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집 콘셉트부터 정하자. 플레이그라운드 어때?”
“재밌겠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생각과 잘 맞는 것 같아. 좋아!”
집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한동안 집안에는 싸늘한 공기가 돌았고, 서로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다. 부동산이냐, 추억이냐. 그 결정의 끝에서 우린 과감히 추억을 선택했다.
짓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꿈꾸던 ‘우리 집’의 그림을 활짝 펼쳐가기 시작했다. 풀어가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큰 방향은 늘 같았던 부부의 팀워크 덕분에 그림은 쉽게 그려졌다.
그 밑바탕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결정이 있었다.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바랐던 건 아이들이 자신다운 삶을 만들어 갈 창의성을 갖추는 것. 우린 ‘우리다운 집’안에 그 바람을 고스란히 담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창의성의 중심엔 놀이가 있었다.
유년 시절 마음껏 뛰고, 놀고, 상상하면서 얻은 자극과 즐거움이 아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줄 거라 기대했다. 그 자유로운 확장이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에 바탕이 되어줄 거라 믿었다.
문만 열면 잘 갖춰진 놀이터와 별별 문화를 다 만날 수 있는 대도시와 달리, 시골살이에선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놀이터가 들어왔다.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오는 꼬마 손님들의 공통점이 있다.
문을 열자마자 “와~~~!”하고 감탄을 터뜨린 뒤, 쏜살같이 미끄럼틀을 향해 달려간다. 작은 암벽, 그물망, 철봉, 그네, 집라인, 샌드백이 자리한 놀이 존(zone)에서 아이들은 마치 정해진 루트라도 있는 듯 거의 같은 순서로 논다.
미끄럼틀을 서너 번 타고, 미끄럼틀 위쪽 중이층 방 개구멍을 통해 그물망으로 나왔다가, 다시 개구멍을 지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철봉을 한 번 만져보고, 그네를 타고, 집라인으로 마무리.
그러다 중정 트랙을 따라 뱅뱅 돌며 뛰고, 잡고, 숨바꼭질한다. 캐릭터 마스크를 쓰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치열한 너프건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진지함에 웃음이 난다.
그래, 마음껏 몰입해라.
이 집은 그러라고 지은 집이니까. 우리 집 아이, 남의 집 아이 할 것 없이 마음껏 뛰며 자유롭게 놀이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보면 어깨가 펴지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다고 늘 흐뭇한 건 아니다. 놀러 온 아이들이 집에 안 가려고 떼쓰고, 간식에 저녁까지 먹고도 한참 후에야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친 몸으로 손님이 돌아가길 기다리는 마음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진짜 놀이터로 착각한 듯 거침없이 뛰어노는 녀석들이 통제가 안 될 때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뭐 하나 부서지는 거 아니야?’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한바탕 놀고 가면 집 전체는 장난감 밭이 된다. 너프건 총알 줍기는 포기 상태다. 문득, 자유를 얻는 대신 단정함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열린 사고를 위해 한껏 올린 층고 덕분에 우린 겨울마다 화장실 딸린 방을 두고 미끄럼틀 옆 중이층 방으로 피난을 간다. 밤사이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미끄럼틀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엄마!” 하는 부름을 못 들은 척하며, 남편에게 그 화장실 메이트의 역할을 슬쩍 넘기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구조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특별한 경험인 건 분명하지만, 솔직히 꽤 불편하다.
‘아이들 금방 큰다’는 조언처럼 아이들은 어느새 10대가 되었다.
미끄럼틀에 잘 오르지 않고, 활동량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몇 년 후에 짓자’라던 나에게 ‘아이들의 유년은 길지 않다’고 설득했던 남편의 말이 요즘 실감이 난다.
주택은 짓는 순간부터 마이너스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부동산 가치와 추억 사이에서 수억 부자가 아닌, ’추억 부자 되기’를 선택했던 우리의 판단이 맞았는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부모가 됐지만, 이렇게 확신할 수 없는 선택을 해가며 아이들을 키워왔다. 우리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자라줄지도, 사실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 바랐던 마음만은 분명하다. 자신다운 삶을 만들어 갈 창의성을 응원하며 엄마 아빠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집에 담아낼 용기를 냈다는 것. 그 마음만큼은 꼭 아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다른 건 몰라도, 추억만큼은 한껏 쟁인 시간이었다는 건 기억해 주겠지?
아이들이 크면 그에 맞춰 집의 구조를 바꿔가자는 계획을 세웠었다. 첫 번째 변화의 시기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다시 엄마 아빠의 창의성과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렇게 엄마도, 아빠도, 아이들도, 그리고 집도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