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차이의 아침

할아버지와 손자

by Sori

“자유가 보인다~!”


겨울방학을 하루 앞둔 12월 30일, 아홉 살(오늘부터 열 살이네) 둘째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내일 서울 할머니 집에 갈 거야?”

“방학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데, 하루만 늦게 가면 안 돼?”


아침잠이 많은 둘째에겐 방학의 늦잠이 곧 여유고 자유다.


“할머니 집 가서 늦잠 자면 되지.”

말이 없다.

“아… 할아버지 아침 용돈 때문에?”

씨익 웃는다.


아침잠 많은 둘째보다 늘 먼저 일어나는 첫째는 할아버지에게 ‘부지런하다’는 칭찬과 함께 종종 엑스트라 용돈 만원을 받았다.


외출하고 귀가하시는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곤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과 함께 용돈 만원을 받은 날도 많았다.


형보다 아침잠도 많고, 내향적인 둘째는 내심 부러웠나 보다.


둘째는 아홉살이 된 올해부터 할머니 집에 오면 형보다 일찍 일어나고, 현관을 드나드는 어른들에게 큰 소리로 허리 굽혀 인사하기 시작했다.

1~2년간 지속되던 할아버지의 기상과 인사 용돈 이벤트는 안타깝게도 기한이 다했는데 말이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날보다 일찍 일어난 둘째는 할아버지가 방 밖으로 나오시길 한참이나 기다리며 거실을 지켰다. 달라진 둘째의 태도를 눈치채신 할아버지는 다행히 용돈 만원을 챙겨주셨다.


이제 고학년이 된 첫째는 만 원에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옆에 떡하니 앉아 지켜보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할아버지는 첫째에게도 다른 이유를 만들어 같은 금액을 건네셨다.

그러자니 또 둘째의 수고가 무색해지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번엔 천 원을 더 얹어 주셨다.

“첫째는 주면 안 되는데, 일찍 일어난 둘째 보람이 없잖아. 천 원밖에 차이가 안 나”

“형보다 천원 더 받았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남편에게서 전해 들은 둘째의 반응이 참 귀엽다.

인정이면 충분했던 걸까.


지방에 살면서 두세 달에 한 번씩 오는 손자들에게 아빠는 5분 남짓 짧은 강의를 하신다. 매번 주제는 다른데 오늘은 이태백의 시 한 편이었다. 시에 담긴 시대의 환경, 감정, 생각을 아이들 눈높이로 풀어주셨다.


오늘 여든 삼 세가 되신 아빠와 아직은 어린이 티가 남은 아이들이 마주 앉아 있는 풍경이 유난히 반짝였다.

언제까지 아빠는 아이들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은 곧 아이의 모습을 벗겠지.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들.

그 그림을 마음속에 오래 새겨두고 싶은 아침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주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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