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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 Kim Jul 29. 2020

맑은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느끼는 물소리길 라이딩

그녀가 없어서 아쉬움이 컸던 날

엄청난 폭우가 예상된 날. 서울의 새벽하늘은 황홀했다. 태풍이 오기 전 하늘이라 더 아름다운 걸까? 라이딩 준비를 하면서도 눈은 하늘의 빛에서 떼지 못했다. 

"참 멋진 새벽을 열어주니 해님 고마워요~"

폭우가 예상된 날인데도 하늘을 보니 걱정이 사라졌다. 우중 라이딩은 여러 번 다녀와서 큰 걱정은 되지 않지만 빗길 자전거는 참으로 위험하다. 언제나 조심 또 조심.


그룹 라이딩 전에 주란과 새벽 6시에 만났다. 양수역에서 양평역까지 애피타이저 라이딩을 위해서. 이미 남한강 자전거길 종주하면서 달렸던 그 길이었다. 그런데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도 그칠 줄 몰랐다. 일단 양수역까지 차로 이동한 후에 날씨 상황을 좀 더 살펴보고 라이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양수역에 도착하니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 심하게 쏟아졌다. 마치 물 폭탄처럼. 우리 둘만의 개별 라이딩은 포기했다. 모이는 장소인 양평역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며 새벽 드라이브를 1시간 정도 즐겼다. 


우리의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 양평역에 도착했는데도 빗발은 좀체 약해지지 않았다. 그녀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그냥 갈래!"

"엉???"

"지난번 영동에서 비 오는 밤에 길 잃고 헤매었던 기억이 너무 무서워"


바로 지난주였다. 김천부터 영동까지 라이딩하는 날.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늦은 오후부터는 비는 말 그대로 그냥 막 부어댔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2명이 오지 않았다. 그녀와 재영회장님. 이상해서 재영회장님께 연락을 해 보니 식당을 못 찾고 계셨다. 다행히 5분 정도 지나 식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 안색이 별로였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꾸 신경이 쓰였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헬멧을 영동 예술창고에 벗어놓고 자전거에 올랐잖아. “

”그런데 헬멧을 쓰지 않으니 판초의 모자가 흘러내리며 시야를 가려서 자전거 타기가 너무 힘들었어. “

“저녁도 건너뛰고 싶었을 정도로."

그날 밤 식당으로 갈 때, 영동 예술창고 원숙이 화가님께 헬멧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느라 우리 모두 헬멧을 두고 식당으로 왔었다. 하필 그 시간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그날처럼 비가 쏟아지니 그 악몽의 시간이 다시 생각이 난 게다. 그녀를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는 그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원하지 않으면 라이딩하지 않아도 돼."

"그래. 그럼 나 그냥 집으로 갈게."

그녀는 나를 양평역에 내려주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갔다.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비가 오는데도 오일장터 입구엔 옥수수를 커다란 솥에 삶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뜨거운 물에 삶아지고 있는 옥수수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참으로 옥수수를 샀다. 모두 함께 거리에서 판초를 입고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었다. 빗소리와 협연하는 옥수수 하모니카 연주. 우리에겐 낭만인데 지나가는 이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옥수수를 먹고 곧바로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 배부르다고 한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는지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웠다. ‘보통’도 아닌 ‘특’으로.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기야 배가 든든해야 페달링도 잘될 테니까.


 오늘 라이딩 코스는 물소리길 4코스와 5코스. 양평에서 시작해서 원덕역을 경유해서 용문역까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비만 많이 내리지만 않으면 상쾌한 강바람과 더불어 즐거운 길이 될 것이다.


 라이딩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비는 그쳤다. 그녀가 생각났다.

”돌아가는 길에 폭우를 만났을 텐데. 양평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

”내가 좀 더 강하게 같이 가자고 권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길에 고인 빗물에 라이딩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쳤다. 반영이 있는 시골길은 참 아름다웠다. 반영 속에는 그녀도 함께 있었다. 이 길을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언제나 빗나가는 일기예보. 아직까지는 비 예보로 라이딩을 취소한 적은 없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참 궁합이 잘 맞는 모임이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이미 구면. 옛 친구를 만나온 느낌이 들었다. 옛 친구는 언제 만나도 반갑다. 물안개로 뒤덮인 남한강과 비를 맞아서 더욱더 싱그러워진 초록세상은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코로나로 답답한 일상에 최고의 힐링 선물이었다. 비도 잦아들었다. 판초를 벗었다. 바고 곁에는 남한강이 시원스럽게 흘렀다. 맑은 물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페달을 돌리는 발걸음도 한결 수월했다.  


물소리길 4코스 중간쯤에서 흑천으로 들어섰다. 쪼그만 빵집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동네에서 빵 좀 하는 집' 그 옆에는 '찌깐한 커피숍'. 이름만으로도 맛이 가늠되었다. 이름 짓느라 무척 고심했을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졌다. 빵도 커피도 참 맛있었다. 가격까지 착했다. 커피와 함께 여러 빵을 골라 먹는 재미까지 즐기며 시원한 야외 테이블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사회에선 참 무게감 있는 분들인데 함께 라이딩할 때는 어김없이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유쾌하게 왁자지껄했다. 모두에게 엔도르핀이 가득 채워지는 시간.


물길을 따라가는 물소리길은 이름만큼 예쁜 길이다. 봄에는 벚꽃터널을 이룬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종주하며 그녀와 함께 왔던 이곳의 벚꽃터널.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었는지? 꽃비를 맞으며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바로 그 길이다. 벚나무가 나란히 줄 서있는 길을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굴리며 나아갔다. 비 갠 후의 상큼한 바람이 살랑 사랑 나무에서 흘러나와 서서히 나를 감쌌다. 초록 샤워 시간은 한동안 이어졌다.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며 지나가는 동네 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

딱 한 단어의 인사말이지만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기분 좋아지게 하는 신비의 묘약이다.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낯선 이의 인사에 잠시 주춤하다가 어색한 웃음으로 ”안녕하세요. “라고 답해주셨다. 


무인 찻집 '별내이야기' 오늘의 목적지이다. 이곳의 주인은 별내마을의 양춘모 여사님. 전에 남궁박사님께서 이 길을 지나가다가 인연을 맺으신 분이시다. 남궁박사님은 한 번의 만남을 평생 가지고 가는 질긴 인연으로 만드시는 특별한 재주를 가가 있으시다. 그녀는 귀촌을 했다. 자그마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물소리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무인카페를 운영한다. 언젠가 물소리길을 걷게 되면 라이더가 아니라 걷는 사람으로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겠다. 


방금 삶아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감자. 감자 껍질이 살포시 벗겨져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뽀얀 속살은 부드러웠다. 설탕이 없어도 충분히 달달했다. 배가 부른데도 감자를 3개나 먹었다. 유독 감자가 맛난 것은 비료를 쓰지 않고 한약재로 재배했기 때문이란다. 설명을 듣고 나니 감자가 더 맛있었다. 감자와 함께 아마란스란 차를 마셨다. 아마란스는 혈관에 참 좋은 차. 이름도 예쁘지만, 핑크빛 색이 더 예뻤다. 감자를 먹고 나니 토마토, 토마토를 먹고 나니 옥수수가 나왔다. 방금 찐 옥수수에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때 남궁박사님의 말씀을 하셨다.

"어떤 옥수수가 가장 맛있을까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방금 딴 옥수수입니다. 바로 이 옥수수"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다. 

"맞아!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는 거야."


 뒷문으로 나가니 그녀의 밭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감자, 옥수수, 토마토, 참외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먹은 모든 음식이 이 밭에서 그녀가 직접 키우신 것들이었다.

"내가 먹으려고 조금씩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판 것은 올해 감자가 처음이었어요."

"작년에 먹어본 사람들이 주문해서 올해 수확한 감자는 모두 완판 되었어요."

그녀는 프로 농사꾼, 성공한 농사꾼이었다. 본인이 먹기 위해 지은 농작물이니 누구라도 믿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별내이야기를 떠나서 다시 물소리길로 들어섰다.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 모두 끌바로 걸었다. 자전거와 함께 1km 정도 걷고 나니 이젠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꽤 돌아가야 한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자전거를 어깨에 멨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징검다리는 아니어도 한발 한발 옮기는 이들의 즐거운 소리가 흑천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자전거 소풍날.


긴 거리를 라이딩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 쉼의 시간을 가졌다. 카페 'JUN 179'. 펜션도 함께 운영하는데 카페 앞으로는 흑천으로 흘러들어 가는 작은 천이 있어서 조망이 시원했다. 잔디밭도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다. 바로 전에는 시골 농가, 지금은 도회지 냄새 가득한 카페. 우리의 라이딩은 참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용문역에 도착하니 먹구름은 모두 사라졌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했다.

”아침에 폭우만 쏟아지지 않았으면 “

”그녀가 양평역에서 돌아가지만 않았으면 “

”즐겁고 행복한 시간에 그녀가 함께 했었다면 “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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