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여름방학을 보낸 옥스퍼드에 3개월 만에 다시 왔다. 우리가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블랙웰스서점을 둘러보고 있는데 큰 딸 겨울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그랗게 토끼 눈을 하고 나와 동생 여름이를 부른다.
"엄마~~~~ 여기 와봐! 우리 책이야!!! 여름아! 이거 봐봐!!!"
이달의 책 (Book of the Month) 코너에 내가 글을 쓰고 겨울이가 그림을 그린 책이 전시되어 있다.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지난 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지난 5년간,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5년 전에는 나를 갈아넣어 육아, 일, 살림, 공부를 하는데도 집은 늘 엉망이고, 일도 육아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죄책감과 자책감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채움은 없고 비움만 있는 삶이었다. 가족도 제대로 못 돌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하는 것이 욕심처럼 느껴져서 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 우연히 신청했던 브런치 프로젝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시작했는데 역시나 꾸준히 쓰는 건 어려웠다. 매주 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생각만 많고 실행력은 부족한 나였기에 쓰다만 글들이 쌓여갔지만 그런 나를 멱살잡고 끌어주고 밀어준 이은경 선생님과 동기작가님들 덕분에 나는 글로 팔자를 고친 여자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쓴 엄마표영어책을 시작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쓴 에세이들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내 마음을 힐링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힐링이 된다는 사실은 짜릿한 행복이었다. 또, 그림책 덕후였던 나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들을 썼고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던 겨울이가 내 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주었다. 내가 쓴 책들이 하나, 둘 유명세를 타며 내가 꿈꾸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우선, 그림책도서관인 영글도서관부터 열었다. 경단녀 시절, 책육아와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방을 열고 싶었지만 임대료내고 인건비 주려면 종일 일에 매여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에 선뜻 일을 벌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와서 한글그림책, 영어그림책들을 마음껏 읽고 읽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재능있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같은 그림책 덕후들이 와서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림책 놀이와 수업, 그림책 심리상담도 해준다. 브런치 동기 작가님들의 강연, 북토크 장소로도 쓰이고 있는 이곳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는 공간과 글쓰기 수업도 제공하고 있다. 또, 영어수업을 연구하고 실습할 공간과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영어를 가르쳐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즐겁게 영어책을 읽어주고 다양한 영어놀이를 하는 도서관은 방과후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준다. 엄마, 아빠는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들은 책과 친구가 되는 행복한 도서관. 내가 늘 꿈꾸던 공간을 내 힘으로 만들어냈다. 도서관이 유명해지며 방송, 강연 요청, 협업제안도 줄을 잇고 있다.
이룰 수 없는 꿈같던 일들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있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우리 부부는 신혼 때부터 제주살이를 꿈꿔왔지만 남편의 사업때문에 그 꿈을 은퇴 후로 미루고 있었다. 주말부부, 기러기 아빠는 절대로 못하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늘 일의 압박에 시달리며 시들어가던 남편은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가끔씩만 회사에 들른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 두 딸 겨울이, 여름이와 평온하게 제주살이를 하고 있다. 낚시광 남편은 마음껏 낚시를 하며 생기를 되찾았고 아이들은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제주에 오면서 영글도서관을 제주에도 열었다. 우리 아이들도 자주 가서 책을 읽고 꼬마친구들과 놀아주고 책도 읽어준다. 제주에 살고 있지만 디지털 노마드인 나는 방학마다 아이들과 해외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여행도 하고 글도 쓴다. 이번 겨울방학은 수영 좋아하는 겨울이와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을 위해 마련한 하와이 세컨하우스에서 보낼 계획이다.
누가 내 삶의 전환점을 묻는다면 나는 아묻따 글쓰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글로 마음을 풀어내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어디서부턴가 꼬여버린 삶도 풀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의 탈출구로 쓰기 시작한 글이 꺼져가던 삶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을 지펴주었다. 5년 전의 나에게 있어서 일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언제나 일로 바빴던 남편은 내가 일을 하지 않고 가정에 집중하기를 대놓고 말은 못해도 은근히 티나게 바라고 있었다. 프로독박육아러였던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없어지기라도 하듯 기를 쓰고 일을 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누구도 그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이제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닌 정말 내가 좋아서 즐기며 하는 일로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그로 인해 경제적 자유도 누리게 되었다. 아이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더 기쁜 사실은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노력하고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다음 주에는 런던에 가서 그림 좋아하는 첫째 겨울이를 위해 런던예술대(UAL)를 둘러보고 오벳 작가님의 아드님 루크의 전시회에 갔다가 브런치 동기들을 만난다. 출판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브런치 동기들과 이은경 선생님까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라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 이번 모임 드레스 코드는 레드라는데 입고 갈만한 게 마땅찮아서 드레스 장만하러 가야겠다. 곧 연말도 다가오니 예쁜 선물도 하나씩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