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거나 또는 자살하거나

사랑에 관한 고찰 - 프롤로그

by 김영진

사랑에 관한 글인데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가 싶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카뮈도 비슷한 얘기를 했듯, 사랑이란 실존문제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수명이 다하기 직전까지 사랑하거나, 아니면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다. 따라서 사랑을 말하려면, 자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오직 사랑해야만 자살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부모든, 연인이든, 자녀든, 종교든, 돈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사랑을 고찰하게 된 계기는 에리히 프롬이었다. 아니, 너진똑이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더 잘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난 뒤에 다시 해보겠다는 결심 같은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였든, 처음 읽은 책은 프롬 3부작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loving)은 기술(art)인가, 아니면 감정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기술이며, 의학이나 공학을 익힐 때와 마찬가지로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전까지 사랑을 학문의 대상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감정 정도로 생각했다. 이번 고찰 또한 감정의 성질을 이해하고 더 잘 통제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부해야 할 대상이라니. 갑자기 고찰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지. 인간의 삶이 사랑과 무관할 때가 있었던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여태 살아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떻게 살 것이냐는 철학적 질문도 '①무엇을 ②어떻게 ③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이라면, 사랑 또한 학문이 되겠다.


뜬금없이 학문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랑을,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좀 웃긴 이야기지만 책으로 사랑을 배우고 있는 셈인데, 그동안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어 몇 편의 글로 정돈해둘까 한다.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에 관한 글을 쓰다니. 꽤 낭만이 있잖아?(자살을 이야기하며)




1. 사랑이란 무엇인가?


조금 가볍게 시작해 보자. 혹시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1. A: 사랑해~ / B: 얼만큼~?
#2. A: 사랑해~ / B: ~?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라 대답하기 어려웠던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 같지 않게 자꾸만 뇌정지가 오곤 했다.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얼만큼'을 계량하려면 일단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X를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고, 이것을 계량하면 Y만큼이니까 나는 너를 Y만큼 사랑한다.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먼저다.

X가 사랑인데, 이게 성립하려면 Y가 필요하다. 너는 Y를 가졌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을 정의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갖고 있는 특별한 감정은 분명 온몸으로 절절히 느껴지는데, 이 감정의 본질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곧잘 고장이 났고, 상대는 서운해했다.


사랑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인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비교해 보자. 우리는 두 개념 모두를 사랑이라 부르지만, 서로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대단히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개념을 막연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명확히 정의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류의 사랑에는 어떤 공통의 느낌이 있다. 말로 표현해 보자면 '내가 사랑한다'라는 느낌인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최초로 경험하게 되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2. 탄생의 폭력성에 관하여


최초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탄생의 폭력성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


당신이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태어난다는 것은 대단히 폭력적인 일이다. 당신은 어느 날 이 땅에 내던져졌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 어떤 집에서, 어떤 외양으로 태어날 것인지, 심지어 태어날 지 말 지 조차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신은 강제로 삶을 시작해야 했다. 가해자는 없다. 부모도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낳고 보니 하필 당신이었을 뿐이다.


갓 태어난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생존하기 바쁘다. 살기 위해 먹고 자고 싸면서 주변의 것들을 학습해야 한다.

그렇게 학습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만큼 똑똑해진다. 그리고 그제야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 삶은 무엇인가. 나는 어쩌다가 살게 되었는가. 나는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이었을 뿐이다. 대체 누가 나를 이런 세상에 내던진 것인가.

탄생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택권을 갖게 된다.


자살할 것이냐, 계속 살아갈 것이냐.


만약 갓 태어난 당신이 충분히 똑똑했더라면 선택이 쉬웠을 것이다. 태어난 환경이 마음에 들면 계속 살아가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자살하면 된다.

갓난아기인 당신에게 아쉬울 것은 없다. 잃을 것이 뭐가 있다고 자살을 망설인단 말인가. 고생길이 훤한 인생을 100년이나 살아가느니 차라리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십 수년을 살아버렸다면(사춘기가 올 때까지),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긍정하는 경험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3. 자기애에 관하여


태어날 때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자신을 고를 나르시시스트가 몇이나 있겠는가. 외모, 신체적 특징, 환경 등 누구나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요소를 갖고 태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태어난 직후에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기인 당신은 자신의 결점을 꿈에도 모른 채, 자아에 갇혀 세상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배고픔이 해소되는 기쁨을 느끼고, 숙면을 취한 다음 날의 상쾌함을 경험하며, 하찮은 몸뚱이로 보호자와 살결을 맞댄다.

아기인 당신에게 자기 자신은 완벽하다. 오직 자신으로만 세상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충분히 똑똑해져 다른 존재와 자신을 비교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당신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긍정한다. 이것은 당신이 태어나 경험하는 최초의 사랑인데, 바로 자기애다.


자기애는 이후 당신이 경험하게 될 모든 사랑의 근간이 된다.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자기애를 강화시키는 현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기였던 당신이 경험했던 보호자에 대한 사랑을 살펴보자. 그 시기의 당신은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를 '응당' 사랑해야 한다는 사고를 하지 못한다. 당신은 오직 자기애에 기반해 보호자를 사랑하게 된다. 당신의 관점에서 보호자는 당신을 바라보고, 안아주고, 먹여주는 존재다. 즉, 자기애를 강화하거나,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보호자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발전한다. 같은 맥락에서 당신은 자기애에 근거하여 당신의 집, 인형, 음식 등을 사랑하게 된다.




4. 삶이란 사랑하거나 또는 자살하거나


한번 탄생의 폭력성을 깨닫고 나면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살하거나, 살아가거나. 하지만 다행히도 당신이 탄생의 본질을 깨달은 직후에 바로 자살할 가능성은 낮다.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기애 덕분이다. 당신은 무의식 중에 삶을 긍정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인간이 똑똑해질수록, 사회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리고 노화가 진행될수록 실존적 위협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사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결국엔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탄생과 삶에는 아무런 이유나 의도 따위가 없으며, 모든 인간이 우주적 관점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사실은 어릴 적 무의식 중에 형성한 자기애만으로는 견딜 수가 없다. 이것만으로는 더 이상 자신을 지키기 어렵다. 자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보다 능동적으로 사랑을 해야만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글을 시작했다. 짧은 글에서 명쾌하게 대답을 내어놓으리라 기대하셨던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단계에서 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번 글은 어디까지나 프롤로그다. 사랑이 무엇인지, 나아가 ①무엇을 ②어떻게 ③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편의 글을 통해서야 마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본격적인 고찰을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싶었다.

첫째는 사랑이 실존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고찰이 단순히 남녀간의 연애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랐다(물론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둘째는 너진똑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싶었다.


언제 이 고찰을 완성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산타클로스란 대상인가 역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