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다운, 가장 적합한 집을 짓자”
“언젠가는 우리 땅에, 우리 집을 짓자.”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결혼 직후부터 남편이 밤마다 마주 앉아 들려주던 이야기. 아니,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던 이야기.
그 말이, 그 한마디가 그렇게 자주 들릴 줄은 몰랐다.
처음엔 열심히 들어주었다. 모양이 바뀌고, 기능이 덧붙고, 소재가 업데이트되었다. 어느 날부터 그 말은 거의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매일 밤, 진심으로, 마치 처음 말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참 내, 난 관심 없거든.’
‘그게 현실 가능하다고 생각해?’
‘언제까지 구름 위에 계실 거야? 이제 좀 땅을 밟으시지.’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리며, 나는 남편의 말이 현실이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만 4년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그 한마디가 현실이 되었다.
우리 가정의 ‘진짜 현실 이슈’가 되었다.
결혼 5년 차를 향해 가면서 남편은 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지금 당장은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시처럼 물량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요동치는 지역도 아니고,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당장 필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꼭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필요가 생기면 그때 정하면 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남편에게 집이란 단순한 거처가 아니었다.
커가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환경에 대한 고민, 그러나 이제 막 자리 잡은 일터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앞으로의 삶의 형태,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이 담길 ‘틀’을 고민하고 있었다.
“신도시 아파트를 보고 왔어.”
아이들과 나는 1시간 거리의 신도시에서 살고,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이 지역에 남는다면 우리 집을 짓고 싶어”
조심스럽지만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소도시에 계속 산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담은 집을 짓고 싶다는 뜻이었다.
당시 지방에도 아파트 투자 바람이 불며 분양 소식이 쏟아지던 때였다. 그는 아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단호했다.
“주말 부부는 싫어. 집을 짓는 건 더 싫고.”
가족은 함께 지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게다가 재정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동네에는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곳도 없었다.
“해미는 어때?”
무심하게 던진 남편의 한마디에 살짝 흔들렸다.
‘해미라면...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틈을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되었고, 결국 땅 계약서 작성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그날 우리는 사인을 했다.
첫 1.5룸 전세 계약, 사업장 계약, 전원주택 전세 계약에 이어 네 번째 사인이다.
첫 사인은 떠밀리듯 한, 어쩔 수 없이 한 못마땅한 사인이었다.
두 번째는 두려움 반, 용기 반의 사인.
세 번째는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싶은 감사의 사인.
그리고 오늘의 사인은, 아직 이름 붙이긴 어렵지만, 분명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의 사인이었다.
‘우리 가정다운 집을 짓는다’는 책임감.
‘4년 동안 쌓아온 생각을 현실로 만든다’는 책임감.
그리고 ‘대출로 시작해 대출로 끝날 공사와 상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책임감.
그 모든 생각이 뒤섞인 채, 우리는 그날, 우리 집을 지을 땅에 사인을 했다.
계약서를 덮는 순간,
‘결국 하는구나.‘
체념 반, 기대 반의 묘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우리의 집 연대기가 시작되었다.
그날의 사인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남편의 짓고 싶은 집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짓는 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