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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100만 시대를 위한 전제조건

전기차 배터리 안전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by 토모

도로 위 파란 번호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2025년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기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75만 대를 넘어섰고, 충전 시설 역시 45만 기에 육박한다. 이제 전기차 대중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늘어난 보급 대수만큼이나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그림자, 바로 ‘전기차 화재’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와는 그 양상이 판이하다. 배터리 셀 하나에서 시작된 열이 순식간에 1,000℃ 이상 치솟으며 주변으로 번지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은 공포 그 자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화염이 배터리 측면 수평 방향으로 맹렬히 분출된다는 점이다. 이는 주차된 인접 차량으로의 확산을 가속화하며, 한번 불이 붙으면 전소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지하 주차장이 보편화된 한국의 주거 환경에서 전기차 화재가 단순한 사고를 넘어 ‘대형 재난’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필로티구조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문제이다. 필로티구조는 1층이 개방되어 공기 유입이 원활해 화재 시 '아궁이 효과'로 불길이 급속히 확산되며, 주차된 차량과 가연성 마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해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쉬워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정부와 국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2025년 2월부터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와 이력 관리제가 시행되었고, 제조물 책임보험 미가입 시 보조금을 제한하는 강경책도 나왔다. 특히 11월부터는 충전 사업자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를 보상하는 ‘무과실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 제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전기차 화재 안전 관련 법안만 48건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사회적 의제인지를 방증한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화재예빵 뿐 아니라 ‘배터리’의 생애주기(Life-cycle) 전체를 관통하는 안전 관리, 특히 사용 후 배터리의 재이용·재사용을 염두에 둔 인증 체계 구축으로 패러다임을 확장해야 할 때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량 수명이 다해도 70~80%의 잔존 성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사용(Reuse)하거나, 희귀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Recycle)할 수 있는 핵심 자원이다. 하지만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폐배터리는 결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실제로 전기차 화재의 상당수는 충전 중이나 주차 중에 발생하는데, 이는 배터리 내부의 결함이나 노후화가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즉, 배터리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관리하는 기술 없이는 전기차 운행의 안전도, 폐배터리 산업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배터리의 이력 관리제를 올해부터 시행하면서 배터리의 제작부터 등록, 교체, 폐기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력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배터리의 잔존가치등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등급을 매기는 사후 관리 표준을 확립해야 한다.


엄격한 인증 관리 체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첫째, 운행 중 안전 확보다. 정기적인 정밀 진단을 통해 화재 위험이 있는 불량 셀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다면, 지하 주차장 화재 공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둘째, 안전한 재이용 생태계 조성이다. 검증된 인증을 통과한 배터리만이 ESS 등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증 체계가 부실하면, 결함 있는 배터리가 시중에 유통되어 제2, 제3의 화재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안전’과 ‘자원 순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달려 있다. 철저한 배터리 이력 관리와 투명한 인증 체계는 화재를 예방하는 방파제이자, 100조 원대 폐배터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교두보다. 이제 전기차 정책은 ‘보급’을 넘어 ‘관리’로, ‘대응’을 넘어 ‘예방’으로 진화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배터리 사후 관리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전기차 시대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뼈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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