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직은 마흔 아홉

자타공인 어른의 숫자, 50을 앞두고

by Sori

<아직은 마흔 아홉>라는 제목의 MBC 아침 드라마(1990년 방영)가 있었다. 나이에 쓰인 '마흔 아홉'이라는 숫자가 초등학생인 내게는 상상도 못할 큰 숫자여서인지, 내용이 좋았기 때문인지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제목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다.


스물 아홉, 서른 아홉을 지날 때, 어쩌면 저 제목을 기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놀랍던 나이를 불과 1년 앞둔 지금, 나는 종종 다시 그 제목을 떠올린다. 이십대, 삼십대에는 밀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40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 마음이 애처롭고 애틋하다.


마흔아홉, 막상 그 자리에 도달해 보니 그 애절함이 단순히 숫자의 변화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조금은 '젊음'이 허용되던 나이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벗어나는 듯한 기분 탓도 아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눈에 띄게 약해지는 건강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나름 노력하며 조금이라도 건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데,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와 노크하는 '50'이란 숫자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 보고 싶은, 조금은 가혹하고 무거운 숫자다. 자타공인 '어른'의 숫자랄까.


미래 평균 수명 120세를 말하는 시대라 젊음의 시간도 조금은 길 줄 알았다. 40대 중반만 되어도 다양한 건강 이슈들이 생긴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40대를 넘기면서 예전보다 골골거리는 날이 늘었지만, 워낙 저질 체력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다.


체념과는 다른 '받아들임'

▲연약하고 보잘것없어져 가는 내 몸을 위하고 돌보려는 마음이 자란다. ⓒ kostyadyadyun on Unsplash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체력 하나는 자신 있던 남편이 피곤해 하는 횟수가 늘고, 친구의 남편이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입원하는 모습을 보며 실감한다. 아, 40대 후반의 건강이란 이런 것이구나. 좋은 컨디션으로 활기차게 외출하는 날도 반나절을 보장할 수 없다. 대여섯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에너지가 떨어지고 몸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조금 멀리 운전이라도 하고 나간 날이면, 돌아올 길이 걱정되어 조급해진다.


더 슬픈 건, 내일 아침의 컨디션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멀쩡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발가락 관절이 아파 걷기 불편하다든지, 허리가 갑자기 시큰거린다든지, 이유 모를 두통에 잠이 깬다든지. 그 종류는 다양하고, 끝이 없다.


"발가락이 왜 이러지?", "머리가 아프네", "허리가 또 이상해."


잠자리에서 나오며 튀어나오는 달갑지 않은 아침 인사가 민망하다. 너무 자질구레해서 말하기도 뭣한 통증들도 많다. 물론 아직 활력 넘치는 40대 후반의 여성들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또래 여성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형편이다.


변화하는 몸으로 맞이하는 50대가 주는 나름의 유익도 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제한적'이라는 사실 앞에 겸허해진다. '모든 가능성'이 주는 피로에서 벗어나 '소박한 안정'을 선물 받는다. 체념과는 다른, '받아들임'이 주는 유익이다.


연약하고 보잘것없어져 가는 내 몸을 위하고 돌보려는 마음이 자란다. 이렇게 나는 50살을 앞두고, TV만 틀면 나오는 건강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이렇게 무한 반복 생성될 수 있는지, 또 꾸준한 관심과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몸소 알아가는 중이다. 50은 건강 이슈를 맞이하며 문을 여는 나이인가 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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