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만두기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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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경찰을 그만둔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핵심은 경직된 조직 안에서 개인으로서의 나를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명감은 없었지만, 시민들을 도우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고, 좋은 선배들도 만났다. 댄스를 했던 선배님처럼 인간적으로 따뜻한 분들을 보면서 '이 조직도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파출소에서 시민들과 직접 마주하며 일할 때가 오히려 더 생생했다. 황소만 한 개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일,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었던 등굣길. 그런 일들이 경찰 일의 실체였는데, 승진하고 나서는 그런 경험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늘어난 건 형식적인 업무들이었다. 의미 없는 회의, 윗선 눈치 보기, 실적 맞추기. 시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조직을 위한 일만 늘어났다.


발언권의 부재도 문제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이 명확해도, 계급이 낮으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112 상황실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신고 처리 시스템에 명백한 문제점들이 보였다. 불필요한 신고들을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나, 긴급 상황을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절차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가볍게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점점 나는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조직이라는 기계 속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하는 작은 부품 말이다. 내 생각이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저항하고 불만을 표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체념하게 되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굳이 나서서 문제 제기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도전적이었는데, 조직 안에서는 점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신임 때 나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던 선배들처럼, 나도 후배들에게 그런 멘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바쁜 업무에 치여서 후배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때로는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내가 존경했던 선배들과는 달랐다.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일까?' 답은 명확했다. 아니었다. 나는 단순히 경찰복을 입고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경찰이 되기 전에는 그래도 내 나름대로의 생각과 개성이 있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그런 개성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경찰 일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시민을 도우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도 많았고, 좋은 동료들도 만났다. 담배 한 대로 화난 주취자를 달래주셨던 선배님, 아이들에게 경찰의 참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팀장님 같은 분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면들도 경직된 조직 구조 속에서는 제대로 발현되기 어려웠다. 좋은 의도를 가진 개인들의 노력도, 시스템의 벽 앞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내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 조직에서는 그런 기회를 찾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선례대로, 윗선 지시대로 돌아갔다. 창의성이나 자율성이 들어갈 여지는 거의 없었다. 시민들을 더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도 "원래 하던 방식대로 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조차 조직의 경직성 앞에서는 무력해지고 있었다.


사직을 결심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니 당연히 걱정되었다. 주변 사람들도 "미쳤냐",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냐"며 말렸다. 부모님은 특히 속상해하셨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이대로 계속 있으면서 내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20년, 30년 후에도 지금처럼 남의 눈치만 보며,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때 112 상황실에서 만났던 한 동료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10년만 버티면 편해져.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거든."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