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

(나의 브런치 합격사실을 남의 편에게 알리지 말라!)

by 영글


가끔 브런치에서 글을 읽긴 했으나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평소 말은 많으나 하고 싶은 말의 요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답답했고, 간결하면서도 온전하게 말과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던 차에 평소 흠모하던 이은경 선생님이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신다길래 무작정 신청했다. 그런데 겨우 데드라인에 맞춰 숙제 제출하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브런치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4주차 수업, 브런치 프로젝트 후 일상의 변화,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변화에 대해 글을 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할 말 많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떠들 수 있는 채널이 생긴 셈이라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SNS를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더니 지인과 친구들로부터 좋아요와 축하댓글이 이어졌다. 내가 글쓰는 걸 보면서 뭐하냐고 묻던 큰 아이는 엄마가 쓴 글이 합격돼서 작가가 됐다고 하자 작가 되면 TV 나오는 거냐며 엄마 너무 대단하다며 축하해줬다. TV에 나오는 건 아니라고 했더니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달랑 글 하나 발행한 주제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고 자랑하는 내 모습이 좀 머쓱했지만 기분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당장 뭐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 타이틀 하나가 주는 성취감은 상당했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





애들 키우랴, 일하랴 바쁘지만 단조로운 나의 하루하루가 특별해졌다. 별 것 아닌 일도, 기분 나쁜 일도, 기분 좋은 일도 모두 나의 글감이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우와~ 글감 생겼네!"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 일을 어떻게 글로 풀어볼까 생각하다 보면 부정적 감정은 어느새 잊힌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평범한 일상이 바뀔 일은 거의 없다. 일상은 그대로지만 특별한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니 나의 일상도 특별해졌다. 이런 감정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직 습작만 하고 있는 단계라 발행버튼을 누르기는 망설여지지만 늘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있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브런치에 무슨 얘기부터 해볼까? 단연코 나의 남편 이야기가 첫번째 소재다.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냐고? 에이~ 그럴 리가~ (사랑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누가 그랬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맞다. 나의 남편도 남의 편이다. 대외적으로는 배려 깊고 다정다감한 소녀감성의 소유자인 남편은 어쩐지 나에게만 공감능력 제로 대문자 T, 같은 한국인인데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남의 편이다. 내가 어디 가서 억울하게 당한 이야기를 해도 공감하고 같이 욕을 해주기는커녕 "그건 너의 입장이고 그 사람 입장은 다를 수 있지, 그게 말이 되냐? (그래!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내가 당했다니까!!!) 네가 오해한 거겠지.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겠지!" 라며 기를 쓰고 남의 편만 드는 통에 뒷목 잡고 속앓이를 해온 나는 브런치라는 나만의 대나무숲에서 너를 잘근잘근 씹어주겠노라 다짐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래서 브런치 합격사실도 남의 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뭔지도 모를 것이고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가 모르는 나만의 비밀공간이라 생각하니 왠지 더 신났다. 싸이월드 시절부터 열받는 일이 있으면 불 뿜는 용처럼 키보드가 부서져라 타다다닥 비밀일기를 쓰며 마음을 정리해 왔었던 나에게 누군가 멍석을 깔아준 기분이랄까?




그런데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고 신명나게 남의 편 욕을 하는 글을 쓰다가 분노, 후회, 억울함, 미움과 원망으로 들끓는 불덩이 같은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며칠이 지나갔다. 글도 더 이상 쓰지 못하고 과제 제출일을 넘겼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나를 속상하게 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싸우고 사과받고 또는 사과받지 못하고 대강 넘어갔던 일들이 아직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갈등이 있으면 대화를 하든 싸움을 하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해결책 또는 타협점을 찾아야 하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를 해야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의 편은 나와는 정반대로 "잘잘못을 따져 뭐하냐? 미안하다는 걸 꼭 말로 해야 하냐? 지나간 일을 또 얘기해서 뭐햐냐?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며 갈등의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회피형 인간이다. 며칠을 서로 말없이 보내다 "백화점 갈래?" 또는 "갈비 먹으러 갈래?" 하고 묻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의 사과였기에 받아들이고 넘어갔으나 사실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자각했다. 아닌걸 맞다고 하고 넘어갔지만 아닌건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화를 곱씹다가 울분에 휩싸였고 남의 편은 영문도 모른 채, 며칠째 화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끝장을 볼 것인가?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속 터지게 했던 그대로 되갚아줄 것인가? 이 두 가지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작가가 되어서 달라진 좋은 점들을 쓰려다 뜻하지 않게 요동치는 나의 마음에 당황스러웠던 지난 일주일. 글의 결말도 시작할 때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간 나도 몰라주었던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힘들었던 내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주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중이다. 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각오해라. 남의 편! 이번에는 백화점 가자고 해도 안 풀릴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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