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st in Translation Jun 14. 2016

한국의 여성혐오

구세웅, 2016년 6월 3일, 뉴욕 타임스

원문 : South Korea's Misogyny


저의 어머니께서는 20대 시절에 약 2년 동안을 한국에 와서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즉, 저의 할아버지)는 가부장적 모습을 보였고, 어머니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제 어머니께서는 매우 보수적인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하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가 자신을 그다지 챙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 사이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는 금기에 가까웠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저의 교육을 위해서 떠난다고 말씀하신 어머니지만, 실상은 가정에 스며든 가부장적 양상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전히 캐나다에 적을 두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현재 서울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십니다. 함께 저녁을 드십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90대 고령으로서 몸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작금의 양상처럼, 어머니께서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께서 점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동시에 저희 어머니의 발언권이 힘을 얻게 된 이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가족에는 성평등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참고 견디면서 성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거라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은 한국에서 그리 적절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지난 5월 17일, 서울의 번화가의 한 화장실 안에서 여성이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터지자 한국 사회는 곧바로 충격과 비탄에 빠져버렸습니다. 언론에서 살인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매우 평범한 일이지만, 피의자인 30대 남성의 주요 행적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리벙벙하게 만들고도 남았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직후 그 남성 피의자는 기자들에게 여자들이 언제나 자신을 무시하거나 따돌렸기 때문에 이 같은 짓을 벌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살인사건은 한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길거리로 나와 그간 몸소 겪었던 여성혐오(misogyny)을 공론화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수많은 남성들은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여성들이 괜히 히스테리만 부린다고 반박했습니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한국이 고질적으로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라는 점과 더불어, 이것 때문에 한국이 엄청난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1세기에 진입했지만 한국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과거와 똑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여성들은 남자보다 아래인 존재로 취급되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들은 성차별, 성적 대상화, 그리고 폭력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뚜렷한 정책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그나마 최근 10년 동안 한국 국회에서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이 이번에 만약 통과될 시,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전진을 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법안은 성별이나 종교, 그리고 기타 요소들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성과 소수자들도 똑같은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미래를 위한 일종의 신호탄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암담할 뿐입니다.


한국 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에 보고된 폭력사건 가운데서 여성이 피해자였던 사례는 86%였습니다. 가장 폭력적인 사건들 대부분은 성범죄였고, 이런 경우에 여성들은 다른 종류의 범죄와 달리 더욱 크나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의 집도 그리 안전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자신의 배우자를 때리는 한국 남성들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낮은 임금을 받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을 TV나 영화는 더욱 비참하게 그것을 묘사합니다. 한국 영화들은 종종 여성 신체를 가지고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장면을 찍어서 대중에게 보여줍니다. TV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유명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삼겹살을 구우면서 "어린 아이돌의 뒤태보다 잘 익었다고(better-looking than the rear)" 말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이런 사례를 제시하면서 한국이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양성 평등 순위에서 145개국 가운데 당당히 115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일터에서 여성은 남성이 버는 것의 2/3 정도밖에 벌지 못합니다. 2015년에 발표된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한국의 대기업 348 군데에서 여성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3%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5월 17일에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서 한국 남성들이 보여준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여성혐오가 그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식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남성들은 온라인에서 구축된 추모 웹사이트에 대거 접속해서 여성들이 과민반응을 나타낸다고 수많은 리플들을 업로드했습니다.


한 남성은 페이스북에서 "네가 그렇게 무방비한 곳에 스스로 들어간 거잖아."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여성혐오가 만연하고 성적으로 불평등한 양상은 곧바로 한국의 가족에도 영향을 주는데, 특히 지금처럼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영향력이 강력합니다. 일련의 연구들은 선진국 특유의 낮은 출생률은 그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경향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알려줍니다. 지난해 한국의 결혼율은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생률은 매년 세계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안일이나 양육에 참여하는 한국 남성들의 비율은 전 세계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서 최저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에 45분 정도를 집안일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이는 여성의 1/5 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로 온라인에서 성역할 관련 토론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경찰은 한국의 온라인을 통제 및 관리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공문을 보내서 긴장감을 부추기는 글들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오프라인에서 갈등이 만연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까지 그것을 부추길 이유가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불쾌하다고 판단된 글이나 그림을 꾸준하게 삭제한 한국 정부이기 때문에 경찰의 이러한 조치는 그리 놀랍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공론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남성, 혹은 여성이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기 위해 쓴 글을 삭제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관련된 토론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답답한 기분이 들 정도로 소통을 억제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문제시하는 데 있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놔두었던(long-stalled) 차별금지법안을 이제라도 통과시키면 사회적 차별을 감소시키고, 법적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적절한 보상체계를 수립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희망적으로, 여성혐오도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간 UN을 비롯한 여러 관련 기관에서는 이 차별금지법을 가급적 빨리 통과시키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법안은 2007년에 무려 3차례나 통과될 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종교계의 로비와 기업 환경 위축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가결되었습니다. 


저희 어미니께서는 드디어 당신의 삶에서 평화를 찾으셨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딸의 인생에서 자유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듯 보입니다. "너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그는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먹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기준에서 이런 참회는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한국의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을 지금이라도 존중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강간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