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산으로 가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이번 주엔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좀 많았다. 오전 내내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오후엔 뭘 할까?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데 너무 멀리 가지 않고 한가로이 나만의 상념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딱 꼬집어 ‘요기다’하는 곳이 없을 때 생각나는 곳이 있다.
고양시의 창릉천. 그곳에 가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특별한 핫플레이스가 있는 곳도 아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북한산을 바라보며 겨드랑이를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여유로운 산책길’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처음 이 길을 갔을 때는 이곳으로 이사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합이 잘 맞는 곳이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나 설명을 딱 꼬집어서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길에 대한 이유가 꼭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니까.
삼청동에서 광화문 그리고 서대문을 지나서 마포대교 북단에서 한강 자전거도로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해진다. 도심 라이딩은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인도는 사람으로 차도는 자동차로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도로는 거의 없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도심에서 자전거도로가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한강으로 들어서니 잔디밭, 자전거도로, 보행로 모든 곳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코로나로 한강은 더욱더 북적인다. 하늘공원을 지나고 난지도를 벗어나니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양생태공원을 지나고 강매석교를 지나면 창릉천이 시작된다.
서울에서 끈적거렸던 바람도 창릉천으로 들어서니 시원해진다. 이제부터는 그대로 직진만 하면 북한산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가을엔 억새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싱그런 초록 풀이 창릉천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강 자전거도로엔 라이더들이 가득한데 이곳을 지나는 라이더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불과 몇 km 떨어진 곳인데 참으로 한가롭다.
마음이 편해진다. 페달링의 속도도 한결 느려진다. 창릉천을 따라 조성된 텃밭엔 상추, 고추, 호박 등 아주 다양한 채소들이 가득하다. 한 텃밭에선 상치를 따는 여인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문득 그녀의 저녁 식탁이 궁금해진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가족의 뒷모습도 정겹다. 웃자란 청릉천변의 잡풀조차 사랑스럽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와 서서히 흐르는 청릉천을 바라본다. 무념무상. 그냥 흘러가는 물을 따라 마음이 둥실 두둥실 흘러간다.
극히 평범한 일상이어서 더 행복하다. 나이가 들어감일까? 여유롭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지는 요즈음은 서울보다는 지방의 작은 도시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초록의 향해 취해서 페달을 굴리다 보니 어느새 창릉천의 끝자락 삼송이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북한산 입구에서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가 연신내역까지 자전거로 이동하고 연신내역에서 버스로 점프하면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접는 자전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이곳에서 집까지는 자전거로 3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연신내역에서 점프를 하면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시간도 절약하고 좀 더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도심을 지나서 안전하게 연신내역에 도착해서 오늘의 라이딩을 마친다.
엄청나게 멋진 길이 아니어도
꼭 봐야 하는 뷰 포인터가 없어도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시골길을 여유롭게 달리니
스르륵 행복이 밀려든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구나.
내 두 손에, 내 마음에 가득 넣어서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