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프랭키, 양영철 역, [청춘은 길어도 아프지 않다] 발췌
Q : 대학(무사시노 미술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Lily : 수업에 나가지 않았고 카페 같은 데서 친구들이랑 수다만 떨었어요. 창작활동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죠. 내가 대학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80%는 ‘도쿄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도쿄에서 살기 위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미대였어요. 하지만 매년 배출되는 수천 명의 미대 졸업생들 중에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고작 몇 명뿐이에요. 대부분 전문직으로 취직을 하고, 화가가 되는 건 취업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뿐이죠. 언제부턴가 대학이 취업활동을 위한 전문학교가 돼버렸고, 모두들 취직에 유리해지려 대학에 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에요. 그런 발상을 가진 학생은 왠지 시시하지 않나요?
Q :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건 없었나요?
Lily : 있었죠. 하지만 요즘 학생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 때는 엄청 거품경제였고, 아무리 별 볼일 없는 학생도 다들 채용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취업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거든요. 오히려 나처럼 취직을 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어요. 나는 운이 좋았죠. 놀고먹는 사람이 적은 시대였기 때문에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일자리가 있어"라고 말을 해주곤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 중 절반이 무직자라면 과연 나는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Q : 그런 시대였다면 취직만 하면 돈을 벌고 편하게 사셨을 텐데 굳이 본인의 길을 고집하신 이유는 뭔가요?
Lily : 내가 가야 할 길 같은 건 없었어요. 열심히만 하면 나도 4년 안에 졸업할 수 있었지만 시간을 벌 작정으로 유급을 했어요. 하지만 유급을 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무직 졸업자가 된 거죠. 학창 시절에는 다들 자신의 인생이 나쁜 방향으로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서서히 깨달아요. 자신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어른들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선택받지 못한 학생들은 점점 위축되어가요. 상황이 그렇게 되면 '재미없네, 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죠. 그리고 멋들어지게 '시시한 어른 1학년'으로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 세뇌당하게 되죠. 처음부터 의욕을 갖고 회사에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그런 녀석들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대학생일 때는 도쿄해상화재가 항상 '취업하고픈 직장 1위'였어요. 증권회사나 보험회사 같은 곳에 들어가 모험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지금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 많아졌고, 흔히 말하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죠. 생각은 아무렇게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직장 생활을 힘든 거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돼'라는 식으로 억눌려 있는 게 문제예요. 마치 공산주의처럼 말이죠. 그럴수록 젊은이들은 비겁한 어른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되고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될 거예요. 경기가 좋을 때는 젊은 피, 젊은 피 하면서 젊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분명 그들을 억압해 올 거예요. 젊은 사람의 가능성을 빼앗는 사회는 절대 좋은 사회라 볼 수 없지요. 그리고 '이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따르는 것도 절대 옳다고 볼 수 없어요. 여러분도 취업을 해야 하겠죠? 여러분은 어떤 회사에 취업하고 싶나요?
Q : 지금 무척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왕 할 거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Lily : 일이 되고 나면 좋아하던 것도 재미 없어지지요. 지나치게 일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편이 좋아요. 일은 그저 '일'일뿐 '생업'과는 다르거든요. 농부들의 오래된 사고방식에서는 밭을 일구거나 하는 것을 일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 작업은 '생업'이라 하고, 황무지를 일궈 다음 미래를 위해 그곳을 밭으로 만든다던가, 논길의 풀을 뽑아 작업하기 쉽게 만든다거나, 실제로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일이라고 하죠. 때문에 생업과 일은 별개로 생각하는 편이 좋아요. 어차피 먹고살긴 해야 하니까.
Q : 먹고 살아야 하는데 '대졸 무직자'가 된 Lily 씨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A : 전혀 먹고 살지 못했죠.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은 고리대금업자뿐이었어요.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었지만. 5년 정도 무직자 생활을 했는데 그 후에 글로 쓴 것들이 대부분 무직자였을 때 생각했던 거니까 결국 '생각하는 시간 유학'을 한 셈이죠. 하지만 당시에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랐어요. 요즘은 왠지 도구 이름이 직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메라를 만지는 사람을 '카메라맨'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난 어떤 하나의 도구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집착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귀여운 여자가 있으면 사진을 찍으면 되고,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으면 곡을 쓰면 되잖아요? 이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었지만 어떤 정해진 도구로 그걸 표현하려고 애쓰지는 않았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한 건지도 몰라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지만…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어떤 직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Q : 무직자였을 때 생각했던 미래상은 지금의 모습과 비슷한가요?
Lily : 막연하게 생각했던 모습과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환경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스무 살 때 그대로니까요. 모두들 스무 살 때 생각했던 걸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어렸어"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그때의 생각 자체를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4년이나 대학에 다닌 의미가 사라져요.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어린 시절의 생각을 실현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여러분이 회사에 입사해 스무 살 때의 에너지 넘치는 사고방식이나 자유로운 발상을 갖고 일을 한다고 쳐봅시다. 내가 만약 상사라면 그런 여러분을 "이 녀석 가능성이 보이는군"이라고 높게 평가할 서예요. 하지만 금세 회사 분위기에 익숙해져 그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거나, 상사에게 굽실거리는 녀석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직업에서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상상력이에요. 그런 게 그런 자신의 상상력을 버리고 "나는 그저 회사의 부속품으로 만족합니다"라며 행동하는 학생은 채용하고 싶지 않군요.
요즘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모두들 종신고용을 희망하죠. 하지만 나는 '왜 처음 만난 녀석들과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해?’ '그런 패기 없는 녀석들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통쾌할 정도로 모든 회사들이 하나 둘 망해가고 있어요. JAL도 곧 망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결국엔 망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상관없겠죠? 그리고 세상이 나빠져 있는 편이 뭐든 할 수 있어 편하기도 해요. 경제적으로 탄탄하게 자리가 잡혀 있고 완벽한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 지배 체제가 만들어져 있으면 성가신 일들이 많아져요. 하지만 피라미드 형태가 조금 엉성하면 기운이 넘치는 사람은 살기가 편하죠. 물론 기운 없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지만요.
요즘 보면 학원에 가서 머리띠를 두르고 공부하는 초등학생들 있잖아요? 정말 가여워서 견딜 수 없어요. 자신의 아이를 어릴 적부터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고교와 좋은 대학에 보내고 결국엔 좋은 직장에 취업시키기 위해 부모들이 기획한 일대의 프로젝트잖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흔히들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그런 회사들도 금방 망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회사가 무너졌을 때 그런 식으로 취업을 위한 공부 외에 어떤 훈련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 스무 살인 여러분에게 "지금 여러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된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세상은 점점 나약해지고 어른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지만 여러분을 위해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도 그 말을 꼬박꼬박 따르는 학생들은 취업을 하거나 독립해도 크게 성장할 수 없어요. 상대에게 '이 녀석에겐 뭔가 있어'라는 가능성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결국 그런 부분이고 그게 바로 능력이잖아요.
Q : 스무 살 때의 생각을 꺾지 않고 유지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Lily :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껄렁껄렁하게 대학을 다니던 녀석이 졸업한 뒤에 갑자기 취직해 자동차를 사고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나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외계인 같은 녀석이라고 늘 생각했었죠. 그 얘길 듣고 부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 녀석처럼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아, 그 녀석은 저런 걸 하고 싶었던 거구나” 생각했죠. 미대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모두들 예술에 대한 어떤 신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대학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의 그런 개념이 너무 신기했어요. 사실 미대라는 곳이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들고 고급 술집에서 “나 디자이너야"라고 으스대게 만드는 '룸살롱 디자이너'를 잔뜩 배출하는 곳이긴 하지만요(웃음). 그런 모습을 보면 "아, 넌 그 정도 인생으로 만족하는구나"라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부터 너무 성실하게 생각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어치파 사회에 나가면 사회성이나 협조성을 강요당하고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처음부터 움츠러들 필요는 없어요. 이왕 들어간 대학인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정도로는 말할 수 있어야죠. 그런 말을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만 학생으로 지내는 시간 동안만큼은 낙관적으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현실을 비관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현실을 비관해봤자 스스로 위축될 뿐이니까. 취업하고 나면 정말 따분한 날들이 시작될 테니까 일단 지금은 마음껏 놀아두는 게 좋아요.
Q : 어떻게 놀면 되나요?
Lily : 어떤 식으로든 상관없어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만화를 봐도 좋고 그중에도 최고의 놀이는 자위겠죠? 취직을 하고 나면 그렇게 우아한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거예요.
Q : 대학시절의 성경험은 어떠셨나요?
Lily : 나도 도쿄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숫총각이었어요. 대학생 때 사귀던 여자친구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는데 그때도 그렇게 섹스에 흥미를 갖지는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 가거나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서 노는 걸 더 좋아했죠. 진짜 섹스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30대가 되고 나서부터에요. 학생들이 하는 섹스는 상투적이에요. 키스하고 가슴 주무르고 애무하다가 삽입하는… 마치 정해진 수순대로 식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누가 그렇게 정한 거죠? 왜 학생들은 '처음부터 애무부터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틀에 박힌 섹스만 하다가 질려버리는 거죠.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어서 틀에 박힌 섹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금세 싫증을 내는 거죠.
Q : 요즘 학생들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Lily : 인간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진국이 되거든요. 젊고 체력이 좋은 시절 동안에는 고생을 더 많이 해보는 편이 좋아요. 젊을 때 일이 잘 풀리다가 말년에 회사가 망하거나 하면 절대로 일어서기 어려워요. 의대에 들어가면 99%는 의사가 되죠. 하지만 의대생들을 보면서 "저렇게 멍청한 녀석들에게 내 배를 열게 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잖아요. 나는 항상 "너희들 중 대부분은 의사가 되는 목표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내 배를 만지게 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어떤 의사가 될지 잘 생각해둬라"라고 말해요. 목표가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나는 이런 의사가 돼서 이렇게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처럼 가능한 멀리 있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해요. 눈앞에 있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곁을 스쳐지나가 버리거든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예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요. 학생들은 변하기 쉽지만 사회 상황이 달라져 심술궂은 어른에게 휘둘리기 쉬워졌다는 점이 가여운 거죠.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시시한 곳에서 일할 거 같아?"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요즘 학생들 역시 근본은 그대로인데 사회가 학생들을 그럴 만한 배짱이 없는 학생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참고 견디면 성공할 날이 있다"고 말하지만 예전에는 참고 앉아 있을 바위덩이가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의 썩은 돌덩이 위에서 3년이나 앉아 있는다면 아마 무릎이 다 망가질 거예요. "인내하고 3년만 참아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요즘 젊은이치고는 살아가는 방법이 너무 서툴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보다는 3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해온 사람에게 훨씬 더 가능성이 느껴지죠. 싫으면서 꾹 참고 3년이나 버틴 사람과 나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깐 무슨 일이든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세요.
항상 새로운 환경에서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건 언제나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것, 항상 새내기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모두들 "또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어"라며 흥미로워하곤 하죠. 예를 들면 카메라를 시작하면 "어떤 필름을 사용하나요?"라든가 "조리개는 몇 인 가요?"라며 물어오는데 나는 그런 게 무척 즐거워요. 선생이 돼서 남을 가르치기보다는 항상 새내기이고 싶어요. 기껏 푼돈 정도 벌어들이는 작은 회사의 사장이 자그마한 벤츠 열쇠를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며 자신만의 성공론 같은 걸 떠들어대면 "그걸로 당신 인생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라며 짜증을 내겠죠. 여러분은 "이런 어른은 싫어"라는 감각을 선명하게 갖고 있을 테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살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