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홉살

맛있는 거 별로 안 사 주는 집에 태어난 슬픈 인생사

by Sori

“맛있는 거 별로 안 사주는 집에 태어났네.”


마트 전단지에 실린 일자별 할인 품목 중에서 소고기를 주의 깊게 보던 둘째가 이번주 토요일엔 ‘이 고기를 사달라’며 한우 채끝살을 가르키고 있었다.


“우리 집 평소에 고기 많이 먹잖아. 한우는 비싸서 자주 먹지는 못해”라는 말에 실망한 둘째의 반응이다.


먹을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홉살 둘째는 특히 고기류를 좋아한다. 바다에서 나온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미역국과 김밥 외엔 근처도 안 간다.


유아 때 부터 어디에 먹을 게 있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본능적으로 너무 잘알아서 ‘먹는 천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두 살 아이 입에 들어간 치킨 윙이 말끔한 얇은 뼈 두개로 정리되어 나왔다.


“오능 강시근(간식은) 모야?”

어린이집에 돌아와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건네는 첫 마디는 한결 같았다.


음식에 영재끼가 있던 아이는 지금도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고, 관심이 많다.


오므라이스 잼잼 이라는 두꺼운 음식 관련 책을 책가방에 지고 다니면서 읽는다.

“엄마, 삼부점 먹어봤어?” 책에서 본 음식을 물어보고,모르는 음식은 알려준다.


“내일 아침으로 뭘 먹을까?”

잠자리에 누워 시리얼을 먹을지, 호빵을 먹을지, 간장 계란밥을 먹을지 내일 아침 식사 메뉴를 결정한 후 잠든다.


먹는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열 두살, 아홉살 아들들 덕분에 장보기 횟수와 양이 늘고 있다. 매일 고기를 먹고 있지만 요 몇일 부쩍 소고기 타령이다.


돼지든, 닭이든, 소든 상관없이 고기면 오케이인 첫째와 달리 둘째는 그 날 그 날 먹고 싶은 고기도 분명하다.

“오늘은 치킨이 땡기네”

“오늘은 목살 먹고 싶네.”

어이가 없다가도 귀여움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대로 다 대령은 못하지만, 그 ’진심‘을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어 가급적 아이의 땡김을 채워준다.

그렇게 엄마가 마음을 쓰고, 지갑을 열고 있건만 저런 3인칭 관점의 신세한탄을 하다니.


괘씸하면서도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두고 두고 기억할, 마음에 미소가 차오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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