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책임으로 다뤄야 할 돌봄과 장애에 대하여
호주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저자 루아나에게 건넨 이 말은 위로이자 선언이었다. 아들이 높은 불안과 틱장애, ADHD를 지닌 신경다양인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 저자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두려움 대신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제'가 아니라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루아나, 메멘토, 2025)는 그날 이후의 이야기다. 아이의 장애를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해, 장애인 지원사와 요양보호사로 살아가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돌봄이란 무엇이고, 누가 그 돌봄의 무게를 지고 있는가를 묻는 사회적 기록에 가깝다.
이 책은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자폐나 ADHD를 병리적 결함이 아닌 인간 다양성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이 시각은 저자와 아들의 관계 뿐 아니라, 그녀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아이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 변화는 결국 저자를 돌봄 노동의 세계로 이끈다. 그는 돌봄 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호주의 돌봄 체계를 몸으로 배운다. 책에는 장애인인 서비스 이용자 중심으로 세분화된 호주의 돌봄 체계가 기록돼 있다. '이게 가능하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세심하다.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인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장애 캠프에 참여하며, 전동 휠체어를 타고도 휠체어 그네를 탈 수 있는 사회. 루아나는 이런 장면들 속에서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 설계에서 비롯되는 '돌봄'을 마주한다. 성인 그룹 홈만 해도 지원형 독립 주거, 장애 맞춤 주거, 단기·중기 주거 지원 등 장애 정도에 따라 선택해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장애와 돌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
"휠체어를 탄 사람이 2층 식당에 갈 수 없는 이유를 '그 사람의 장애 때문'이라고 말하면 의료적 관점이다. '승강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사회적 관점이다."
짧지만 강렬한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저자는 호주의 제도가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장애와 돌봄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책에는 저자가 돌봄 노동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사유가 담겨 있다. 장애뿐 아니라, 이민, 돌봄노동, 다문화, 노년, 호주의 노동문화, 호주의 노인복지와 장애복지 제도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한국에선 영어교사로 일했던 저자가 육체노동자인 돌봄 노동자로 살아가며 깨닫게 되는 노동의 가치, 정규직·파트타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세분화되어 유연하게 운영되는 노동 현장, 가정방문 요양사로서 경험한 임종과 노년에 대한 생각, 신경다양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이 아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호주의 장애복지제도인 NDIS를 중심으로 한 현장 기록이 담겨, 사회적 지원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루아나는 돌봄을 단순한 사랑이나 봉사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함께 설계하고 책임져야 할 구조이며, 개인의 고통이 아닌 공동체적 의무로서 존재한다. 그는 돌봄의 현장에서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반복해 마주하지만,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얻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장애 자식을 둔 부모의 소원이 들린다. 루아나는 이러한 현실을 책을 통해 조용히 지적한다. 돌봄이 개인의 부담으로만 남지 않고, 사회 구조 속에서 함께 감당될 때, 우리는 인간의 약함과 차이를 두려움이 아닌 이해와 존중으로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는 케어러로 살아간 한 여성의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가 돌봄과 인간 존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구조화할 것인지를 묻는 책이다. 루아나의 경험은 돌봄이 개인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될 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