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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 Kim Jul 24. 2020

산을 넘고 날개를 달다.
첫 시티라이딩


아들이 사 준 자전거로 한강 자전거길에서만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이브런치 모임이 끝나고 시티라이딩을 한다는 글이 게시되었다. 참석하고픈 마음은 굴뚝이지만 완전 생초짜이니 감히 시티라이딩을 참석하겠다는 댓글을 달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멤버 중에서 재영박사님께서 삼송역에서 모임장소까지 함께 라이딩을 하자고 연락을 주셨다.

“시티라이딩을 참가하기엔 아직 어설퍼요. 저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이지만 박사님께 너무 누를 끼쳐서 조금 더 연습을 하겠습니다.”

“누구나 초보였어요.”

“편하게 가시지요”

더 이상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라이딩할 날의 날씨예보는 “비”. 라이딩 전날까지 수시로 마음이 바뀌었다. 

“도심에서 자전거타기도 처음인데. 비까지”

“갈까? 말까”

지금까지 자전거는 한강 자전거도로에서만 타보았으니 차도 옆을 달리거나 사람사이들 지나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두려움자체였다. 그런데 비까지 ? 내면의 갈등이 커질수록 여기서 주저앉으면 자전거 한강에서밖에는 탈 수 없을 거란 생각도 증폭되었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할 산이었다.   

   

“가자”

토요일 아침. 폭우라는 예보와는 다르게 부슬비가 온 세상을 적셨다. 삼송역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접이식 자전거의 최대 장점은 버스나 전철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초보인 나에게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역에서 자전거를 접고 펴는 것조차 고난이도 기술이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집에서부터 저전거로 삼송역까지 이동하는 편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40km가 넘는 거리를 이른 새벽에 라이딩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자전거는 잘 접었고 지하철 역내로 들어서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앞바퀴 뒷바퀴의 위치는 물론이고 나는 몇 번째 칸에 서야하는지? 앞이 캄캄했다. 비 오는 날, 기우뚱하게 자전거를 붙잡고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단 몇 초간의 시간이 몇 시간으로 느껴졌다. 무사히 지하철에 탑승해서 빈자리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한숨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감이 풀려서였을까? 약수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음을 몇 정거장 지나서야 알았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나온 덕분에 다행히 약속정소인 삼송역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역사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통일로를 라이딩! 한강 자전거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주행. 일반도로에서 첫 라이딩이다. 재영박사님은 초등학생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천천히 주행을 하시면서 세심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도로 턱은 직각으로 올라서야 미끄러지지 않아요.”

“인도에서는 최대한 천천히 가되, 사람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가세요.”

“경사길이 나오면 미리 기어를 저단으로 바꾸어 놓으면 오르기가 쉬워요.”

박사님의 말씀은 이해가 아닌 듣기 수준으로 지나갔다. 주변을 살피면서 페달을 돌려야하는데 그러만한 여유는 전혀 없었다. 거리에서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몸에 익힐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너무나 천천히 흘러가는 공릉천을 따라가는 도로 한쪽엔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어릴 적 시골모습을 담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 눈에 가득찼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넘 멋져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 

앞서가던 재영박사님께서 갑자기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공릉천 아래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징검다리 앞에 섰다. 

”이건 무슨 상황?“

”설마 자전거를 메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건 아니겠지?“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향해 재영박사님께서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엉겁결에 엉거주춤 자전거를 들고서 물가로 내려갔다. 

”자전거 안장을 어깨에 올리고 몸통부분을 잡아요.“

”이렇게 나처럼“

”자 이제 건너갑니다.’

“천천히 한발 한발 딛고 오세요.”

백패킹과 배낭여행을 즐기는 내겐 20kg 가까운 배낭은 참 친숙하다. 오늘은 배낭 대신에 자전거를 내 어깨에 메었을 뿐이었다. 자전거가 무겁지는 않았다. 익숙한 동작이 아니어서 조금 불편했지만 무사히 징검다리를 건넜다.      


“대단한데요.”

재영박사님의 칭찬덕분에 긴장감이 풀리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아이였다.  페달링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필리핀 참전용사탑을 지나고 국도를 따라 가는 길. 차도의 차들이 어찌나 속도를 내면서 지나가는지 조금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졌다. 무사히 목적지인 수작코리아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세웠다. 삼송역부터 이곳까지 지나온 도로들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흘렀다. “아~~ 내가 이런 길을 자전거로 달려오다니!” 감격 그 차체였다. 오늘의 전반부 라이딩은 성공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남궁박사님의 원포인트 레슨이 이어졌다. 자전거 접고 펴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기본적인 방법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좀 더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접는 요령과 초보자가 자주 하는 실수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자전거 피팅을 해 주셨다. 피팅 후에 자전거에 오르니 페달링이 훨씬 편했다. 아무리 공대를 나오셨다지만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삼송역으로 돌아가는 길. 올 때는 재영박사님하고 둘이서였지만 이젠 4명이서 함께 그룹라이딩이었다. 남궁박사님, 명호소장님, 그리고 재영박사님. 난 리더인 남궁사님 뒤에 바짝 붙어서 수신호을 따르면서 달렸다. 생초보 라이더는 발바닥에 땀날 만큼 페달을 굴리며 남궁박사님의 주으사항까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는 쫑긋 세웠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더라면 내 운명도 달라졌을 텐데. 

    

경사도 있는 길을 오르고 내릴 때, 도로를 달릴 때의 기본자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이용방법, 지하철에 자전거 거치 방법 등 끝없이 각종 팁들이 방출되었다. 이미 내 용량은 벗어났다. 

길은 이미 구면이라 갈 때 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주변도 내 시야에 들어왔다. 좀 더 안정된 라이딩으로 삼송역까지 복귀 라이딩을 마쳤다. 참 길고도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것으로 오늘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야라를 즐기러 인사동으로 이동을 한다고 하셨다. 

“서울의 밤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다니?”

“내가?”

“자전거로?”

내면에서 폭풍이 몰아쳤지만 태연한척 했다.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 살다보면 거역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만나고 그 순간들을 정면으로 넘어서야한다. 난 두 번째 산을 넘어야했다.

“도망가서는 안 돼!”     


인사동의 밤은 한적했지만 익선동은 사람들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로 빽빽하다니! 자전거를 끌바로 밀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걷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순간순간이 배움의 현장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선택의 시간이었다. 버스로 갈 것인가?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인가? 서울 도심을 그것도 밤에 통과하는 것은 초보라이더에겐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자전거를 접어서 버스에 올라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버스가 도심통과보다는 부담이 적을 거라 생각했다.


“전 버스로 갈게요.”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명호소장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앞장설 테니 그냥 나만 따라오세요.”

“마장동까지 함께 가면 집에 가실 수 있으시잖아요?”

극복해야할 새로운 난관이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인데 앞장서 주신다니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하는 중인데 명호소장님은 “자 갑니다.” “따라오세요~”하시며 자전거 페달을 돌리셨다.      

종로에 있는 자전거도로의 폭은 너무 좁았다. 자전거타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봉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다. 가끔씩 심호흡을 하면서 나 자신을 격려했다.

“괜찮아.”

“참 잘하고 있어.”

종각에서 시작한 길은 동대문까지 이어졌다. 동대문에서 청계천으로 우회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두타를 지나서 신평화시장입구로 들어섰다. 대낮처럼 밝았다. 밤에 하루를 시작하는 도매시장들이 가득해서 활기가 넘쳤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일부 구간에선 차량과 함께 엉켜서 많이 위험했지만 무사히 마장동에 도착했다. 


명호소장님과 헤어져서 홀로가 되었다. 마장동에서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홀로가 되었지만 매번 다니던 길이라서 밤인데도 마음이 편했다. 생초보가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선배님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유익한 팁을 배웠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파란 밤하늘이 더 청명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다시보기로 시청을 했다. 불과 몇시간 전이었는데 꿈처럼 느껴졌다. 막연했던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전거로 보는 세상은 걷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작은 바퀴를 서서히 돌리면서 만나는 세상은 슬로우비디오로 펼쳐지는 한편의 영화였다. 이젠 두 바퀴로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두 바퀴의 날개를 얻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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