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걱정 마, 산타는 존재한다.
당신의 일상을 지켜본다는 행위에 담긴 의미를 안다면, 산타클로스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언제나 기분을 약간 들뜨게 한다. 아마도 학습됐기 때문인 것 같다.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어릴 적, 나는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왜 기다렸을까? 성탄(聖誕) 절이라? 전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실제로 태어난 날도 아니지 않은가.
산타클로스 때문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선물 때문이었다.
울음을 참아낸 1년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뚱뚱한 외국인은 왜 나에게 선물을 주려 했던 걸까? 내 생일도 아닌데 말이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 이미 알아채고선 원하는 선물을 유도하곤 했다. 로봇으로 변하는 손목시계였던가.
생각을 한번 해보자는 얘기다.
가장 최초의 날에, 누군가는 최초의 산타클로스였을 것이다. 루돌프는 없었겠지만서도.
그자는 대체 왜 다른 이에게 선물을 주려 했을까? 줄 거면 예수님에게 줄 것이지.
사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을 지칭한다.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할아버지를 지칭하기도 하고, 루돌프가 아닌 악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애들이 맞거나 유괴되도록 내버려 두는 할아버지를 지칭하기도 한다. 심지어 할머니(Mrs. Claus)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산타클로스 중에서도 오리지널은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성 니콜라오(Saint Nicholas)다.
성 니콜라오는 튀르키예 남부 지역에서 태어나고 사망한 그리스도교의 성인이다. 당연히 백인은 아니다.
그는 금수저로 태어나 양친을 일찍 여의고 어린 나이에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운도 억세게 좋아 아침에 우연히 1등으로 출근하는 바람에 대리급 직원에서 지역 총괄로 초고속 승진하기도 했다(비유하자면).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인생인 것 같아 왠지 질투가 나지만, 자격은 충분했던 것 같다. 많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쓸 정도로 성품이 뛰어났고, 대주교로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만큼 유능했다. 그와 관련된 많은 미담이 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그를 산타클로스의 상징으로 만든 일화다.
세 딸을 둔 어느 가난한 집이 있었다. 그들은 가난하여 세 딸이 모두 사창가에 팔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니콜라오는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 그 집 담장 너머로 황금을 두고 갔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아버지에게 들키게 되었는데, 니콜라오는 비밀로 해달라 당부를 했으나 널리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디가 산타클로스인가.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굴뚝도 없으며 어린이에게 선물을 준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한 가족을 도왔을 뿐이다. 한 가족만 도왔을 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도우며 살았을 뿐이다. 그게 오리지널 산타클로스의 전부다.
이후 12세기 무렵 프랑스 수녀들이 성탄축일 전날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오 분장을 하고 착한 아이를 칭찬하고 나쁜 아이를 혼내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산타클로스라는 단어가 생겨났으며, 다양한 산타클로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 산타클로스(feat. 궤도)를 포함하여.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산타클로스는 대상인가 역할인가?
어떤 유일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냐 아니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냔 말이다.
예를 들어 Apple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스티브잡스인가 아니면 그 시점에 CEO를 맡고 있는 인물인가. 당연히 후자다. 스티브잡스는 Apple의 상징과도 같지만 그는 죽었다. Apple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므로 현재의 CEO가 Apple을 대표한다.
산타클로스는 어떤가? 산타클로스가 대상이라면 성 니콜라오를 지칭해야 할 것이고, 역할이라면 지금 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산타클로스가 될 것이다.
세상에 이미 다양한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질문의 답이 후자라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산타클로스는 대상이 아니라 역할이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드디어 우리는 산타클로스, 이 뚱뚱한 외국인 할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작자에게 찾아가 물어볼 수 있다. 대체 당신은 왜 예수님의 생일날 나에게 선물을 주려 했는가?
성 니콜라오와 오늘날 산타클로스의 공통점으로 산타클로스의 역할을 정의해 보자.
크리스마스라는 특정 시점에 어떤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은 12세기 무렵의 수녀님들이다. 심지어 당시엔 그 시점이 12월 5일이었다. 따라서 꼭 어떤 시점에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성 니콜라오와 산타의 공통점은 아니다.
같은 논리에서 굴뚝에 들어가는 것도, 루돌프나 악마 크램푸스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빨간 옷을 입는 것도 모두 공통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역할 요건을 소거하다 보면, 단 하나의 공통점만 남는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
성 니콜라오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지켜봤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그는 지역 주민들의 배고픔을 지켜봤고, 나쁜 푸줏간 주인에게 갇힌 어린이들의 고통을 지켜봤으며, 무고로 누명을 쓴 청년들의 억울한 마음을 지켜봤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줬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내어주거나 자신이 직접 행동하여 채워줬다. 세 딸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그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지 않았지만, 성 니콜라오는 지켜보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내어줬다.
산타클로스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무엇이 꼭 필요한지를.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잠 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낼 때 장난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캐럴 - 울면 안 돼 中
자, 이제 당대의 산타를 찾아낼 차례다. 그래서 물어볼 차례다. 당신은 예수님의 생일날 나에게 왜 선물을 주려고 하는가?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자, 그래서 나에게 지금 무엇이 꼭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 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당신이 성인이라면, 이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보통 자기 자신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려면 나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언제 잠들었고 일어났는지, 언제 짜증을 냈고 장난을 쳤는지를 모두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말이다.
나도 지금의 산타클로스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적 산타클로스가 누구였는지는 알고 있으며, 직접 산타클로스가 되어본 적도 있다. 그래서 조금은 알고 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의 생일날 다른 이에게 선물을 주려 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산타클로스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아주 특별한 날, 자신이 아닌 당신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본 사람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설령 크리스마스에 내가 불행할지라도 내가 일상을 지켜보고 있는 저 대상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 따뜻한 마음 말이다.
산타클로스는 그래서 선물을 주는 것이다. 꼭 크리스마스일 필요도 없다. 그 전날일 수도 있고, 그 전주일수도 있다. 12월 25일이라는 날은 수없이 많은 날 중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산타클로스는 단지 그날에 당신이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길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그날까지 매일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구해다 주면서 말이다.
이제 당신의 산타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전화해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라.
그리고 내가 언젠가 당신의 산타가 되겠다 말하라.
애들한테는 제발 산타가 없다고 좀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