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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o Feb 02. 2021

경이로운 폐차장(의 변신)

 더럽다고 놀리지 말아요. 폐차산업의 새단장

해결사들의 작업장? 을씨년스러운 폐차장의 모습

인기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에서 악귀 '지청신'이 자신의 본거지로 사용하는 '백조모터스'는 폐차장이다. 이 곳에서는 중견기업 '태신'의 해결사역할을 하는 배상필이라는 지하조직의 보스가 평범한 폐차장 사업을 운영하는 듯 하면서 실상으로는 태신그룹이 지시하는 살인청부, 협박, 납치 등 입에 담기도 어려운 무시무시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장훈감독의 2008년작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폐차장은 중요한 로케이션이었다. 깡패보다 깡패같은 배우 장수타(강수환)와 조직폭력배 넘버 투(소지섭)의 리얼한 격투장면을 담아내는 데 있어 이보다 더 멋진 장소가 어디있겠는가?


이와 같이 느와르영화의 단골장소인 폐차장은 겹겹이 쌓여있는 망가진 자동차의 이미지, 뚝뚝 떨어지는 폐유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모습, 빠루와 해머가 사방 곳곳에 널부러져 옆에 있는 무엇을 들고 싸워도 될 법한 그런 장소로 비춰지기도 한다. 영화의 로케이션 매니저가 격투장면을 찍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할만큼 폐차장의 그 이미지가 음습하고 괴기스럽고 마초스럽고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이다.


경이로운 소문에서 나온 '백조모터스', 영화에서 소비하는 전형적인 폐차장의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준다.


영화는영화다의 격투장면. 스트리트파이터가 생각나는 장면



폐차장, 이제는 자동차해체재활용사업장

자동차관리법에서 부르는 폐차장의 정식명칭은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다. 2010년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면서 폐자동차 해체부품의 재활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칭이 변경회었는데 말그대로 예전에는 차를 못쓰도록 부숴버리는 '폐차'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자동차를 부품별로 잘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동차해체재활용업계도 친환경, 첨단기술에 발맞춰가고 있다.

2014년 처음 문을 연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장은 그 규모부터 남다르다. 건축면적 10,000평, 높이 지상 30미터,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의 자동차자원순환센터를 준공하여 연간 30,000대 수준의 자동차해체재활용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보편적인 형태의 폐차장 20개소 수준의 폐차를 한군데에서 하는 것으로 전세계적으로도 이정도 규모의 실내형 자동차자원순환센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도 고양시의 자동차자원순환센터. 연간 30,000대의 폐차가 이곳에서 자원으로 탄생한다.


이곳에서는 일 100~150대의 자동차를 해체하고 재활용한다. 차량은 입고 즉시 검수요원에 의해 등급을 구분하게 되는 데 대체적으로 수출을 할 차량인지, 폐차를 할 차량인지, 폐차를 하게 된다면 어떤 부품을 중고부품으로 재이용할 것인지, 상태가 좋고 이전이 가능하다면 중고차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수하게 되고 등급에 맞게 각 섹터로 이동을 하게 된다. 이후 해체재활용 대상 차량은 다시 해체센터로 이송하데 되는데 이송된 차량은 40미터 길이의 해체라인에 탑재되어 자동차 조립공정의 역공정으로 해체가 이루어진다.


타이어, 범퍼, 연료통, 촉매, 배터리, 에어백, 냉매가스와 같이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반드시 분리해야할 기본품목을 처리하고 엔진룸, 실내, 외장부품, 하부새시를 공정별 순서대로 탈거하게 된다. 이러한 공정에 적용된 특허기술만 액상류 회수, 유리분리기술, 크레인설비 등 7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 전체 공정이 끝나고 난 깨끗한 자동차 차체는 500톤급 압축기로 운반되어 압축 후 자동차 파쇄업자에게 인계되어 철스크랩으로 생산하게 된다.  


자동차자원순환센터 내 해체라인 전경


분리된 부품 중 중고부품으로 활용할 상품들은 3,300평 규모의 부품물류센터로 이송하게 된다. 이부품들은 자체 ERP 시스템을 이용하여 언제 폐차가 되었고 어떠한 부품이 어떤 컨디션으로 어느 구역에 배치되었는 지 QR코드에 입력되어 저장하게 된다. 이러한 부품들은 일반 새제품의 1/3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소비자로서도 사용감은 있지만 제기능을 할 수 있는 양질의 부품을 경제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중고부품은 안전문제가 가장 고려되는 부분이다. 이에자동차관리법에서도 중고부품은 반드시 자동차안전기준 등에 저촉되지 아니 하여야 하며 주요 기능성장치에 대해서는 차종, 주행거리, 연식 등의 정보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138조(해체재활용대상자동차장치)>
③해체재활용과정에서 회수되어 자동차 수리용으로 재사용되는 중고부품은 자동차안전기준등에 저촉되지 아니 하여야 한다.
④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는 재사용되는 다음 각호의 주요 기능성장치 또는 부품에 업체명, 전화번호, 사용된 차종, 그 형식 및 연식, 부품의 명칭, 주행거리가 기재된 표지를 부착하여야 한다.
⑤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는 별지 제95호서식의 중고부품점검표에 주요 기능성장치의 손상 및 누유상태 등 이상유무를 기록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이 곳 자동차자원순환센터에서도 부품 입고 전 성능테스트, 부품의 안전 적치, 출고 전 테스트 등을 통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자원순환센터의 부품물류센터. 최대 24만점의 중고부품을 보관할 수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시설이다.


남양주에 있는 또다른 자동차해체재활용업체는 제조업으로까지 행보를 넓히기도 한다. 2009년부터 보급이 시작된 전기차의 폐차사이클에 맞춰 버려지는 전기차배터리를 이용한 캠핑용 전기저장장치를 개발해서 상용화하였다. 이 저장장치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사용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새활용하여 70% 이상 남아있는 배터리의 수명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경제적인 상품이다. 특히 최근 차박 열풍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의 캠핑용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구매자의 요구에도 부합하는 상품이 될 것 같다.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한 캠핑용 ESS 시스템


이와 같이 혁신을 선도하는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이제는 모두를 위한 재활용업 혁신이 필요

2021년 현재 전국의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는 539개사이다. 1980년대 50개 수준에 불과했던 업계는 자동차 보급이 확대될 수록 그 규모가 커졌으며 어느덧 10배 가까이 그 수가 늘어났다. 이는 자동차보급대수의 증가 뿐만은 아니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은 다른 환경산업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기준만 갖추면 등록할 수 있는 등록제 사업이다. 대부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는 환경산업들과는 달리 창업이 쉬운 편이라 업계의 장벽이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업장에서는 아직까지도 냉매가스를 회수하지 않고 대기중에 방출하고 있으며 부동액 등 액상류를 그대로 방류하고 있어 대기, 토양오염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친환경적이고 첨단기술력을 투입한 선도적인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장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영세한 규모의 해체재활용업장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연도별 폐차대수와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장의 수 변화


2020년 국내 등록 자동차는 2,400만대를 넘어섰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 2명 당 1대 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매월 10만대의 차량이 새롭게 등록되고 폐기되고 있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100만대에 달하는 폐차의 거래액수는 1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연간 수출되는 폐자동차와 중고부품은 그 이상일 것이다. 생산되는 고철스크랩은 연간 50만톤을 상회하고 있으며 그 외 자동차의 수많은 부품들과 자원이 다시 쓰이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최후방을 책임지고 있는 자동차해체재활용업계도 이제 그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제작사와 재활용업자가 한마음으로 재활용 혁신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과거 지저분한 오염물질의 온상이자 해결사들의 아지트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장 깨끗하고 가장 혁신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내부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폐차장이 아니라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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