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대만] 외국 생활은 힘들어
1.
W 화장품 가게는 매주 토요일마다 행사를 한다. 488원 이상을 사면 12% 할인(88 折)을 해 준다. 그래서 화장품이 필요할 때면 토요일에 그곳을 찾는다. 대만에 온 후로는 화장품, 특히 스킨 토너를 많이 쓴다. 날이 더우니 세수를 자주 하게 돼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어김없이 특별 행사가 열렸다. 내가 찾는 스킨 토너가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자주 쓰는 클렌징폼은 두 개 사면 두 번째 제품은 80% 할인을 해 준다(第2件2折)고 써 있었다. 이것도 두 개 샀다. “이제 대만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군. 이렇게 할인 행사와 제품을 찾아 살 줄도 알고 말야.”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봤다. 그런데 클렌징폼은 할인이 되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었다. “이거 할인 제품 아닌가요?” 점원은 확인을 하더니 아니라고 했다. 나는 점원에게 말했다. “여기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점원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매대로 나와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이건 이 제품이 아니라 저 제품에 해당되는데요.”
그리고는 할인 표시 스티커를 떼어 다른 제품 옆에 붙였다. 누군가가 잘못 붙여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계산을 끝냈고, 그것은 필요한 제품이기도 해서, 다시 환불해 달라기도 뭣해 그냥 나왔다. 찜찜했다.
2.
화장품 가게를 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날은 더웠고,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너무 더운 나머지 차가운 과일차 생각이 났다. 자주 가는 음료 가게에서 “자몽꿀차(葡萄柚蜜茶)에 한천(寒天, 우뭇가사리 류 )을 넣어 주세요.” 라고 주문했다. 이것은 내가 즐겨 마시는 음료다. 대만의 자몽은 정말 맛있다. 자몽 반 개 혹은 한 개를 모두 짜 넣어주는 음료는 맛이 그만이다. 게다가 한천을 추가하면 왠지 다이어트 음식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설탕은 조금만 넣어달라고 해야 한다.
내 앞으로 손님이 여섯 명이나 더 있었다. 날이 더웠고, 기다릴 만한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마실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292번 고객님, 자몽꿀차 나왔습니다.”
나는 번호표를 내밀고 음료를 받았다. 굵직한 빨대를 꽂아 음료를 빨아 마셨다. “아, 이 맛이야.” 한 번 더 마셨다. “어? 이 맛이 아니네?” 음료에는 한천이 없었다. 한천은 10원을 주고 추가해야 된다. 음료 뚜껑에 주문한 내용이 스티커로 붙여 나온다. 스티커를 확인했다. 분명히 한천 추가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마시던 음료를 들고 다시 점원에게 갔다.
“여기 한천 추가라고 되어 있는데, 안에 한천이 없는데요.”
점원은 다른 손님들의 주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는지 대충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다시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손님들은 더 많아졌고, 주문 받은 음료를 만들기에 바빠 내게서 받은 빨대가 꽂힌 음료는 저 끝에 놓아두고는 다른 주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33도가 웃도는 토요일 오후 골목길에서 “내가 주문한 음료”를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저거라도 마시는 건데, 괜히 따졌나 싶어 후회가 됐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드디어 내 음료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빨대를 꽂고 음료를 마셨다. 이번에는 맞았다. 다행이었으나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10원짜리 기다림은 너무 가혹했다.
3.
남부에만 있다는 햄버거가 있다. 몇 번 먹어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저녁 반찬 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오는 길에 그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지만 그래도 손님으로 북적였다. 우유, 생선, 고기, 바나나로 가득한 배낭을 메었더니 어깨가 쑤셨다. 얼른 주문하고 가방 좀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내 앞에 주문하는 아저씨는 전화를 하면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트메뉴에 면이 있고 탕이 있는데 뭐 사라는 거야? 음료는 몇 개 사면 되는데?” 그런 통화는 주문 전에 미리 하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됐다.
“치킨 두 조각 세트와 매운 치킨 버거 두 개 주세요.”
주문은 순조롭게 끝났다. 사실, 나는 주문하기 전에 예습을 하고 왔다. 아직도 낯선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예습이 필요하다. 연습한 대로 잘해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가방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얹지 않으니 어깨에 통증이 더 느껴졌다. 빨리 올 것 같지 않은 내 순서를 기다렸다.
“35번 고객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35번 고객님인 나는 점원이 종이 봉투 두 개에 정성스럽게 포장해 준 치킨과 치킨 버거를 양손에 쥐었다.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떨어진 5원을 주웠다. 땡잡았다, 고 중얼거렸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집에 와서 주문한 음식을 펼쳐 놓았다. 뭔가 허전했다. 치킨 버거를 두 개 주문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영수증을 보았다. 분명 두 개 값을 계산했다. 이 모든 음식을 다시 종이봉투 두 개에 넣고 햄버거 집에 가서 영수증과 주문한 음식을 모두 내 보이며, “보시다시피 나는 이렇게 분.명.히. 치킨 버거를 두 개 주문했는데 하나밖에 안 주셨으니 하나 더 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소용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 햄버거 하나를 반으로 잘라 먹었다. 햄버거는 맛있었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했다. 하나를 먹어야 하는데 반쪽을 먹어서 그랬을 거다.
이렇게 토요일이 가고 있다.
이건 뭐지?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 같은 일들인데, 아니, 돌이켜 보면 내 잘못이기도 한데,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냥 운이 별로 좋지 않은 참 피곤한 날을 보냈는데, 라며 끊이지 않는 말을 되뇌었다. 옷을 갈아입는데,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햄버거 집 앞에서 주운 5원짜리 동전이었다. 동전을 손에 꼭 쥐었다. 이 동전이 오늘 내 손에 쥔 유일한 행운인 듯 소중하게 느껴졌다.
말이 어눌하면 동시에 상황 파악을 빨리 하지 못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나는 할인행사 날짜와 할인품목이 무엇인지 이해하게는 됐지만-그것도 오랜 학습 끝에-계획과 다른 일들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은 종종 있을 것이다.
모든 학습에는 수업료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 산 교육을 받느라 온몸의 땀샘이 폭발했으며, 무거운 짐으로 어깨가 짓눌렸다.
그리고
수업료로 클렌징폼 하나와 치킨 버거 하나를 지불했다.
그리고
칭찬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5원짜리 동전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