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뜨때로 Oct 22. 2021

표고버섯 무밥

네 영혼을 만족시키는 식사

 첫째 아이는 무조건 낯선 음식을 거부했다. 처음 보는 음식은 무조건 "안 먹을래", 예전에 먹어봤어도 기억이 안 나는 음식이면 "싫어"하며 입을 딱 다물었다. 그렇게 낯선 반찬을 내주면 밥만 먹고 식탁을 떠났다. 심하면 며칠 내내 맨 밥만 먹는 날이 이어졌다. 화를 내봐도, 어르고 달래 봐도 굳게 닫혔던 아이의 입. 어찌나 그 입이 원망스럽던지.. 밥 먹이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시기에 머리를 쥐어짜며 만든 것이 채소밥이었다. 그래, 밥은 잘 먹으니까 밥에 영양소를 몰아넣자. 쌀은 쌀눈이 살아있는 칠 분 도미로 바꾸고, 여러 가지 채소를 잘게 다져서 쌀과 함께 밥솥에 넣었다. 채소들은 고온고압에서 쉽게 뭉그러졌다. 완성된 쌀밥과 함께 섞어주면 더욱 꼭꼭 숨길 수 있었다. 두근두근.. 시치미 떼며 아이에게 주었더니 완전 성공이었다. 아이는 배부르게 먹어서 행복하고, 나는 깨끗한 그릇을 보며 행복한 그런 신박 효자 템이었다. 그 뒤로 얼마나 채소를 다졌는지... 몇 달 내내 채소밥을 했다. 남편도 자연스럽게 채소밥을 먹게 되었다. 영양가도 있고 반찬 걱정도 없애주니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는 줄 알았지만.. 남편은 아니었나 보다.



 

평소처럼 밥을 그릇에 담으려는데,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즉석밥 있어? 나는 채소밥 냄새.. 별로야.”

 아, 우리 남편의 후각 능력이 있었지.. 잊고 있었다. 후각 둔감자인 나는 '전혀 냄새 안 난다'며 점점 더 많은 채소를 다져 넣고 있었던 때였다. 채소가 적게 들어간 초반엔 채소 냄새가 참을 만했겠지만, 점점 채소의 비중이 늘어나자 이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는 정도까지 온 듯 싶었다. 아이고.. 동상이몽이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그러나 '이제 밥 어떻게 하지' 고민이 더 컸나 보다. 미안한 마음보다 이 기발한 메뉴를 거부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찬장에 있던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쌀 100%의 밥을 내주자 남편의 표정이 사뭇 편안해 보였다. 하긴 사람마다 다른데.. 존중해야지. 매운 걸 못 먹는 나 때문에 남편이 늘 떡볶이를 순한 맛으로 시키는 것처럼.. 

 그 뒤로 채소밥과 일반밥을 따로따로 차렸지만, 다른 종류의 밥을 냉장고에 넣고 꺼내고 데우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채소밥은 우리 집 식탁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가 크면서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했던 채소밥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다시 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도 편식이 심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네 영혼을 만족시키는 식사시간이 될까? 그 고민 속에 다시 생각난 채소밥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클레임을 걸은 역사가 있기에 아무거나 넣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주로 밥에 무엇을 넣어 먹지? 밥과 어울리는 향이 뭘까? 밥과 함께 넣어 먹는 걸 영양밥이라고 하나?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본다. 콩나물 밥? 연근 은행 밥? 톳밥? 시래기밥? 표고버섯 무밥? 표고버섯 무밥! 이거다! 

 표고버섯은 한 봉지 사서 쓸 것만 빼두고, 나머지는 햇빛도 바람도 모두 잘 드는 창가에서 이틀 정도 말린다. 주로 빨래 너는 건조대 위치가 딱이다. 이렇게 하면 표고에 비타민D가 더욱 많이 합성되는 것도 있지만, 마르면서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보관도 더 오래 할 수 있다. 미리 빼 둔 표고버섯을 물에 재빨리 씻고 잘게 다져준다. 밑동도 버리지 않고 빠짐없이!  무는 쓸 만큼 잘라서 채칼로 썰어준다. 길게 썰린 무채를 가지런히 잡아 도마에 놓고 칼로 다져준다. 무는 쌀과 다름없이 하얘서 나중에 밥 짓고 보면 정말 보이지 않는다. 무에는 소화효소가 풍부하지만 열에 가열하면 다 파괴되어 없어진다고 한다. 대신 식이섬유와 다른 비타민들(주로 비타민 A)로 만족을 하는 수밖에..


 쌀을 씻고 물을 붓는다. 무에서 물이 나오므로 물은 조금 적게 넣는다. 다져둔 표고버섯과 무를 넣는다. 취사 버튼을 누른다. 


 남편은 양념장(간장, 다진 마늘, 설탕, 고춧가루, 깨)과 같이 내어주고, 아이들은 그대로 먹는다. 반찬은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치킨너겟. 멀리서 보면 맨 밥에 너겟뿐이지만, 버섯(표고), 채소(무), 고기(치킨)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밥상이다. 양념장의 마법으로 어른들도 짭조름하게 두 그릇 뚝딱. 네 영혼들이 모두 만족하는 식사였다. 내일은 또 밥에 무얼 넣어 먹을까?

이전 09화 치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