 찾아야만, 이 삶이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겠다 결론을 내린 이후로, 누군갈 만나게 되면 세계관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내 세계를 마구마구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은 앞으로 남은 나의 영화를 지켜봐 줄 관객인가? 일단 지금까지의 영화를 봐라. 이걸 보고서 재밌었다면, 나의 남은 삶도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들은 내 영화를 좋아해 줬던 것 같다. 아니, 영화는 재미없지만 주인공이 좋아서 보는 그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좋아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관객을 기다렸고, 만났다. 이제 결혼을 하면 된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이거면 충분한 것인가? 꼭 이 사람이 아니어도 되지 않나. 나의 영화를 좋아해 주는 관객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이 사람이 아니어도 내 영화를 좋아해 줄 사람은 더 있을 것이다. 단지 이 관객을 먼저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이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나의 생각을 눈치챘던 것인지, 아니면 영화가 지루해졌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면 관계가 정리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더 좋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더 재밌는 영화를 찍어내는데 집중했다.
이전까지 나는 그렇게 좋은 연애 상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지금 영화를 찍고 있다. 영화를 잘 찍어내는 게 중요하지 관객을 돌보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관객이 원하는 것 또한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했다.
당시 만났던 연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1순위는 일/공부다. 2순위는 당신이다. 그다음이 나 자신의 안위다. 그들은 섭섭해했으나,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해해 주었다.
그러다 임자를 만났다. 누구나 맞기 전까진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그 사람은 일단 나의 세계관 다운로드를 아주 불편해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고 그랬던가. 하여튼 그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나는 관객을 찾고 있는 것인데... 당신은 내 영화가 재미없나? 당신이 나의 관객이 아니라면 관계는 이대로 끝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내 영화에 재미를 못 느껴도 좋다. 나는 계속 당신을 보고 싶다.
얼마지 않아 내가 관객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오늘은 어떤 분한 일이 있었고 어떤 내일을 기대하고 있는지. 그 모든 게 재밌었다. 간절한 마음도 생겼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행운은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법이다. 내 티켓은 만료되었고 영화관을 나와야 했다.
나의 관객이 되어 주었던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 당신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누군가의 관객이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이 무렵 '관객이 될게'라는 곡의 노랫말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나 관객의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가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소한 틈새의 1mm 그게 널 다르게 만들지
잔뜩 찡그려 웃는 버릇이나 자주 고르는 단어 하나하나
때때로 넌 자신 없어 하지만 그 수줍음조차 그저 좋아 난
네 모든 날들의 어느 열렬한 관객이 될게
막이 오르는 순간 조금 철이 없길 바라 무대 한가운데에서 그저 넌 너답게 웃어줘
난 나의 너를 믿어 뭐든 상관없어 너 끌리는 대로 해
넌 너의 나를 믿어 뭐든 상관없어 너 끌리는 대로 해
좋아 그건 또 그대로 I'm stanning, just stanning you, I trust my you
노랫말을 보고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이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하겠구나. 그리고 그 사람도 이걸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 해야겠구나.
몇 번의 연애를 통해 주인공이 되어도 보았고, 관객이 되어도 보았다. 이것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경험으로 얻은 나의 결론은 이렇다.
배우자란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는 관계다. 한쪽이 관객이기만 하다면,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 관객에게 영화 주인공은 유일하지만, 주인공에게 관객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자다. 따라서 서로에게 서로가 주인공이자 관객이 되는 것이 배우자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소조건인 것 같다.
최소조건이라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아직 모른다. 서로의 관객이 되는 관계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정해 보자면 이렇다.
관객이 주인공의 영화에 조금 더 개입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촬영감독이 될 수 있겠다. Stan 출신 촬영감독이야말로 주인공의 인생을 누구보다도 멋지고 예쁘게 담아낼 수 있지 않겠나.
더 나아가면 영화감독이 되어 더 멋진 영화를 찍을 수 있게 가이드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어쩌면 파트너 배역이 되어 같이 멋진 합작품을 만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쓰고 보니 글의 마무리가 조금 어설픈 감이 있는데,
내가 바라는 대상에 관한 기준을 글로 잘 정돈해 두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싶어 나름대로 써내려봤다.
부디 이 생각이 다른 분들에게도 적당한 참고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