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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l 28. 2017

세월호, 기억 교실


삼 년 전이었다.

함께 이곳을 찾았던 아이는 내게 말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






단원고 기억 교실을 방문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진 2학년들의 노란 교실이 있었다. 아이들의 교실을 하나씩 들어가 보았다.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거리, 스타의 사진, 그리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쪽지로 가득했다. 친한 친구, 얼굴을 모르는 친구들이 남긴 글에는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몇몇의 책상 위에는 빛이 바래지 않은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쓴 글이었다. 어딘가에서 옅은 숨을 내쉬며 아이를 가슴에 묻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노란 교실을 찾아 편지를 쓰고, 또 쓸 것이다. 엄마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2층 제일 안쪽에는 교무실이 있었다. 교감 선생님을 찾은 아이들은 하나 같이,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쪽지를 남겨 두고 갔다.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아이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하셨을 선생님의 고통이 아이들의 위로에서 전해졌다. 나는 교감 선생님의 영정 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교무실 입구에 故남윤철 교사의 자리가 있었다.

故남윤철 교사는 학생이기도 했다. 모 대학 <한국언어문화교육학과>에 편입을 해 한국어교육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이미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석사나 박사 과정도 아닌 대학에 편입을 해 학업을 이어간 이유는 바로 학생들 때문이었다.



안산지역에는 외국인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다.

안산에는 큰 공단이 두 개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결혼 이민자들도 안산지역에 거주하고 있다(실제로 세월호 희생자에는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도 있었다). 중도입국 자녀도 있다. 부모가 먼저 한국에 들어와 몇 년간 일을 하고 자리를 잡은 뒤, 본국에 있는 아이들을 한국으로 불러 오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한국의 일반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러한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가게끔 이끌어 주는 방법을 찾기 위해 故남윤철 교사는 배움의 길을 이어갔던 것이었다.


이미 한국 사람이니 사는 데 불편함이 없고,

이미 교사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이미 어른이니 자신을 보호할 힘이 있을 수 있고,

이미 안전한 장소에 있었으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故남윤철 교사는 자신 앞에 “이미” 놓인 선택대로 가지 않았다.


이미 안전한 장소에 있었음에도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힘을 다했을 선생님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했겠지만,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당연하지 않은 결과였다.


故남윤철 교사의 자리 앞에 한 동안 서 있었다.

이미 내 자리가 있는데도 , 더 나은 자리를 향해 달려가며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흘려보낸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열두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앞에 놓인 한 개의 의자에 앉기 위해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고 있다. 나도 그들과 돌고 있고, 놀고 있다. 직원 단합회 따위에서 한 번쯤 해 봤을 게임이다.  이 게임은 참 "못된 놀이"가 되기도 한다.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옆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보다는 음악이 멈추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면 재빨리 뛰어가 그들을 밀치고 자리에 앉을 궁리에 빠져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 할 수도 있으니.


나 또한 삼 년 동안 그렇게 변하기도

혹은 변하지 않기도...


그리고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흐르지 않은 시간, 20140416

이곳에는 부디 우리 모두의 기억이 함께 있기를...



2017년 7월 25일

단원고 기억 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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