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선생의 한국어교실]한현민의 무대
15분 만에 완성된 고급 요리였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을 크게 벌렸다. 유명 요리사의 음식을 입에 넣고 작은 탄성을 내뱉는 그에게 사회자가 물었다.
“이 맛을 십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오졌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모델 출신 방송인 한현민 편이었다. 그는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자로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몇 해 전에 위 방송에 나왔으니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다. 피씨방을 좋아하고, 순댓국을 즐겨 먹으며, 신나는 일 앞에서 “오졌다”를 연발하는 아이였다. 2001년생 동갑내기 사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현민 군을 관심 있게 보아 왔다. 그의 성향은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외적 조건이 달랐다. 189센티의 큰 키와 피부색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그는 2017년 미국 타임 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뽑혔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비롯해, <라디오 스타>, <엠카운트다운>, <대한외국인> 등 그가 나오는 예능 방송은 거의 봤다. 그는 “정답”을 외쳐놓고는 자신만만하게 엉뚱한 대답을 하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애써 감추려 않았고, 오답을 외칠 때처럼 감정 표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십대들은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 과한 자기애를 보이거나 지독한 자학을 일삼기도 한다. 머리가 헝클어질세라 한쪽 손으로 머리를 잡고 체육시간에 뜀뛰기를 하거나 기말고사 수학 문제를 풀고, 앞머리의 위치가 1교시와 3교시가 달라도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남들과 조금 나아 보이면서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하는 그들만의 선이 분명히 존재했다.
한현민 군은 자신의 외모를 앞머리 길이와 위치 정도로 조절하지 않았고, 자기 자리를 운동장이나 피씨방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세계의 무대로 내보냈다. 장난기 섞인 웃음을 보이다가도 진지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제 무대를 걸어가는 그를 보면 참 잘컸다, 부모님이 참 잘 키우셨다, 라는 감탄이 나온다.
긍정적인 마음 가짐과 자신감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라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습관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 좋은 어른을 만나 쑥쑥 잘 컸다. 하지만 많은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건강하게 쑥쑥 자라지는 않는다.
바로 전 포스팅 “고스트 브라더”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은 오래 전부터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과 함께 했고, 지금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의 다문화 학생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참고: 교육통계서비스 https://kess.kedi.re.kr/index)
아래의 2012년 2013년에 비해 그 수가 급속도로 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문화 학생이 늘어감에 따라 함께 연구가 되는 주제는 이들의 학업 적응과 중도 탈락 문제였다.
학교 적응에는 무엇보다도 교우관계와 학업 문제가 컸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또래 문화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또래 문화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또래 사이에서 섞일 수 있도록 누군가는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https://entertain.v.daum.net/v/20200516060919954
지난 스승의 날 한현민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외모로 인해 차별을 겪었던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선생님이었다. 친구들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힘들어하던 아이에게 선생님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어쩌면 그 사랑은 아이가 일찌감치 받았어야 했는데 받지 못했던 ‘밀린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십 수 년 전이었다.
다문화 가정을 후원하는 단체에서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서른 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했다. 아이들 부모의 국적은 서로 달랐고, 아이들의 외모도 서로 달랐다. 그 중에서 켄터키후라이드치킨 앞에 하얀 양복을 입고 서 있는 아저씨와 닮은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보아 하니 그는 영어밖에 할 줄 몰랐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하거나 제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거나 유모차에 앉아 젖병을 빨고 있었다. 한국어를 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그 아저씨는 무리에 끼었다.
비눗방울 덕분이었다.
그의 비눗방울은 제 얼굴보다 큰 둥근 채에서 뿜어져 나왔다. 커다란 비눗방울이 저만치까지 뒤뚱거리며 날아갔다. 비눗방울이 나올 때마다 몇몇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형아들처럼 뛰어갈 수 없어 제자리걸음만 걷던 아이에게 그가 다가갔다. 아이 앞에서 비눗방울을 조심스럽게 불어주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양손으로 비눗방울을 잡았다. 비눗방울은 금세 눈 앞에서 터져버렸다. 아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리려 하자 아저씨는 다시 한번 아이의 머리 위로 비눗방울을 불어주었다. 아이는 비눗방울을 향해 팔을 높이 올렸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달려가서 만져보는 비눗방울을 그냥 저만치에서 바라만 보는 아이가 있다. 어지러운 빛깔과 아이들의 환호성을 뚫고 조금은 멀리 서 있는 아이들을, 그들의 눈빛을 읽어주는 일이 바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현민 군이 만났던, 오랫동안 그토록 다시 뵙고 싶어했던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비눗방울을 불어준 어른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무대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선생님은 손을 잡아주셨을 것이다.
참고로, "오졌다", 의 기본형 "오지다"는 형용사로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 라는 뜻이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오졌다"는 십대들이 자주 쓰는 말이나 비속어가 아니다.
*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