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무한할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공백

by 영무

한동안의 기록이 비었습니다.

돌아보고 곱씹기보다는
모르는 척 잠드는 날이 많았던 탓입니다.

저는 늘 떠오르는 대로 심었는데,
이젠 어떤 것을 옮겨 심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랄까요

제가 가진 것들은 유한한데
늘 무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그러나 돌아보니 초라함뿐이라 작아지는 요즘입니다.

길러내지 못한 시작을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갈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요 며칠 해가 사라진 저녁이면
이뤄내지 못했다는 실망감과
과거의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한참 우울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생겨난 우울함이
더 끈적하다는 걸 아실까요?
그 자리에 누워 영원히 잠겨있고 싶어 진답니다.

지난 주말엔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우울한 날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받고,
건넬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제 안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찐득하고 어두운 마음은 거품처럼 터져
흔적은 남지만 이내 사라집니다.

길러나갈 용기는 우울함과 사랑이 섞인
혼란한 배경 속에서 제 안이 온통 요동친 뒤에나 찾아왔습니다.

계절이 지나는 속도는
제 시간보다 빨라서 자꾸만 불안하지만
엉뚱한 계절 속에서 걷는 일을 즐겨보려고 합니다.

공백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제야 이해해 봅니다.
잘 모르는 일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려 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미안합니다.


우시사 레터中

24.06.04.


과거의 기록이 이제야 계절을 따라왔습니다.


글을 열어보니 저는 늘 비어있는 일기장을 보며 후회하다 결심하고, 다시 글을 쓰는 삶을 반복해 왔네요.


여러분도 저처럼 비어있는 상태가 두려워 수시로 제 안을 들여다보며 자발적으로 불안해하시나요?


'공백도 최선의 기록이다'.


여전히 맞지 않는 계절을 걷고 있지만, 주저앉진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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