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는 극성이라던 엄마의 엄마표 입문기)
이제 육아에 전념하는거야?
큰 아이가 3살 되던 해,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한 동료가 물었다. 나는 나름 큰 회사에서 통역사로 근무했고 출산 후에도 나는 커리어와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워킹맘이 될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뜻대로 되던가. 큰 아이를 봐주시던 시어머님의 건강문제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본격 워킹맘 생활이 시작됐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시댁, 친정이 다 멀어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남편과 나 둘 중 한 명은 직장에 못 가고 아이를 봐야 했고 주로 아이를 보는 건 나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회사 눈치가 보였고 밥을 너무 안 먹어서 또래보다 눈에 띄게 작고 약해 툭하면 아픈 아이를 두고 커리어를 고집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때 동료가 별 뜻 없이 한 질문이 가끔씩 떠올랐다. “육아에 전념하는 게 뭘까? 일 안 하고 육아만 하니까 육아를 더 열심히 잘 해내야 하는걸까?” 뭔가 거창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처음엔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천국이 있었구나. 느긋하게 일어나 아이와의 흐르는 시간을 만끽하는 일상은 제법이었다. 하지만 내겐 미션이 있지 않은가.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밥을 잘 먹어줄까 보다,라는 결심을 하는 아이가 어디 있으랴.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아이를 잘 먹이기로 다짐하고 회사까지 관두고 보니 아이의 짧은 입은 더욱 거슬렸다. 새모이처럼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후각과 미각이 유난히도 예민한 아이는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두 끼를 못 먹었다. 다른 집 애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과자, 소시지, 돈까스도 도통 입에 대지를 않았다. 늘 같은 정육점에서 엄마, 아빠는 비싸서 자주 못 먹는 투뿔 한우안심을 사다 구워줬는데 어떤 날은 고기가 질기다고 안 먹고 어떤 날은 냄새가 난다고 안 먹었다. 내가 먹어보니 똑같은데 아이는 다르단다. 아이와 소아과를 갈 때마다 애 좀 잘 먹이라고 혼났고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식사지도가 힘들다고 하셨다. 누가 아이 나이를 물어보는 게 진절머리나게 싫었다. 아이가 잘 먹을만한 요리를 하기 위해 유아식 요리책과 블로그를 찾아보고 제철 유기농 식재료를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점심은 어린이집에서 주지만 안먹을 것이 뻔해서 간식과 반찬을 싸서 보냈고 아침, 저녁 재료와 조리법이 겹치지 않게 식단을 짜고 요리를 하느라 하루종일 부엌에서 살게 되었다. 요리를 즐겼던 터라 크게 힘들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황기 우린 물에 밥을 짓고 구기자 우린 물로 국을 끓였다. 그렇게 매일 장금이로 빙의해 밤낮으로 요리를 해댔지만 아이가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았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느냐 안먹느냐에 따라 내 기분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잘 먹는 날은 천사엄마, 안 먹는 날은 악마엄마였다. 일을 그만두고 온종일 아이 밥 해먹이는 일상에 지쳐갔고 무엇보다 내가 이러려고 힘들게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았나 하는 자괴감으로 임신, 출산 직후보다 더 감정이 널뛰는 상태가 되었다. 그 모든 화살이 아이에게로 향했다.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떠서 들이밀며 자기 얼굴만 쳐다보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등원한 후엔 미안한 마음에 울었다. 그 외롭고 괴롭던 시절, 나의 유일한 낙은 SNS였다. 인스타그램에 아이 식판 사진을 올리면 너무 예쁘고 맛있겠어요. 정말 정성스러운 식단이네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네요. 이건 어떻게 만드나요? 요리책 내주세요 등 기분 좋은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정작 내 아이는 잘 먹지도 않는 음식 사진을 올리고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평가에 심취해갔다. 사진 예쁘게 찍으려고 요리만큼 플레이팅에 공을 들이고 어떤 재료로 무슨 음식을 해서 올리면 반응이 좋을까 고민하는 관종이 되어갔다.
그렇게 쇼윈도육아가 시작되었다.
큰 아이 세 살부터 여섯 살까지 이어진 쇼윈도육아 1라운드는 엄마표 밥상이었다. 큰 아이는 밥은 잘 안 먹었지만 말도 빨랐고 한글도 알아서 떼고 어린이집 생활도 잘했기에 나의 관심사는 잘 먹여서 키우는 것뿐이었고 책 읽어주는 것 외에 교육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사교육과 엄마표 학습을 시키는 엄마들이 유난스럽고 극성맞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여섯 살 때 작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큰 아이의 학습은 내 관심사에서 더 멀어져 갔다. 작은 아이가 세 살이 되면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려던 참이었으나 인생은 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졸지에 두 아이를 가정보육하게 된 것이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은커녕 학교도 못 가보고 집에서 줌 수업과 교육방송으로 1학년을 시작했고 작은 아이도 입소예정이던 어린이집에 못 가고 집에 있어야 했다. 아이들과 24시간 부대끼며 보육과 교육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했다. 엄마표 학습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아이의 공부와 숙제는 모두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의 아니게 엄마표 학습에 돌입하게 되었다. 쇼윈도육아 2라운드의 서막이었다.
상단사진 출처: Pixab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