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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때로 Oct 08. 2021

토마토 파스타

당신의 젊음을 추억해요

 대학교 3학년 2학기, 교환학생으로 반년 동안 빈(오스트리아)에서 살았었다. 첫 자취였다.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냈으니까. 한국 기숙사와 달리 보통의 유럽 교환학생 기숙사에는 각 층마다 공동 부엌이 있어서,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토마토 파스타는 그 시절 그곳에서 주야장천 해 먹었던 요리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009년의 빈은 (한국) 쌀과 라면이 귀한 곳이었다. 대신 파스타를 라면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신라면, 삼양라면, 진라면.. 라면 종류가 많듯이, Barilla, Bertolli, Prego.. 그곳에는 파스타 종류가 많았다. 면도 소스도 얼마나 많던지.. 마트에 가면 한쪽 벽면을 파스타 재료가 다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안전한(?) 토마토소스 (pomodoro)로 시작했지만, 몇 번의 성공에 탄력 받은 나는 크림(alfredo), 바질 페스토(basil pesto), 알리오 올리오(aglio e olio) 소스까지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보이는 파스타였지만 조리방법은 간단했다. (신선한 재료가 부족한 유학생 버전이긴 했지만..)

1.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 면을 넣는다.
2. 익은 면과 시판 소스를 프라이팬에서 버무려주면 되었다. 양파나, 양파나 가지, 버섯 등의 신선한 재료가 있다면 소스를 붓기 전에 미리 볶아 소스와 섞는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알고 나서, 얼마나 파스타 사 먹는 돈이 아깝던지.. 여행을 가서도 지갑이 얇을 때면, 숙소 근처에서 파스타면과 소스를 샀다. (게스트 하우스 중 부엌이 있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의 소울 푸드였던 파스타.. 지금은 남편이 좋아해 곧잘 만들어 먹는 메뉴다. 그 사이 실력은 (쪼금) 늘어서 시판 소스 대신 홈메이드(homemade) 토마토소스를 버무린다는 것이 다를 뿐.


 소스 재료는 토마토, 다진 마늘, 치킨스톡, 올리브유

건져 먹을 채소로는 가지, 양파, 버섯.. 아무거나 골라잡는다. 재료들만 보더라도 얼마나 건강에 아름다운 음식인지.. 특히 토마토와 가지는 한식에서 잘 챙겨 먹지 않는 재료이기에, 이 때 듬뿍 챙기게 된다.


1. 가지, 양파, 버섯을 한입 먹을 크기로 썰고, 마늘은 다진다. 토마토는 작으면 놔두고, 크면 칼집을 얕게 내어준다.
2.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토마토를 먼저 익혀준다. 
3. 토마토 껍질을 살살 떼어 건져준다. 재료들이 탈 수 있으니 물을 조금씩 추가하면서, 토마토를 으깨준다.
4. 채소들이 익으면 치킨스톡으로 감칠맛을 올려준다. 매콤함을 원한다면 페페론치노 (매운 고추) 몇 개.
5. 마지막으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Fine(이탈리아어로 끝)!

토마토에는 리코펜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은 우리 몸에 들어가면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활성산소는 우리 몸의 세포활동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물질이지만, 너무 많아지면 세포를 공격하고 늙게 한다. 토마토의 리코펜은 익혀 먹을 때, 특히 올리브유에 볶아 먹을 때 더욱 흡수가 잘된다. 리코펜아~ 들어가서 내 세포들 좀 지켜줘!  뒤이어 토마토와 채소들을 같이 넣어 볶는다.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순간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먹고 싶은 음식보다는, 냉장고 속 재료에 맞춰 메뉴를 정하거나, 가족들 식성에 맞추어 요리하게 돼서 '언제먹지?, 언제먹지?' 하다가 며칠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게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요리는 얼마나 귀찮은지..  아침 저녁엔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길어서 혼자일땐 쉬고 싶은 마음이 식욕보다 컸다. 그래서 있는 반찬에 대충 먹거나, 라면으로 떼우는데.. 오늘은 별안간 기운이 났다. 이상한 날이긴 하다.


 소스가 묻은 면을 돌돌 말아 입으로 넣는다. 그래 이 맛이지.. 토마토 맛과 향이 23살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시킨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서 리코펜이 풍부한 (세포가 젊어지는) 음식을 먹다니.. 푸하하. 만약 꽃말처럼 음식에도 '푸드 메시지'가 있다면, 토마토 파스타의 '푸드 메시지'는... 이것이 어떨는지?

'당신의 젊음을 추억해요'


 23살의 내가 타임슬립으로 35살의 나를 보면 흡족할까?  얼굴에 기미가 끼고, 탄력없는 뱃살, 못 지킨 나와의 다짐들...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리와봐. 얘야, 내가 만든 이 토마토 파스타를 먹어봐. 얼마나 맛있니? 확실한 건..

"나는 너보다 파스타를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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