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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12. 2020

성취와 상실 사이

<성취습관>에서 말하는 진정한 성취

“그레이의 해부학”

누워서 화장대에 다리를 올리고 미드를 보던 내게, 아이가 문틈으로 드라마 제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Grey’s Anatomy

이 드라마의 시즌 2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아나토미가 해부학인 줄 몰랐다. 그런데 아이는 내게 그 의미를 알려 주었다. 의학 드라마였으니 제목에 해부학이 들어가도 그리 뜬금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신기했다. 내가 알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영단어를 아이가 말해줬다는 그 사실 때문이었다.


너를 생각하면 행복해. 내가 뭔가 되게 잘해냈다는 기분이 들거든.


트럭 운전 일을 하면서 세 아들을 키워낸 아버지가 외과의사가 된 막내 아들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칠면조 사냥을 나갔다가 엉덩이에 총알이 박힌 채 응급실에 실려왔고, 외과 인턴인 막내 아들은 칠면조 고기는커녕 허옇게 부풀어오른 제 아비의 엉덩이에 얼굴을 박고 밤새 치료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신 그 말은, 그와 같은 자세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있던 내게, 위로가 되었다.




아이가 중학교 2학년 1학년을 마치고 함께 대만으로 갔다. 한창 친구를 좋아하는 나이였고, 학교 생활도 잘하고 있었다. 엄마의 직업과 너의 학업에 훨씬 더 좋은 쪽으로 가는 거라며 아이를 설득해 대만으로 데려갔다. 


우리 모자가 대만에서 어떤 모험을 하루 하루 겪었는지는 이미 이 브런치에서 차고 넘칠 만큼 많이 했으니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대만에서의 자녀 교육과 관련된 내용은 포스팅 “이대도 못 간 주제에”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는 대만에 가자마자 미국 학제를 따르는 국제학교에 입학했고 9학년부터 12학년까지를 다녔고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뭐 한다고 애를 외국까지 데리고 가서 그 고생을 하고는 쯧쯧”하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았다. 


나도 아이만 생각하면 행복했다. 내가 뭔가 되게 잘한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아나토미가 해부학이라는 것도 알아서 기쁘고, 오래 전 저녁 날 함께 혁오 노래를 들으며 앞으로 우리가 이 더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도 기뻤다. 객지에 나가서 혼자 씩씩하게 잘 지내준 것도 기뻤다. 아이 이야기를 하면 그랬다. 내가 뭔가 되게 잘한 것 같았다.


아이의 대학 입학은 나에게 큰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성취는 또 다른 상실이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 갔지만 나는 학교에서 나왔다. 

나왔는데 그것이 그냥 ‘이동’도 ‘상승’도 아닌 ‘하강’으로 보여졌다. 


“이제 뭐해?”

누가 나에게 뭐 하느냐고 묻는 질문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관심인 줄 참 오랜만에 알게 되었다.


이십 년.

1998년부터 끊임없이 일을 해 왔는데 똑 같은 일을 계속 했는데 내가 다시 설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십 년을 한 회사에 근무하면 직책이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을 쌓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빈손이었다.


현재는 서울 소재 대학 몇 군데에 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한 동안 허무함을 느끼는지 우울증에 걸렸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주한 와중에도 무기력은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바쁘게 움직이며 막간을 이용해 상실감에 젖은 나는, 집에 오면 방바닥에 누워 넷플릭스부터 켰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국의 단풍을 5년만에 보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못 보던 풍경을 보니 신이 났고, 물론 그 와중에도 우울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변화가 하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성취습관>이었다. 작가는 성취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취는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서 언어를 조금씩 배워 혼자서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눈으로 밑줄을 쫙 그었다. 이건 바로 내가 4년 동안 해 왔던 일이었다!

누군가 내 손을 덥석 잡아주고는 “그래, 너 잘했다니까”라고 토닥거리는 것만 같았다.


자기가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시 어딘가도 또 가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성취와 상실의 길목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얻은 것이 없을까 봐,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그랬다.

한국행을 고민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성취습관>이라는 노교수의 말은

“그래 어디 한 번 네가 뭘 했는지 보여줘.” 라는 다그침이 아니었다. 
  

여기서 저기로 가는 길에 

찾던 돌멩이 하나 못 주워왔다 해서 

뭔가를 얻지 못하고 힘만 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남에게 번듯하게 해 줄 말이 없다고

뭔가를 잃고만 살지는 않았다고

너는 외국어 하나 배워서 잘 돌아다녔고, 학생들의 이름도 잘 불렀고, 친구도 잘 만났다고.


그렇게 말했다.



출처: 알라딘


(50-51)

 따라서 성취를 위한 성취는 무척 공허하다. 경주마가 머리 앞에 매단 당근을 먹기 위해 경주로를 질주하는 것처럼 끝없는 추격이 이어질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취는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서 언어를 조금씩 배워 혼자서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다. 진정한 성취는 자급자족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정한 성취는 평생의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평소의 생각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나는 성취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성취란 삶이라는 과제를 우리 자신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 안에 내재된 생명력을 길러주는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완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생과 인간관계의 어려운 측면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자제력이 생겨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 거기에 몰두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를 제대로 해내는 중이라면, 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도 더러 있겠지만 인생이 결코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고난일 리가 없다. 


(54-55)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과 전혀 다른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자아상은 우리가 주변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에서 캐럴 드웩은 이렇게 설명한다. “20년 동안 내가 연구를 통해 입증한 바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선택한 관점이 자신의 생활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관점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또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성취할 것인지가 결정되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을 바꿀 정도의 대단히 강렬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게 마련이다. 어떤 예기치 않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경험이 당신의 자아상을 조금 변화시킨다. 변화가 반복되어 증가하면서 이미지 전체가 달라진다. 이 변화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자신의 역량에 대한 지각이 증가하고 성취의식이 고취된다. 이를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자기 효능감 self-efficacy’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123)

자신의 꿈을 실현할 방법에 대해 생각할 때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잠시 멈추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서 그 문제의 핵심에 다른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제 그 문제를 재구성하라. 당신의 관점을 바꿔라. 그러고 나서 문제를 다시 변화시킨 후 당신의 상황을 살펴보라. 그러면 진짜 문제가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130)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돈, 명성, 인정, 사랑 등. 이런 식의 추구는 끝없이 이어진다. 속담에도 이르듯이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목표를 추구할 때의 전율을 진심으로 즐기기 때문에 추구하던 것을 달성한 뒤에는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의 목표에 대해 솔직해질 수만 있다면 이 행동은 본질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내 친구처럼 욕구 불만의 불행한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최근에 어떤 성과를 거두었지?’ 이런 문화 속에서 위상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언제나 새롭고 진화하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면 체면이 손상된 것처럼 느낀다. 이들(131)은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때로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그 애벌레처럼 행동한다. 


(246)

 결과적으로 보건대, 언제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드러내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게 된다. 거절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은 역설적이다. 거절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드러내기가 아니라 감추기다. 


(251)

 이름을 사용하면 관계가 변화한다. ~ 이처럼 이름 외우기는 사람들 사이의 친밀감을 한결 돈독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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