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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an 06. 2017

우리가 사랑한 한국 음식

<김밥과 짜장면의 詩를 아시나요?>

진흙 속을 기어다니는 하얀 지렁이

처음으로 짜장면을 본 미국 고등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그러나 시작과는 달리, 한 번 맛본 뒤로는 짜장면에 흠뻑 빠져 버렸다는 글이었다. 

매일매일 먹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일 년 이상 한국에서 생활한 친구들은 어떤 글을 썼을까?


 찐빵의 시


거기에는 항상 맛있게 생긴 찐빵이 있다.

산처럼 실리는 찐빵.

학교에 가는 길에서 언제나 보이는 풍경이다.

찐빵은 무섭게 생겼지만 친절한 아저씨가 만들고, 

찐빵처럼 생긴 아줌마가 판다.

(중략)

아줌마가 냄비 손잡이를 들면 김이 모락모락 난다.

아줌마처럼 따뜻하고,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찐빵.

역시 이 집의 찐빵이 최고야!

이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국 음식은 없을 것이다!

(관련 포스팅: "우리가 사랑한 한국 음식의 주인공, 나야 나")


순두부 찌개의 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를 보면

왠지 행복해진 나인데 당신은 어때?

(중략)

순두부 찌개의 맛에 어머님을 생각하며

순두부찌개의 냄새에 고향을 생각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를 보면

왠지 행복해진 나이인데 당신은 어때?


 닭갈비의 詞


길을 걸을 때 어딘가에서 좋은 냄새

내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

그래 바로 닭갈비

냄새에 끌려서 가게에 들어간다.

넓은 철판의 공원에서

양배추, 떡볶이, 고구마, 닭갈비가 사이 좋게 논다.

그대로 먹어도 닭갈비에 빠지는 사람이 많지만

마지막에 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한국에서 만난 고급 학습자들인 일본인들이 쓴 시이다. 그들의 한국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공교롭게도, 위의 음식들은 대만에서도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이다. 물론 찐빵은 다양한 이름으로 대만식으로 팔리기도 한다.  순두부찌개와 닭갈비는 맵다고 하면서도 누구나 잘 먹는 음식이다. 외국인들이 중독되어버렸다는 한국 음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느끼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다시 짜장면으로 돌아가서,

대학교 3, 4학년들과 함께 <한국 음식에 대한 시>를 써 보았다.

대학 졸업반인 한 남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가 나왔다. 

시는 써 본 적도, 써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는 그였다.



어렸을 적부터 먹었던 짜장면

내겐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짜장면을 먹지 않아

짬뽕을 먹지 

쓰린 속을 달래주는 짬뽕

아! 짜장면과 가버린 내 어린 시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한국 음식에 대한 시를 쓴다면 어떤 글을 쓸까?

문득 궁금해졌다. 


참고로,

우리가 <음식의 시>라는 자기만의 걸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아래의 시 덕분이었다. 



김 밥

-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반 4

詩. 한명희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김밥을 좋아합니다.

그의 대답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불고기, 갈비탕, 삼계탕, 김치찌개, 영양밥

앞, 뒷자리에서 진수성찬이몇 번씩 차려지는 동안에도

그의 대답은

김밥을 좋아합니다

저녁에 무엇을 먹었습니까?

김밥을 먹었습니다.

나는 참치김밥, 소고기김밥, 치즈김밥, 모듬김밥, 누드김밥

김밥의 이름을 줄줄 대지만

그의 대답은 

김밥을 먹었습니다.

열한 시쯤 아침 겸 점심으로

사먹으러 나가곤 하는 김밥

집에 올 때 두 줄 사가지고

한 줄은 저녁에 또 한 줄은 내일 아침에

먹곤 하는 김밥

500원 더 싸게 사려고 한 정거장씩

걷기도 하는 김밥

다시는 먹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또 사게 되는 김밥

나의 김밥의 역사를

그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김밥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ams841129/22059295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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