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한 당신의 예술에게
내가 살고있는 마을에선 일 년이면 두세 번씩 큰 축제가 열리는데, 주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초청된다.
그런 날이면 좋아하는 가수 이미지가 랩핑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어머니 팬들이, 가수를 대표하는 컬러의 옷과 굿즈들로 치장한 채 온몸으로 팬심을 표현하며 공연장 주변을 누빈다. 아이돌 공연 못지않은 풍경이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고, 그 팬심의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한 TV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가수의 팬 이야기가 소개됐다. 스무 살 딸을 병으로 잃고 큰 상실감에 빠져 있었던 팬은, 같은 사연을 지닌 가수의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노라 눈물로 고백했다.
그 가수는 20대 형 두 명을 병으로 잇달아 잃고,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위해 배를 타면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슬픈 삶의 서사와 달리, 그는 무대 위에서 장구를 이용한 화려한 퍼포먼스로 밝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아. 예술의 힘이구나.'
유명 미술작품을 보고, 클래식을 듣고, 문학 작품을 읽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얻었다는 고상한 고백과 꼭 같은 것이었다. '예술가의 삶의 서사가 예술로 승화되어 한 사람을 구원하는구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예술의 가치와 힘을 알게 되는 시작이었다.
몇 달 전, 런던 여행에서도 그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런던 대부분의 미술관이 무료입장인 것과 달리 10파운드(약 2만 원)의 관람료를 내는 곳을 방문했을 때다. 관람전에 잠시 1층의 까페에 들렀는데, 꽤 넓은 공간이 70~80대로 보이는 영국 노인들로 꽉 차 있었다. 40대 후반인 내가 손님 중 막내였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어리둥절해하며 한참 동안 두리번거렸다.
이 미술관은 물론이고, 여러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노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가 읽어주는 작품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는 고령의 노인도 있었고, 불편한 신체 조건을 가진 장애인들도 여럿 있었다.
미술관은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곳인데, 많은 불편함에도 무엇이 이들을 방문하게 했을까? 궁금했다.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지만, 그들이 느끼는 문화적 만족감과 자부심만큼은 인상 깊게 전달받았다.
눈에 띄게 늘어가는 노년층을 위한 경제적 준비만큼이나 문화 예술과 관련한 준비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을 상상해 볼 때, 나 역시도 생존을 넘어 존재로서 느끼는 만족감과 자부심은 꼭 필요하다. 부유한 노년을 보내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접하고 누릴 수 있는 예술의 기회가 많기를 바란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
그런 예술이 개인을 넘어 많은 이들의 삶을 구원한 사례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로 가는 중계기지인 테레진 강제수용소에서의 일이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그곳엔 15세 미만 아이들이 1만5천 명이나 수용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디커브랜다이스라는 화가는 매일 두려움에 떠는 유대인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실제 디커를 포함해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자유와 개인의 존엄을 완전히 빼앗긴 상황에서 디커는 아이들의 자아를 키우기 위해 미술을 통한 자기표현을 교육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보고 토의하고, 전시회도 열고, 연극도 공연하며 공포를 이겨내고 자유와 희망을 지켜냈다.
나중에 발견된 디커의 큰 짐 가방 두 개에서 아이들의 그림 4500여 장이 발견되었는데, 분노나 두려움이 아닌 꿈, 일상, 연날리기, 기차, 바다생물과 같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생기발랄함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생존한 제자들은 디커의 미술교육을 통해 희망과 자유를 상상하는 법,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법,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회상(이소영,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한다.
▲테레진 수용소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그림테레진 수용소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그림은 '유대인 프라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공식 사이트에서 일부 작품과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 유대인프라하박물관
미술과 여행을 소재로 다수의 책을 쓴 정여울 작가는 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 한계에 부딪히고 진로 변경의 갈림길에서 고흐의 그림을 떠올렸다고 한다. 절박함에 적금을 해지해 고흐의 그림을 보러 뉴욕으로 갔고, 그곳에서 작품에 담긴 작가의 삶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위로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구미정 목사는 자신의 책 <교회 옆 미술관>에서 '기술에 중독된 시대에 우리를 구원하는 건 예술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 '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종교와 예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세상을 이롭게 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후자라고 답하겠다'라는 목사로서는 다소 위험한(?) 발언도 남겼다.
그림 한 점, 글 한 편, 음악 한 곡일 뿐인데. 살아 움직이는 미디어가 판을 치는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난 그 이유를 작가의 이야기, 삶에서 찾고 싶다.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세상과 자신을 보는 예술가들이 재능과 온 힘을 다해 표현해낸 작품들은 결국 누군가의 삶에 가서 닿을 수밖에 없다.
슬픔, 고통, 기쁨, 상상, 도전, 도발 등 작가의 의도를 담아 집착적인 열정으로 표현해낸 작품엔 작가의 마음과 생각, 의지가 투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결과물들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와닿아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감염된다고 한 톨스토이의 말처럼 말이다.
섬세한 돌봄이 필요한 어느 순간, 어느 영역에 예술이 우리를 찾아와, 돌본다.
사람은 정서적인 존재이고, 때론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는다. 그러나 숨 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삶 가까이에서 우리의 정서와 영혼을 밝히는 예술이 꼭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 될 예술 말이다.
예술은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직접 시도하는 예술이 필요하다. 거창할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없다. 나를 표현하는 그 무엇이면 충분하다. 자신을 담아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글을 쓰면 된다. 거대한 기술과 사회구조 앞에서 개인은 초라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그럴수록 내 삶의 주도권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고 예술로 말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표현하는 존재다. 태초의 인간은 말하기 전에 노래했고, 걷기 전에 춤을 추었으며, 글을 쓰기 전에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음악과 무용, 미술로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확장하며 인간다움을 지켜왔다. 예술, 즉 표현은 인간의 본능이고, 삶의 일부였다.
요즘 나는 '쓰는 인간'이 되려 한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나를 되찾기 위해 궁지에 몰려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삶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예술이 되어 가고 있다.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기쁨과 위로, 도전이 되어 남은 삶을 함께할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만의 예술로 삶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부디 당신의 예술에 눈뜨기를, 그리고 소담한 당신의 예술을 창조해가기를.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