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뜨때로 Oct 18. 2021

파전

1차 산업과 원시인류

 첫째 아이가 6살, 둘째 아이가 17개월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은 남쪽의 작은 소도시에서 살았었다. 우리나라 지도로 보면 서울보다 제주도가 가까운 곳. 이름엔 '시'가 붙었지만, '시'같지 않던 곳. 그곳에 살게 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바로, 농작물은 '수확한다’라는 사실이었다.


 요리의 첫 단계는 식재료 구하기이다. 이사 전까지 우리 부부에게 식재료 구하기란 당연히 ‘식재료를 사는 것’이었다. 즉,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가득 담아 집으로 온다는 개념이었는데, 이 작은 도시에서는 그 개념이 조금 더 넓었다. 아파트 옆 노지에서, 산 나무에서, 도로 옆에 쫙 펼쳐진 밭에서 식재료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면적 중 절반이 논, 밭, 과수원이다 보니, 사람들은 텃밭에서 키운 걸 뽑아 오기도 하고, 산에서 자란 열매를 따오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마트나 시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이렇게 1차 산업(농업, 임업 등)이 지천에서 자라고 있으니, 그 속에서 나도 자연스레 제철 채소, 과일을 익히게 되었다. 이렇게 얘기하니 요리의 기초인 식재료를 공부하러 유학 갔다 온 기분이네.


"이거 우리 친정에서 키운 건데 좀 가져갈래?"

"이번에 따온 건데 좀 가져가~. 우리만 먹기엔 너무 많아"

 고구마, 깻잎, 파, 가지, 애호박.. 그렇게 받아온 채소들은 왜 사 온 것보다 더 애정이 가는지.. 왠지 더 유기농 같아 보이는 건 착각일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신선한 재료에 비해 내 요리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집 저 집은 나물 뚝딱인데, 음.. 우리 집 살림 초보는 이 귀한 손님들을 볶음밥 채소로 다져 넣거나, 계란말이 채소로 다져 넣거나, 카레로 다져 넣으며.. 홀대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쉬운 필승전략을 발견했는데, 채소에 약간의 반죽을 묻혀 기름에 지지는 '전'이었다. 예쁜 동그라미 애호박전, 바삭 고소한 감자채 전, 버터향이 입에서 터지는 가지전, 그리고 파파파, 파전!


1. 부침가루와 (손질된) 오징어를 사 온다. 쪽파는 원래 있음.
2. 오징어를 씻고, 칼로 잘게 다진다. 맛술을 쪼르륵 뿌려두고 냄비에서 한 번 데친다.
3. 반죽은 튀김가루 1 계란 1 물 0.8 비율! 반죽에 소금 간 잊지 않기.
4. 미리 손질해둔 쪽파를 먹기 좋게 잘라준다. 국수처럼 길게 먹는 파전도 매력 있음.
5. 프라이팬을 예열시키면서 쪽파에 반죽을 묻혀준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면 불을 중불로 줄이고, 반죽 묻은 쪽파를 얼기설기 올려준다. 오징어 조각들도 사이사이 골고루 배치해준다. 치이익.
6. 밑면이 다 익으면 식용유 한 숟갈 담아 윗면에 한 바퀴 둘러주고, 파전을 뒤집어준다.


 190만 년 전, 불을 사용해 최초로 요리한 인류에게 박수를 짝짝짝. 불이 없었다면 이 매운 채소를 맛있게 먹을 방법도 몰랐을 테니. 파에서 매운맛을 내는 황 함유 성분은 뜨거운 열을 받으면 달콤한 성분으로 바뀐다. 파 같은 채소뿐 아니라 해산물, 육류들도 불로 익혀 조리하면 맛도 더 좋아지고, 사람이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변한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책 <요리 본능>에 따르면, 인류가 불로 요리하기 시작하면서 동물들보다 영양분을 더욱 잘 섭취했고, 그로 인해 뇌가 독보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게다가 파는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 피로 해소에 좋고, 뇌세포 발달을 촉진한다고 하니 원시인류에게 찰떡인 음식이겠다.


 찢어지지 않게 뒤집는 건 '감각, 힘, 스피드' 삼박자가 갖춰졌을 때만 성공하므로, 한 번 실패했다고 슬퍼하지 말자.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배로 들어가는 건 똑같다"라고 한다. 파는 초록색, 반죽은 연노랑색이어서 곳곳에 빨간색이 들어간 당근이나 홍고추를 섞으면 더 먹음직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간중간 투입된 오징어가 핑크색으로 익는데 뭘. 에잇, 못 참겠다. 깨져버린 파전 조각을 후후 불어서 입으로 쏙 넣어본다. 어느새 엄마 다리에 매달린 둘째 아이 입에도 넣어준다. 이렇게 가스레인지 옆에서 먹으니 더 맛있지 않니? 맛있게 부친 파전을 접시로 옮긴다.


 "빨리 와~"

 잘 부쳐진 파전 하나에 동그란 머리 세 개가 모였다.  <요리 탐구 생활>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불 앞에 옹기종기 모이지는 않지만, 대신 파전을 둘러싸며 동그랗게 모인다고 한다. 크크크. 




이전 07화 찜질방 계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