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긴 것들

12

by 영주

경찰을 그만두고 나서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경찰 생활이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경찰 일을 하면서, 그리고 그만두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112 상황실에서 하루에 수백 통의 신고 전화를 받으며 긴급한 상황들을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했던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그때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 한 건이 끝나자마자 다음 건, 그다음 건이 계속 들어왔다. 심정지 환자, 교통사고, 폭행 사건, 가정폭력. 모든 신고가 긴급했고, 모든 순간이 중요했다. 한 번의 실수로 누군가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나는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당황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이건 상황실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능력이다.

경찰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교육받은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만났다. 술에 취한 사람, 분노에 찬 사람, 슬픔에 잠긴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매일 마주했다.

파출소에서 일할 때 만났던 단골손님들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왜 이분들은 계속 같은 문제로 신고를 하실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분들도 그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하는,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웠다.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고, 때로는 나쁜 행동 뒤에도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황소만 한 개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도 그랬다. 신고자에게는 위협이었던 그 개가, 주인에게는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었다. 같은 존재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주취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울고 있는 신고자를 달래기 위해, 나는 듣는 법을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설명하고 설득하려고만 했는데, 선배가 건넨 담배 한 대로 주취자가 진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선배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담배를 같이 피우며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셨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화가 나 있던 사람이 진정되고, 공격적이던 사람이 차분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소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성급하게 조언하기보다는 먼저 들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해결책인지, 아니면 그냥 들어줄 사람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이것도 경찰 일을 하면서 배운 능력이다.

경찰 일을 하기 전에는 뉴스에서나 보던 일들이 실제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노인 방치. 이런 일들이 바로 옆 동네에서,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이웃 간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마다 느꼈다. 한쪽은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고 한다.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입장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런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나는 세상을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관련 뉴스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뉴스 속 상황이 실제로 어떤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조직에서의 경험은 조직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소 배우는 시간이었다. 계급, 위계질서, 불합리한 관행, 형식주의, 실적 압박. 이런 것들을 직접 겪으면서 나는 조직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거점순찰을 하면서 "경찰들이 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학교 통학 지도를 하면서 그것이 지방청장의 쇼맨쉽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진을 찍어서 올려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때마다 나는 조직이 얼마나 형식에 치우쳐 있는지 깨달았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은 조직에 속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조직의 한계를 아니까, 그런 환경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 일을 하면서, 그리고 그 일을 그만두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해진 틀에 갇혀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경찰 생활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일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나 자신과 그 일을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찰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은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 주변 사람들의 우려를 무릅쓴다는 것,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 모두 두려운 일이었다.

특히 부모님이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자랑스러워하셨던 부모님께 그만둔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면서 나는 용기를 배웠다. 불안하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남들이 뭐라고 하든, 안정을 포기하더라도, 내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

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교통사고로, 자살로, 돌연사로 갑자기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봤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마다 '삶은 짧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경찰을 그만둔 것도 그런 결심의 연장선이었다. 10년, 20년 후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경찰 일을 하면서 나는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일인지를 깨달았다.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봤다. 그런 현장들을 목격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작은 것들에 감사한다.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낸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이런 감사하는 마음도 경찰 일을 하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을 것이다.

경찰 일을 그만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경험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침착함, 이해심, 경청 능력, 현실 인식, 자기 이해, 용기,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경찰 생활이 내게 남긴 것들이다.

지금 나는 경찰복을 입고 있지 않다. 하지만 경찰로 살았던 시간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그 시간들이 나를 더 강하고, 더 지혜롭고,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어쩌면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나 자신과 그 일을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화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경찰이 된 것도, 경찰을 그만둔 것도.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내가 될 사람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경찰이었던 나를 기억하며, 지금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