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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Apr 20. 2022

아침 운동의 함정

그들만의 은밀한 조직

아침 운동을 하면 하루종일 기운이 빠진다. 

운동을 저녁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는 수업 시간표가 좀 애매하게 짜여져 저녁 운동을 빠지곤 했다. 물론 만보 달성은 매일 하지만, 요가를 포함한 GX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큰맘 먹고 화요일 오전 GX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늘의 운동은 스텝 에어로빅으로 계단 하나 높이쯤 되는 판을 놓고 하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헬스클럽을 옮기고 나서는 스텝 수업이 없어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전 스케줄을 보니 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계가 중급이기는 했지만 하다 보면 늘지 않을까 싶었고 간만에 아침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자신을 치하하며 헬스클럽으로 향했다.


GX룸에 다다른 순간 저녁 요가 수업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입장을 위해 회원들은 줄을 서고 있었다. 경선이 뒤에 정자 언니, 형님 뒤에 민아, 뭐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섰는데, 한 중년 여성이 날더러 저기 파란 옷 입은 여성 뒤에 가서 서라고 했다. 무슨 분위기인지는 몰랐지만 파란 옷 여성 뒤에 가서 서려는데 사이에 낄 자리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저기요, 절더러 여기 줄 서라는데요.”

 파란 옷 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뭐라는 거야?”

 “저기서 절더러 선생님 뒤에 줄 서라고 해서요.”

 그녀가 내 말에 뭔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좀 크게 말했나, 나는 괜히 움츠려 들었다.




  드디어 GX방 문이 열렸고, 일렬로 선 이들은 차례로 입장했다. 

 나는 스텝을 들고 맨 뒤에 자리잡으려 했는데 내 뒤에 어느 여성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앞에 스텝을 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성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여기 줄 맞춰서 놓으셔야 돼요.”

 줄을 딱, 맞추면 나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협조하기로 했다. 어디에나 내부 규칙은 있게 마련이니까. 


잠시 후 강사는 갑자기 음악을 크게 틀더니 현란한 스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스무 명의 회원들도 그를 따라 스텝 위아래를 뛰었다. 인사말도 없이 그렇게 수업은 시작됐다. 왼발, 오른발, 한 바퀴 돌고, 차차차, 이 순서를 오롯이 앞에 있는 회원의 움직임을 보고 이해해야 했던 신입생은 양 옆에서 나를 바퀴벌레처럼 밟아 죽이기로 할 듯 달려드는 여성들 사이에서 밟혀 죽지 않기 위해 동동거리는 발짓을 보일 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움직임이 강렬한 이는 바로 내 뒤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일지매처럼 검은 머리띠를 동여 매고는 언제라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공중부양이라도 할 듯 텐션을 잔뜩 높여 뛰었고 그러다가 스텝을 놓쳐 나와 부딪쳤다. 엄밀히 말하면 쌍방과실이었는데 그녀는 “아우씨”라고 하며 나를 째려보더니 스텝을 옆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정신 없는 움직임 끝에 잠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옆에 있던 여성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여기는 중급반이라서요, 움직이다가 다칠 수가 있어요.”

에어로빅을 하다 몸이 부딪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큰 충돌사고로 머리가 깨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10킬로짜리 아령을 들고 춤을 추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다칠까 싶었지만, 선배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네네, 라고 답했다. 


한 시간 수업 내내 다리에 쥐가 나도록 헤매며 움직이던 신입생은 이 수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수업 후 강사에게로 가서 물었다.

“선생님, 초급 학생이 중급에 와서 뛰면 위험할 수 있나요?”

나는 적어도 선생이 내게 중급반은 초급 총 100시간 이수 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등등의 안내를 해 줄 거라 했는데,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회원님이 알아서 선택하세요.”

상당히 자기 방어적인 말투라고 느꼈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수업의 참가 여부는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목례를 하고는 네, 알겠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저기요.”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아까 파란 옷의 언니가 테이블에서 다리를 꼬고 있었고, 그 옆에는 사무라이 머리를 한 여성과 반짝이 쫄바지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파란 옷이 한 번 더 나를 부르자 나는 네, 라고 대꾸했다. 그녀가 내게 되물었다.

“여기 중급반인 건 알고 왔어요?”

그녀는 팔짱을 한 번 더 올리며 물었고, 그 옆에 있던 사무라이 언니가 “여기 중상급이에요.”라고 ‘상’자를 강하게 말하며 거들었다. 중급과 중상급을 내 앞에서 강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써니’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 같아 살짝 웃음이 날 것도 같았지만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내 대답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요, 그쪽이 하다가 자꾸 틀리니까 옆 사람이랑 다칠 것 같아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거 몰라요?”

단언컨대, 그녀는 누구와도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영화 ‘써니’라면 어느 캐릭터에 걸맞을까. 쌍꺼풀 테이프를 붙이던 그녀, 높이 솟은 광대뼈를 들이밀며 욕을 쏟아내던 그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에서 짝다리를 까딱거리던 그녀. 아, 나는 다시 그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잔뜩 힘을 준 눈매, 꼭 낀 팔짱, 하이톤의 목소리로 보아 그녀는 에어로빅 반에 들어온 신입생과 맞장이라도 뜰 자세였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그녀와 맞장을 뜰 의향이 없었다. 질 게 뻔한 싸움이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그 누구들과 많이 싸워본 경험이 있는 그 구역에서 ‘짱’을 먹는 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 목소리를 낮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오래 하셨나요?”

그러자 그녀는 10년 동안 했다고, 여기 다 그렇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10년만 하면 파란 옷의 그녀나 내 뒤에 섰던 일지매 회원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말이군, 해 볼만 한 걸, 이란 생각이 스쳤으나 굳이 그녀에게 이 말은 하진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자신은 초급반에 들어가 수업을 안 한다고, 움직임 강도 때문에 서로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녀가 한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큰 사고는 아니더라도 접촉이 이어져 다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녀 같이 의욕만 앞선 움직임으로는 옆 사람의 왼발을 짓이겨 버릴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그녀에게 발이 밟히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웃으니 그녀도 웃음을 보였다. 기대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 세 명의 쫄쫄이 언니들은 나보다 언니 같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나이로 누구에게 꿇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진심으로 한결같이 몰입해 왔다면 그 노력과 열정은 인정해 주고 싶었다. 10년간 현란한 발 재간 못지 않게 자기보다 실력이 부족한 뉴페이스 앞에서 영화 ‘써니’의 한 장면을 소환하는 대신 선임자로서 수업에 대해 상세히 혹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능력도 키웠더라면 좋았을 거라 바란다면 그건 너무 큰 기대였을까.


그녀들과의 한 시간은 내내 불편했는데 그것은 내가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들만의 은밀하한 공간에 노크도 없이 들어간 무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곳은 지난 십 년 동안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은 이들이 들어오면 수시로 내보내며 그들만의 조직을 견고하게 만들어 운영해왔던 것으로 보였다. 


해당 수업은 누구에게나 열린 수업이었다. 나는 보통 아침에 수업이 있어, 혹은 아침 운동을 하면 기운이 빠지곤 해서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간만에 아침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에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는 수업에 들어갔고 처음이라 헤매긴 해도 하다 보면 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해당 수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의 문제도 없지는 않았음을 인정하며, 이제 그 시간에 참여하지 않은 거라는 내 결정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라는 말을 끝으로 오늘의 수업을 정리하고자 하다. 


<사족>

해외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따로 개설되지 않은 대학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있다. 가끔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안내를 잘 못 받고 자기 수준에 맞지 않은 수업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학부 강의로 개설된 <발표와 토론> 수업에 대만 교환학생이 들어왔다. 초급 단계를 겨우 벗어난 그녀가 중급 이상 단계에 해당되는 수업에서 고전하는 건 예상된 결과였다. 하지만 팀 활동이 이어지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그녀를 도와가며 함께 발표를 준비했다. 그 결과 실력이 부족했던 대만 여학생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한 다른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또래 학습의 긍정적인 효과를 나는 매 학기 경험하고 있다. 


물론 동네 에어로빅 교실과 대학 내 외국어 수업에는 차이가 있겠지.

그러나 배움에는 학습자의 자율성과 꾸준함, 교수자-학습자, 학습자-학습자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어느 학습에도 적용될 거라 거라 믿는다. 


오늘의 일로 우리 반 학생들이 떠오르는 건 생뚱맞는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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