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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o Apr 21. 2021

21세기 연금술 자동차 업사이클링

새로 쓰는 자동차 업사이클링 산업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7년,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국가부도 위기상황에 처하며 IMF로부터 구제금융 신청을 한 시기였다. 가파른 경제성장,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가 마구마구 쌓이던 시절, 그 시절 사치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는 일종의 유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도 넉넉하지 않은 집 형편이었지만 장난감 총은 2-3자루 가지고 있을 만큼 모든 게 풍족했던 시기였다. 


IMF가 퍼지고 난 후 뒤늦게 자각한 우리 국민들은 그 이듬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을 시작했는데 입던 옷을 다시 꾸미거나 가방을 수선하는 리폼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바야흐로 21세기. 김춘삼의 넝마주이 재활용, IMF 극복을 위한 아나바다 운동을 거쳐 새로운 자원순환의 흐름이 여기 있으니 바로 업사이클링이 되겠다. 


90년대 자주 보았던 아나바다 장터.


업사이클(Up-cycling)은 기존 재활용(리사이클(Re-cycling)), 재이용(리유즈(Re-use))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재활용은 제품에 쓰인 소재별로 자원을 추출해서 다시 만들 수 있는 원재료로 순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개념이고 재이용은 제품 그대로의 성상을 유지하면서 그 제품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반면에 업사이클은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에 디자인을 가미하고 상품의 질을 개선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더 좋은 제품으로 만들어 새롭게 다시 쓰는 개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한 훌륭한 기획과 상품이 이미 시중에 나와있다고? 놀랍게도 자동차 분야만 보더라도 그동안 다시 쓸 수 없어 버려지던 폐기물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기획과 브랜드들이 출시되어 있다. 




1. 현대자동차 리스타일 2020

2020년 11월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자동차 폐기물을 활용한 패션 제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2019년 폐가죽시트만을 이용했던 업사이클링에서 2020년도에는 6개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그동안 재활용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서 다채로운 제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알리기에리(Alighieri)는 안전벨트와 유리를 이용한 목걸이와 팔찌 같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선보였으며 이엘브이 데님(E.L.V. DENIM)은 가죽시트와 데님을 이용한 점프슈트를,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과 푸시버튼(pushBUTTON)은 버려지는 에어백 소재와 안전벨트를 이용한 다용도 조끼를 선보였다. 또한, 리차드 퀸(Richard Quinn)은 에어백 소재의 코르셋을, 로지 애슐린(Rosie Assoulin)은 자동차 카펫 원단을 이용한 토트백을 만들어 선보인 바 있다. 


사실 에어백은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에게도 골칫덩이였다. 부품으로 절대 재사용할 수 없고 화약과 플라스틱, 그리고 질긴 합성섬유로만 이루어진 이 에어백모듈에 큰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유리 역시 2중 코팅되어 있어 재활용하기 상당히 까다로웠을 뿐 아니라 가죽 역시 딱히 쓸 만한 곳을 찾기 힘들었던 폐기물이었다. 이러한 골칫덩어리 폐차 부산물이 다양한 용도의 패션제품으로 탄생하다니 어찌 반갑지 않았을까?


또한, 이번 협업이 주목받는 점은 완성차 업체에서 업사이클링 사업에 대해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작사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부분에만 치중하다 보니 재활용률 제고와 버려지는 부산물에 대한 처리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사와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이질적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협업체계가 하나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자동차를 통해 이런 멋진 제품들이 나올 수 있다니! (사진출처 : https://news.hmgjournal.com/)



2. 모어댄의 브랜드 '컨티뉴'

2017년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올린 한 장의 사진이 어마어마한 반향을 낳았다. 가족여행 중 올린 한 장의 사진에 찍힌 백팩이 어떤 브랜드냐 네티즌의 호기심을 불러모았고 이 제품은 다름 아닌 자동차 폐시트를 업사이클링하는 (주)모어댄의 '컨티뉴'브랜드의 제품이었던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방탄소년단은 환경을 생각하는 개념돌 이미지가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를 누비는 아이돌이 되었다) 컨티뉴 브랜드 역시 단종되었던 해당 상품을 재출시하고 SK이노베이션 등 굴지의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등 브랜드 입지가 매우 탄탄해지게 되는 효과를 맞이한다. 


이 사진 하나로 컨티뉴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현재도 컨티뉴는 한국 업사이클링 브랜드 성공의 단군할아버지로 남아 후속주자들의 롤모델로 삼는 최고의 브랜드이자 기획력의 성공 작품으로 보고 있다. 


3. 폐차 조형물 태국'반훈렉'

국내의 자동차 자원순환제도에 대해 비판할 지점도 있겠지만 국내 폐차제도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정말 체계적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자동차의 등록말소제도, 전문 폐차업자의 등록제, 그리고 자동차 재활용률 95% 달성 등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2중 관리하에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와 달리 멀리 태국의 경우에는 폐차와 관련된 법규정이 전무한 상황으로 전국 각지에서 오래오래 타고 쓰던 자동차를 길거리에 방치하거나 도로에 세워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태국 국내의 실정을 보고 폐차를 이용한 조형예술을 시작한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태국 양통에 위치한 '반훈렉'이 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가족기업으로 폐차를 분해해 뚝딱뚝딱 스크랩 조형예술을 시작했던 이 작은 기업은 2013년 본격적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태국 앙통에 대규모 박물관을 설치하고 어린이들에게는 트랜스포머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어른들에게는 자동차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예술가들의 멋진 솜씨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이들은 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도 진출해 폐차를 이용한 다양한 조형예술품을 전시하고 테마파트를 개장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는 폐기물 전문 처리기업과 협업을 통해 수도권에 스크랩아트 전문 테마파크를 개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놀라운 점은 모든 작품들이 자동차의 부품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 외형은 완전히 다른 로봇, 오토바이, 동물, 공룡 등을 표현했다는 점인데 실제로 그 거대한 위용과 디테일을 확인하게 된다면 새로운 스크랩 메탈아트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키덜트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8미터짜리 조형물




4. 폐차업계의 움직임

자동차의 쓰임이 끝나게 되면 결국 폐차를 결정하게 되고 그 폐차 대상 자동차는 자동차해체재활용업자(폐차장)에게 인계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이 폐차에서 중요한 유가자원은 해체되어 재활용업체에 인계되고 남아 있는 쓸모없는 자원들이 폐기물로 소각, 매립되는 것이 운명이다. 폐차업계에서도 이렇게 버려지는 자원의 경제성 있는 처리는 오랜 숙원사업이었고 이에 대한 대안과 연구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재미있는 업사이클링 기획도 있었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체 중 한 업체에서는 고객의 폐차부품을 이용한 조형물을 제작해주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캠페인을 진행했다. 단순한 폐차가 아닌 소중했던 추억을 피규어 제작을 통해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캠페인으로 홍보하며 폐차에 대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평가받았다. 


또 다른 업체에서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기획했다. 전기차 폐배터리의 경우 폐차 연령이 도래했을 때에도 전체 배터리 총 용량 중 70% 정도의 잔존가치를 가지게 되는데 이 정도의 컨디션을 가진 배터리를 자동차용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무리지만 이를 이용해 캠핑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웃도어 파워뱅크를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해당 제품은 결국 작년 특허청장 우수디자인상(GD)까지 수상하며 앞으로 아웃도어 캠핑족의 웰빙라이프를 보장할 채비를 마쳤다.


전기차배터리를 재이용한 아웃도어 '파워뱅크'(좌), 고객의 폐차부품을 이용한 조형물 제작 프로젝트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우)




아나바다 운동이 국민적인 캠페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1999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조상에 따르면 신세대들의 아나바다 운동 참여율은 11.5%에 그쳤다는 보고도 있다. 그 운동의 브랜드는 기억 남았지만 실제로 유의미한 운동이 되었는지에는 의문이 있다. 업사이클링 산업에 대한 의문점도 여기 있다. 유의미한 업사이클 브랜드와 기획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패션, 조형예술 등 디자인 중점 제품만이 주력인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제품들은 결국 유행에 따른 소비, 사치재로써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유인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재활용 소재라는 악조건에서 가격조차 비싼 점은 소비자에게 선택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 영역에서 업사이클링 제품이 나오고 기성 제품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제품 기획을 통해 업사이클링이라는 브랜드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 녹아드는 진정한 새롭게 쓰는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성공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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