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건 쌀알만큼의 의지력
밤 10시, 두 아이를 재워놓고 부엌을 정리하는 시간.
살림 8년 차,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부엌이 깨끗해야 요리가 즐겁고 간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몸이 무겁고 귀찮아서 부엌 정리를 안 하는 날엔? 그다음 날의 아침밥도 엉망, 기분도 엉망, 의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반대로 부엌을 깨끗하게 치워놓고 아침을 맞이하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손 설거지를 하고, 싱크볼을 닦고, 조리대를 닦는 이 모든 과정은 사실 만만치 않은 노동이지만, 일단 쌀알만큼의 의지력이면 충분하다. 도미노가 쓰러질 때 하나의 나무토막만 쓰러뜨리면 되듯이. 일단 '식기세척기에 그릇만 넣자'라는 생각으로 일어서면 그 행동이 손 설거지를 하게 하는 의지를 만들고, 그다음, 또 다음 정리까지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 과학>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든 좋으니 생산적인 일을 그냥 시작하라.
원래 했어야 할 일이 아니라도 괜찮다.
어쨌든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이라도 하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단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시작하면 선조체와 전전두피질의 몇몇 부분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면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동력이 생겨난다.
분명히 귀찮은 노동이지만, 쌀알의 의지력이면 깨끗한 부엌 정리..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어찌 보면 운동과 같다. 운동도 시작하기 전엔 무척 귀찮고 피곤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활기가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조리대를 닦는 건 70~80%의 에탄올이다. 에탄올은 지방을 녹이고 단백질은 응고시키는 성질이 있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표면을 녹이고 내부 단백질을 응고시켜 살균효과가 있다. 게다가 기름때(지방)도 쉽게 지울 수 있어 주방에 안성맞춤인 소독제다. 그러나 고농도의 에탄올이 폐로 들어가면 호흡기에 자극이 될 수 있으니, 수건에 묻혀서 닦기!
조리대까지 말끔히 닦으면 오늘 요리는 마감이다. 개운하게 소파 위에 몸을 던져 휴대폰으로 딴짓을 시작한다. 잠시 요리는 잊어두고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시간. 꿀 같은 잠도 푹 잔다. 내일 아침 부엌에 다시 섰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