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새 모델에 폐차 재활용 부품 넣는다
외환위기 직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한 줄 구호로 요약되던 ‘아나바다’ 운동은 한 세대를 관통한 기억이다. IMF라는 국가 위기 속에서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집안 구석구석 물건을 끌어내어 벼룩시장을 열었다. 그때의 아나바다는 ‘가계 살림’과 ‘국가 살리기’의 이름으로 시작된 절약 캠페인이었다.
2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나바다는 다시 호출되고 있다. 이번에는 가정이 아니라 굴지의 글로벌 기업의 생산라인에서다. 현대자동차가 ‘카 투 카(Car to Car) 프로젝트’를 내놓고, 폐차에서 나온 소재와 부품을 골라 신차에 다시 집어넣겠다고 선언한 순간, 자동차 시장에도 ‘아나바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현대차의 카 투 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차에서 나온 것을 다시 차로 되돌리는’ 순환 전략이다. 자동차의 핵심 소재인 플라스틱, 철강, 알루미늄과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모터 5가지를 따로 지정해, 폐차 단계에서 분리·회수한 뒤 고품질 재생 원료와 부품으로 만들어 신차에 재투입하는 구조다.
그동안 자동차는 사실상 ‘원웨이(one-way) 상품’이었다. 새 강판·새 플라스틱·새 배터리로 만들어져, 한 번 도로에 나가면 폐차장에서 철 스크랩이나 잡고철로 ‘다운사이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완성차 업체가 스스로 “처음 설계 단계부터 폐차 이후를 상정해, 다시 쓸 수 있는 부품과 소재를 얼마나 많이 돌려보낼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자원순환은 재가공단계가 최소화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폐차를 해체, 선별, 이송, 스크랩 등 과정이 늘어날 수록 발생하는 비용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만큼 자원순환부품, 제품의 도입에는 여러 장벽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 한 대는 철·알루미늄·플라스틱·고무에 더해, 리튬·코발트·니켈 같은 희소 금속을 집약한 거대한 자원 덩어리다. 괜히 폐차장이 도시광산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아니다.
여기서 관건은 “얼마나 많이 팔았냐”가 아니다. “한 대를 얼마나 오래 쓰게 했느냐, 폐차 이후 그 안의 자원을 얼마나 다시 끌어냈느냐”가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이 2032년부터 자동차에 적용되는 재활용 플라스틱 의무 비율을 규제하고, 그 중 일부는 반드시 폐차에서 나온 재활용 플라스틱을 쓰도록 하겠다는 것도 이런 흐름의 일부다.
카 투 카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환경을 위해 ‘좋은 일 한다’는 제스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폐차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해체·분류·재가공을 조직해야 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나중에 분해하기 쉬운가, 다른 차에 써먹을 수 있는 규격인가”를 따져야 한다. 순환경제는 재활용 공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설계·조달·생산·판매·수리·폐기까지 전 과정을 다시 선순환시키는 작업이다.
과거 아나바다는 소비자와 가계에 향해 있었다. “새 것 좀 덜 사라, 오래 써라”는 메시지는 늘 개인에게 떨어졌다. 정작 기업은 ‘팔면 끝’이었다. 팔면 팔수록 좋았고, 더 자주 바꾸게 만들수록 성공한 비즈니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동차 시장에서의 아나바다 운동은 이 구도를 거꾸로 뒤집자고 제안한다.
이 모든 것이 ‘기업판 아껴 쓰기’다. 소비자가 할 일은, 이렇게 만들어진 재생 소재·재제조 부품이 들어간 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나바다 운동은 한때 “덜 쓰고, 덜 사는” 운동으로 이해됐다. 그래서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반가울 리 없는 구호였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자원위기 시대의 아나바다는 다르다.
더 오래 쓰고, 다시 쓰기 위해 설계와 생산, 폐기와 재활용 전 과정을 장악하는 기업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는 구조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재료비와 탄소비용,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곧 원가 경쟁력이고,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곧 생존 전략이다.
자동차 시장에 불고 있는 이 변화는 그래서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전조다.
“더 많이 팔아야만 남는 구조”에서 “각종 환경규제에서 자유롭고,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이윤형성의 다변화"로 기업들은 생존을 염두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