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Brian Eno met Ha-Joon Chang
원문 : When Brian Eno Met Ha-Joon Chang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작곡가 겸 U2, 콜드플레이 음악 프로듀서)가 최근 자신의 앨범을 출시했다. 작품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급진적 경제학자로 알려진 장하준(Ha-joon Chang)과 함께 경제 상황부터 재즈, 그리고 공원에서 달리는 개들까지 모든 범위에 관련한 토론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디언] 기자인 캐스파 르웰린 스미스가 여기에 함께한다.
이건 브라이언 이노가 원했던 방식이다. 올해 64세인 그는 박식하기로 유명한데 경제학자 장하준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앨범을 설명하기를 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런던 노팅힐 근처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이번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앨범 [Lux]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만 했다. 그 대신에 자신이 직접 발명한 ‘스케이프’(Scape)라고 불리는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부터 예술 영역의 범위, 그리고 숫자와 소시지의 상관관계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장하준과 열띤 토론을 했다. 우리는 이밖에도 왜 미국의 극우 정치인들이 이라크 전쟁을 ‘실패’라고 간주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류했다.
출판사 편집자의 협력으로 이노는 장하준을 만났다. 올해 49세인 장하준은 경제학계에서 떠오르는 스타 경제학자다. 그는 몇 년 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일 출간했는데, 영국 가디언은 ‘능수능란하게 자본주의 신화의 몇몇 부분을 폭로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 출신으로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은 그간 록시 뮤직(브라이언 이노가 몸담았던 음악 집단)의 열혈 팬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토론이 진행되고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브라이언 이노와 장하준은 서로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알게 되었다.
브라이언 이노 : 우리 모두가 흥미 있어 할 주제가 하나 있어요. 바로 통제와 혼란의 중간 지점 말이죠. 몇몇 경제학자들은 당신에게는 통제 및 관리 관련 모델과 카오스적 관련 모델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당신은 사회주의자, 아니면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중간 지대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죠.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는 제가 만든 음악에서도 나타날 때가 있어요. 이번 앨범에 수록한 음악은 건축술과 조원술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속해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든 곡에 술책을 쓴 것은 아니에요. 저는 음악적 움직임을 위한 과정을 정교하게 구성했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살펴본 것뿐이죠. 어떤 일이 시작되기 이전에 먼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일이 벌어진 후 통제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그 과정을 조심스럽게 디자인했고 당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어냈어요.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괜찮은 결과물을요.
장하준 :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제가 자주 쓰는 방법론이기도 하죠. 정책 입안자들은 모든 것을 관리,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불확실성과 뜻밖의 상황의 요소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이런 요소까지 통제하려고 하죠. 이와 반대편에 있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살펴보죠. 소위 시장 자유 옹호론자들은 그 어떠한 규제도 필요 없다고 설파해요. 당신의 라이벌이나 동료들이 죽어도 문제없다고 하죠. 그렇게 될 시 모든 사람들은 위선적이 되거나 때려죽여서라도 장애물을 없애려 하기 때문에 시스템은 미쳐 날뛰게 됩니다.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은 이미 완벽하게도 ‘착오’ 임이 밝혀졌거든요. 그러나 현재 우리 주변에서는 이렇게 양 극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브라이언 이노 :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저것을 믿어라!”고 말하지 않나요.
장하준 : 인터넷 아마존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제가 출판한 책의 서평을 보니까, “음, 그는 시장 자유를 비판하기 때문에 정부의 대규모 경제계획을 옹호하고 있군.” 저는 실제로 그렇게 말한 적이 단 1분도 없었어요. 이것은 명백한 흑백논리(black-and-white)입니다. 오직 이분법적으로 사고를 합니다.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죠.
브라이언 이노 : 작품 창작을 할 때 당신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신과 남을 기쁘게 하는 것 별개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과 무엇이 올바른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지요? 제 작품을 말해볼게요. 이것은 하향식의 건축술이 아닙니다. 또한 카오스도 아닙니다. 저는 프리 재즈(Free Jazz, 1960년대에 유행한 전위 재즈)가 결코 아니에요! 그 이유는 자유로운 시장 기능에 음악적 요소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것처럼 보이는 프리 재즈는 결과적으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단지 당신의 근육이 움직이는 듯이 강제적이고 규칙적이에요. 자유롭다고 하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그렇게 자유롭지가 못해요. 당신이 그 강제, 혹은 속박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장하준 : 제가 쓴 책에서 바로 그 지점을 포착했죠. 저는 자유시장과 같은 것은 없다고 매번 강조했습니다. 모든 시장이 똑같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당신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무역할 것인가에 관한 규제 및 규칙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우리는 기저에 있는 규칙만을 완전히 수용하고 있다고 판단, 몇몇 시장은 대단히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해요.
브라이언 이노 : 아동노동(child labour)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셨죠?
장하준 : 예, 맞아요. 19세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동노동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근본을 해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이 아이들은 일을 하고 싶고, 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어 한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이건 어느 누군가가 강제로 아이들을 납치하는 행위와는 철저하게 다르다.” 하지만 오늘날 극우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노동시장에 되돌려 놓자는 주장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즐길 권리와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브라이언 이노 : 자주 빈번하게 발생하는 논란으로 나타났죠. 음, 제가 보기에 성숙해진 인간은 한번 어떤 것을 수용하게 되면, 아예 그보다 좀 더 근원적인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시스템에 편입된지도 실제 몰라요. 심지어 우리는 아동을 고용하지 않는 것이 반시장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자유 시장과 프리 재즈를 몇 번이나 언급을 하든, 요점은 “우리가 생각을 멈춘 그 순간으로부터 생겨진 원칙에 얽매여 있다”는 걸로 함축되는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마치 음악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서 만만의 준비를 갖춰 놓을 때 당신은 그동안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던 모든 방법론을 전수받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틴 팬 앨리’(Tin Pan Alley) 작곡가라면, 피아노에는 84개의 음표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중 두 개 사이로 당신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괜히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이것은 단지 매우 기초적인 규칙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음악 작곡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제가 뭐 불평분자(disagreeable sort of person)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규칙에서만 철저히 만들어진 것이 아닌 다름 음악을 제가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죠. 중앙 집권형 경제계획도 아니고 자유시장도 아닙니다. 하향식의 건축술도 아니고 프리 재즈도 아니에요. 저는 주로 1960년대 후반에 나온 테리 라일리(Terry Riley)의 작품 [In C]를 언급하곤 합니다. 이 작품 들어봤어요?
장하준 : 아니요.
브라이언 이노 : 최소한의 규칙으로 풍부한 표현을 극대화하는 음악 작품의 단적인 예로 꼽힙니다. 이 곡에는 52 마디가 있는데, 각 마디는 피아노의 C키(도)를 약간 변주한 프레이즈를 보여줍니다. 많은 연주가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요. 시작을 같이 해야 하며, 같은 템포로 연주를 하고, 그들이 원할 때마다 첫마디를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어요. 만일 당신이 클라리넷을 부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첫마디를 연주하다가 두 번째 마디로 옮겨가고 싶으면 두 번째 마디를 연주합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마디를 연주하고 싶다면 세 번째 마디로 옮겨가면 돼요. 20여 명의 연주자들이 각기 다른 마디에서 연주를 시작하면 아마 이 곡의 도입 부분은 각기 다른 음이 들리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마디를 오고 가면 자연스레 ‘도’로 모두가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매우 매혹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죠. 매우 조화롭게 시작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음악이 풍부해지고, 더욱 풍부해지고, 엄청나게 계속 풍부해지죠.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서로 같이 끝을 맺습니다. 끝이 시작으로 다시 수렴되는 독특한 과정을 지닙니다. 만일 하향식으로 이 곡을 완성하려고 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여튼 매우 아름다운 구성이에요.
장하준 : 모든 마디, 모든 파트가 아름다운 가요?
브라이언 이노 : 그렇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기도 하죠. 이것은 ‘작곡가가 함부로 결과를 예단해서는 안된다’라는 구절을 잘 따른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쩌면 중앙 집권형 경제 관련 정책입안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 : 바로 그렇습니다.
브라이언 이노 : 그들은 불확실성을 매우 귀찮아해요.
기자 : 브라이언 이노, 당신은 하향식 프로세스에 대해 얘기를 해주셨잖아요. 당신이 주장하고픈 맥락을 작곡가들로 적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나 아니면 심지어 테리 라일리 같은 사람. 그런데 포크 음악과 같은 것은 그러한 프로세스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브라이언 이노 : 라일리 사례를 들자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당신 주위에 오고 가는 음악적 ‘밈’(meme)이 있을 테고, 이것은 절대로 완벽하게 카피가 안 되죠. 아주 흥미로운 이론이죠? 예전에 그는 내가 만든 화성을 잠시 빌려가더니 “오, 정말 좋은데. 나 이것 한번 연주해 볼게.”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제 것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매우 생동감 있었어요. 클래식 뮤직이 완벽하게도 복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악보는 철저히 고유한 권한이 있기 마련이죠.
기자 : 장하준 교수님. 짐작컨대 모든 경제학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 정치가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의제를 설정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장하준 : 맞아요. 그런데 저의 시각은 ‘우리는 빵 한 조각으로만 살 수는 없다’ 예요. 우리는 정치적인 고려도 해봐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고려까지요. 요즘은 말이죠. 경제학은 모든 것은 돈을 얼마나 벌어줄 수 있느냐에 따라 정당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망라하는 총체적인 학문으로 변하고 말았어요. 대학이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을까?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과연 돈이 될까? 이러한 사고는 인생에 관하여 매우 극단적으로 그릇된 거예요. 당신이 경제학을 좋아한다면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돈과 시장을 통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세상을 원한다면, 그 세상은 아마 불행해지고 더욱 어려워지겠죠. 한번 상상해보세요. 저렇게 훌륭한 성당 건축물이나 미술 작품, 혹은 음악에 공작이나 왕이 전혀 후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막대기나 흙을 가지고 놀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경제학적으로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허비하는 시간’(waste time)을 과감히 수용하는 인간의 본성은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현재 존재하는 것이고요.
브라이언 이노 : 장하준 교수는 혹시 내가 다음에 책을 낸다면, 제목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말씀해주셨네요. 제목은 ‘허비하는 시간!’
기자 : 점점 더 긴박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 게 있는데요. 지난 수십 년간 사회적인 양상을 보면 우파의 사고방식이 패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약 20년 전에 태동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경향의 우파는 현재 승리를 거뒀는데, 만일 그때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틀의 사고방식 너머로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하준 : 맞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말한 질문의 요지는 요즘 국제사회를 깊숙하게 관통하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브라이언 이노 : 돈만이 다가 아닙니다. 책임과 의무도 중요합니다. 이 땅(영국)에서의 교육 체계를 따져보죠. 저에게는 여기서 수학하고 있는 두 딸이 있습니다. 그들이 대학입시 준비과정(A-Levels)을 거치는 동안에도 크게 중요한 점은 없었어요. 이들이 공통 교과를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요. 실제로 암기를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는데, 다들 야망은 큽니다. 그런데 그들 대다수는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더군요.
장하준 : 이러한 교육체계에서 호기심을 갖는 행위는 대단히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여기서부터) 창의력은 점점 사라지고 마는 거죠.
브라이언 이노 : 수량화만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역시 돈에 관련된 입장이에요. 숫자를 놓고 즉각적으로 계산해 고유 권한을 산출물로 바꿔버립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도요. 공원의 참된 가치는 무엇일까요? 당신은 공원을 수량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원의 가치를 전수받았기 때문에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다가와서 “공원? 그게 뭐가 중요하지? 사람들은 집 주변에서 거닐면 되지 않나. 그리고 망할 놈의 똥개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똥을 싸질러 놨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이 공원이 바로 영국 수도 런던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거야. 그러면 엄청난 수입을 거둬들일 수 있겠지. 우리는 그걸 수량화할 수 있어”라고 외치면 어떻게 될까요? 수량화는 통제가 된다는 미명 하에 사회를 좀 먹는 극악의 유혹입니다.
장하준 : 대중에게는 종종 수치를 객체(object)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수치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자신이 소시지와 같다고 푸념을 하죠. 실제로 그 속을 자르기까지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번 알게 되면 그 후에는 회의적이 되죠. 물론 저는 숫자를 적대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려면 숫자나 수치가 필요하거든요. 인생을 사는데 숫자를 멀리하면 불가능해지는 게 많아져요. 그러나 우리는 숫자를 하나의 페티쉬(fetishes)처럼 만들어버렸어요.
물론 뚜렷하지 않고 추상적인 숫자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곤 합니다. 당신이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치약을 3개를 사용한다고 말한다면 신뢰감이 생길 겁니다. 이와 반대로, 1년에 치약을 3.72개를 사용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와우! 뭔가가 잘못되었군.”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예술만 수량화에서 영향 받은 게 아닙니다. 교육은 물론 심지어 가족관계에서도 숫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이 우리 인생에 있어 절멸할지도 모른다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분야에서 돈을 창출해 낸다는 것은 잘 눈에 띠지 않아요. 때때로 예술가가 만든 작품 가운데 후졌다고 판단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몇몇 백만장자가 찾아와 많은 금액을 제시하며 구매 의사를 타진해 와요. 값이 비싸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그 예술가는 기분이 좋아지겠죠. 비싸니까 당연히 그 작품에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요. 이런 겁니다. 예술 안에서도 가치가 왜곡될 여지가 매우 높아요.
브라이언 이노 : 제가 예술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예술적이냐, 아니면 대중적이냐 하는 두 갈래 길이 있었어요. 당시 선생님들은 제가 후자의 길을 선택하자 많이 실망하셨죠. 제가 아티스트 기질이 많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가 대중적인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활력을 끊임없이 불어넣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마니아들만 득실거리는 예술세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준민주적 토대도 볼 수 있었고요. 탐 울프(Tom Wolfe)가 자신의 저서인 [The Painted World]에서 큐레이터 4명, 수집가 12명, 비평가 6명만 있으면 한 예술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적었어요. 똑같은 것이죠.
이것이 왜 예술계에는 좀처럼 믿기 힘든 무력감이 팽배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점을 잘 설명해줍니다.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어떤 작품에 매우 중요한 의견을 심어놓는다면, 그 의견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딱지를 붙이듯이 말이죠.) ‘소포모어’ 현상에 대해 얘기를 해보죠. 한 록 밴드의 데뷔 앨범을 구입했던 사람은 다음 앨범을 구입하지 않는 경향이 높습니다. “좃까! 2집은 분명히 좋을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기자 : 그리고 물론 오늘날에 해당되는 얘기이겠지만, 앨범도 구입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겠죠.
장하준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통제와 자유시장 사이의 균형을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부자가 없었더라면 예술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제가 꼭 악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 한다면, 예술 쪽은 아마 침체하고 부패해지기 마련입니다. 오직 힘 있는 소수만이 좌지우지 한 다면요. 그러니 우리에게는 조화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이번에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음악을 듣게 하는 행위는 예술작업에 있어 새로운 방식을 제기한 매우 훌륭한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이언 이노 : 컴퓨터 마우스로 움직이면서 스크린에 모양을 그리고, 각각의 모양은 음악이 됩니다. 이때 숨겨진 규칙이 발휘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많은 것이 한꺼번에 벌어진다면, 연주를 여러 번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면 저녁에만 연주를 한다든가. 바로 이거예요. 각각의 음악은 조그마한 ‘뮤직 에콜로지’(Music Ecology)입니다.
장하준 : 최근 몇 년간 저는 당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었습니다. 1970~80년대 제가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을 때는 정식 레코드판을 구입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모든 앨범은 해적판이었죠. 음질은 거의 최악이었고요. 우리는 보통 그것을 ‘덴뿌라 레코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음질이 기름 속에서 튀겨진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당신의 이번 앨범 [Lux]는 원래 이탈리아 토리노(Turin)에 있는 특정 공간(베나리아 궁에 있는 갤러리)을 위해 기획된 것이죠. 궁전을 건물 이상으로 바라본 것이 매우 독특합니다.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빛, 음악까지.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해내지 못합니다만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감각들이 소리에 의해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브라이언 이노 : 그 궁전(건물)을 가지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여운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당신이 손가락을 ‘딱’하고 소리 나게 꺾으면, 소리는 약 10여 초 정도가 나요. 토리노의 그 공간은 미술관인데 두 곳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죠. 길이가 100m 정도 되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쉽게 울러 퍼져요. 리코딩이 앞으로 나아갈 때 소리는 물리적 소재로 변환이 가능하답니다. 리코딩을 할 때 사람들은 시간에서 소리를 빼내 공간으로 집어넣습니다. 일시적이고 매우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해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작업들은 아마 소리를 물리적 소재로 바꾸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빌딩이나 건물을 생각할 때 물질, 소재, 관념을 뽑아내야 한다는 얘기죠.
기자 : 장하준 교수님, K-Pop이 서양에서 성공한 이유를 뭐라 보시는지요?
장하준 : 강남 스타일! 처음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짜깁기한 것으로 봤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K-Pop 가수들은 자신만의 색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지요. 이러한 광경을 쭉 지켜보면서, 저는 앞으로 더 좋은 음악이 한국으로부터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네요.
브라이언 이노 : 거의 좋은 작품들은 모방으로부터 시작합니다.(Nearly everything good starts from imitaion)
장하준 : (강남 스타일의 성공은) 예술이 비계급적인 방식(non-hierarchical way)으로 얼마나 잘 소비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예죠. ‘싸이’(Psy)의 성공은 자신의 작품을 과보호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봐요. 그는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활용 및 변용하도록 그냥 내버렸어요. 가끔 보면 해리포터 볼드모트 버전도 나오더라고요. 제 아이들은 매트릭스 버전에 푹 빠져 있죠. 몇몇 패러디 작품은 진짜 기발해요!
브라이언 이노 : 창작할 때 가장 중요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모듈(module)처럼 어떤 문화에서든지 연결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자 : 장하준 교수님, 당신의 저서에서도 자본주의 다양성을 제시해주셨잖아요.
장하준 : 몇 가지 좋은 주제 중 하나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각기 다른 방법이 있다고 제시하는 겁니다. 각기 다른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자본주의는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을 혼재해하고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오직 자본주의 한 단면만을 고수해 왔어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만 고수했다는 얘깁니다. 특히 가난한 국가일수록 주변 강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어떤 이념 체계를 따라야 해요. 아니면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많은 돈을 빌리던가요. 바로 이것이 작금의 경제 위기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죠.
현재 무엇을 바꾸고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과 논의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기득권)으로부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 대중적인 정서는 무역과 시장에 있어 강한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저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거대한 희망 같은 것은 품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바꾸죠? 지난 300여 년 간 수십 차례 겪어야만 했던 대규모 경제위기(대공황, 세계대전, 오일쇼크, 금융위기, IMF 사태)로부터 배운 게 없다면 우리에게는 정말로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 : 브라이언, 당신은 예술가이지만 종종 정치적인 입장을 보여줬잖아요?
브라이언 이노 : 제가 보기에 예술은 (경제학과 비교해서)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약간 다릅니다. 저는 그동안 예술가를 쓰거나 예술 작품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방어물로 사용했던 방식을 극단적으로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속임수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그저 사람들이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길 바래요. 그들 가운데는 저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거든요. 제 음악이 좋아서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작곡에 소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공연하게 정치적 스탠스를 취한다면, 이목을 집중받을 수는 있겠죠. 그동안 발표한 앨범, 프로듀싱 한 가수가 몇 명인데.. 하지만 저는 그런 이력을 가지고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화는 우리가 생각한 대로 세상을 바꾸곤 하는데, 선동적인 방식은 결코 아닙니다. 예술은 다른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 여지를 만들어줍니다. ‘다른 것은 어떻게 될까?’ 어떤 예술 작품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와우, 정말 멋진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몇몇은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이 작품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거지?”라고 덧붙여 생각할 것이고요. 그건 순전히 메커니즘에 따른 겁니다. 예술 작품은 다 이렇게 나와요.
제 스스로도 답을 내리기 어려운 예술에 관한 예시를 보여드리죠.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미국의 유명 화가)은 작품을 통해 철학을 구현해냈어요. 그의 철학은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것들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형상이 되어진다”와 비슷해요. 저는 그의 입장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좋은 방법’을 제시해줬어요. 예술 작업의 대부분은 생각의 결과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거든요. 사실 이를 대변해주는 것이 바로 소설, 특히 SF 소설이죠. 작가는 세계를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과 맞아떨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머릿속에 그려진 세계는 활자를 통해 현실 앞에 보이는 거죠.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은 인류를 성공 가능케 한 피조물로 발달시켜 준 중심 질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만약 이것이, 만약 저것이 따위의 호기심을 품을 수 있고 결과를 비교할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좋아합니다. 예술은 그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계속 되풀이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장하준 :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문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지, 그 내용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초에 이분법적 사고, 흑백논리에 쉽게 감화되어진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사회주의자라면 자유시장은 짓눌러 뭉크러뜨리겠죠. 당신이 자본주의자였더라면 인간 가치보다는 일단 돈이나 결과물을 중시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물론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극단적인 사고는 하나로 수렴돼요. ‘하나의 원칙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 밖에 나머지 것들을 모두 다 희생해야 한다.’라는 명제로 수렴이 됩니다. 왜 과거에 열렬한 공산주의자들이 지금 극단적 자본주의자로 바뀌었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브라이언 이노 : 매우 클리쉐 한데요.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장하준 : 예전에 IMF에서 일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자들도 몇 명 알고 있었죠. 만약 예술을 여기 계시는 이노처럼 한다면, 다른 대안, 다른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브라이언 이노 :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불확실성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새는 구멍이 있으면 진짜 못 참아하죠. 또한 이들은 모든 것을 사회라는 널빤지에 고정시키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좃 같은 사회규칙에 갖다 붙이려고 노력해요. 만일 이러한 시스템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괜히 사람들을 욕하고 다닙니다. “어떤 새끼들이 제대로 게임을 하지 않아!”
장하준 : 맞습니다. 자신들의 원칙은 절대로 틀리지가 않다고 말하죠. 그런 사람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브라이언 이노 : 미국의 우파 세력들, 극우 정치인들은 바로 그래서 이라크 참전을 실패한 전쟁이라고 얘기하지 않는 겁니다. 조금 더 일찍 더 많은 군인들을 보냈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말만 많죠. 이라크 전이 선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의견에 그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 : 명백한 정치적 예술 활동도 있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푸시 라이엇’(Pussy Riot, 러시아의 여성주의 펑크록 집단으로 현재 자국 정치상황에 대해 도발적인 내용의 공연을 즉석에서 펼치는 것으로 유명)인데요,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브라이언 이노 : 완전한 스펙트럼이라고 봅니다. 가끔 제가 드는 생각은, ‘러시아 정치인들 중 “푸시 라이엇”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 정도 될까’가 되겠죠.
장하준 : 저는 소비자에 가깝기 때문에 예술 창작을 하지 않습니다만, 어떤 메시지이든 간에 예술은 그것을 감성적으로 극대화해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모든 음악 장르들, 락, 클래식, 일렉트로닉, 팝 다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쁜지를 알 수는 있죠.
기자 : 갑자기 교수님께서 ‘소비자’라는 입장을 취한 걸 보니 대단히 흥미롭네요. 아마 현재 우리는 예술을 구입 및 소비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네요. 무엇을 익힌다든가 연습한다든가, 개념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구입’이라는 용어가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예술은 소위 기성품 생활방식으로 바뀌었죠. (Art becomes a ready-made lifestyle.)
장하준 : 맞아요. 그러나 제가 7살 때 피아노 레슨을 약 2년 동안 받았는데, 그게 다였어요.
브라이언 이노 : 저보다 레슨을 더 오래 받으셨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