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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11. 2020

그 돼지가 아니기를

내가 나인 것, 나탈리 골드버그 <인생을 쓰는 법>

내 머릿속에는 돼지 새끼가 한 마리 있다. 피부가 허옇고 배가 나오다 못 해 바닥까지 축 늘어진 돼지다. 그 돼지는 자기를 왕돼지라고 부른다. 내 머릿속에 왕노릇을 한다.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No way

 안 돼, 안 된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해?


나탈리 골드버그는 머릿속에서 글을 못 쓰게 하는 방해꾼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세스 고딘은 그 존재를 도마뱀뇌라고 불렀다. 

그것이 나에게는 돼지 새끼다.

그는 너무 크고 뚱뚱해서 내 머릿속을 다 차지하고 앉았다. 내 뇌를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돼지 새끼를 키우고 있다. 내버리지를 못하겠다. 그 돼지가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이다. 나를 평가하고 막고, 또 대화상대까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난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 돼지에게 의견을 묻는다. 나, 그거 해도 되냐고. 

그 돼지를 빨리 버리고 싶다. 그 돼지가 꿀꿀대면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이제는 보내자. 내 머릿속의 돼지를 얼른 내보내자. 엉덩이를 들이밀고 또 들어올지 모르겠으나, 얼른 또 내보내자. 그래, 끝이다.



작년 가을이었다.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유명 웹소설 작가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작가는 청중 혹은 독자와의 소통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끌었는데, 모 사이트에 청중을 가입하게 하고 무기명으로 질문을 올릴 수 있게끔 했다. 청중들이 대부분 대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아주 ‘간단한 가입절차’를 마치고 빠른 속도로 질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버거킹에서 키오스크를 처음 봤을 때처럼 한동안 멍하게 첫 화면을 응시했다. 신문물을 접할 때 내가 쓰는 전략이다. 

본다, 그냥 본다, 오래 본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드디어 가입에 성공했고, 익명으로 질문도 올렸다.

댓글을 다 읽어 보시나요? 극복하기 어려운 댓글을 보시도 했나요?


작가가 소리내어 내 질문을 읽었을 때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거 너가 쓴 거 맞지?”라고 작가가 큰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보이는 일을 하기 전에 남을 의식하는 내 속마음을 고스란히 보였으니 말이다.

작가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뭐, 읽긴 읽어요. 그런데 그렇게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203)

앞에서 말한 공격적이고 무례한 댓글도 어떤 의미에서는 독자의 욕구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멘트인 경우가 많다. 피드백은 독자의 욕구와 관점을 정확히 반영한다. 외부의 환기가 없다면 가람읜 세상은 자신의 시각으로밖에 볼 수 없다. 댓글창은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직격으로 알 수 있는 곳이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그날 강연을 했던 작가가 추천해 준 김휘빈의 <웹소설작가 서바이벌 가이드>의 일부이다.

적어도 내가 직접 만난 작가와 책에서 만난 작가는 머릿속에서 돼지새끼나 원숭이는 키우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돼지에 대해 생각해 본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글쓰기의 본질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어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 문장에서 힘을 얻었다.

난, 돼지새끼를 키우지 않아도 되었다.

내 안의 비논리 때문에 돼지새끼를 날뛰게 내버려두었다. 

글쓰기에서 비논리가 내 발목이라도 잡을까 봐 그랬다. 

그런데 정작 내 발목을 잡은 건 비논리가 아니라 돼지새끼였다.

그 돼지를 이제 황금복돼지로 바꿔야겠다. 

이 또한 지극히 비논리적이다. 

내가 그렇다.




인생을 쓰는 법, 나탈리 골드버그, 한진영 옮김, 페가수스(2013)

(31)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정돈하려고 한다. 그러지 마라. 정돈하려고 하면 글이 지루해진다.

 글쓰기 훈련의 또 다른 원칙은 억누르지 말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침묵이 말하게 해야 한다. 

(41)

사랑에 빠진다는 건 자제력을 잃는다는 뜻이다. 

(73)

 세상의 모든 노력과 열망을 다 바친다고 해서 글쓰기가 되는 건 아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것은 글쓰기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척간두에서 뛰어내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강풍에 날려가거나 세월이나 사랑에 날려가도 괜찮다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74)

 글쓰기의 본질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어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83)

 시간과 결심, 때로는 바위 같은 결심만 있으면 원숭이 마음이 잠잠해질 것이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한다면 다시는 당신의 삶을 쉽게 짓밟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호기심을 키우며 글쓰기에 전념하며 글 쓰는 과정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앵앵거리던 원숭이 마음이 예전만큼 당신을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148)

 사람들은 작가가 글감에서 길을 잃지 않고, 그 글감을 정직하게 활용한다고 믿는다. ~ 경험을 지어내지 않고 적절한 우회로를 개발하면 삶에 내재하는 진실한 감정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충분히 훌륭하다. 또는 충분히 나쁘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은 진짜다. 



참고로,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 책은 글쓰기의 바이블과 같다.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 도서 이미지: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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