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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16. 2022

2학년 4반 박정훈,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기억하며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의 의미

 1. 박정훈이라는 이름은 정말 흔하다.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서 박정훈a, 박정훈b 이렇게 불린 적은 다행히 없지만, 내 이름을 검색하면 정말 우수수 많은 박정훈이 쏟아진다. 


나와 접접이 있는 박정훈은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이다. 그리고 둘 다 책을 냈기 때문에 동일한 사람이 낸 책으로 헷갈려하시는 분도 있다 (물론 영역은 전혀 다르다). 지난 1월 나의 결혼을 앞두고 박 위원장이 '결혼 축하'한다며 꽃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박 위원장에게 보낼 메시지를 남미 연구자이신 박정훈 선생님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박정훈 선생님이 쓴 책에 싸인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는 대체로 유쾌한 편에 속한다.


오마이뉴스에도 박정훈이 두 명 있다. 성남시를 출입하면서 지역 취재를 하는 박정훈 시민기자다. 그나마 우리 지면에서 보면 아이디가 다르니까 알 수 있는데, 포털에 가면 그 박정훈인지, 저 박정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종종 '네가 이 기사 썼냐'면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마 박정훈 기자님도 그런 상황을 적잖이 접했을 것이다. 그분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사를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들의 삶을 조금 더 쉽게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 부모나 친척 혹은 친구들에서 "정훈아" "박정훈"이라고 불렸을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자신의 이름을 아주 당연하게 "박정훈"이라고 소개하고, "정훈씨" "박정훈씨"라고 불렸을 것이다.  어느날은 박정훈이라는 자신의 이름에 어깨가 쫙 펴졌을 것이고, 어느날은 박정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우리들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절망하고 아파한 역사가 모두 박정훈이라는 이름에 들어있다.


2. 책을 출간한 이후에는 내 이름을 검색하는 일이 많아진다. 다른 사람들이 내 책을 어떻게 읽었나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박정훈들의 근황을 알기도 한다. SBS의 박정훈 사장은 사장직 3연임을 했다. 농식품부 박정훈 방역정책국장은 아프리카 돼지 열병 방역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포스텍에 다니는 박정훈씨는 미국재료학회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포스터 논문상을 수상했다. 


그러던중 '2학년 4반 박정훈'이라는 이름에 눈이 멈췄다. 단원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였다. 그를 추모하거나 혹은 살아돌아오라는 메시지 속에서 보이는 "우리 정훈이" "정훈아" "사랑하는 정훈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2학년 4반 박정훈 학생은 이제 그 호명에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날이 없었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무얼하고 계실지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나처럼 자연스럽게 그는 '박정훈'이라는 이름에 손을 들고, 사인을 하고, 자신의 이름이 기재된 온갖 문서들을 보고,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박정훈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예약했겠지. 자다가도 '박정훈'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에 내 이름을 치다가 나보다 열 살 어린 그의 근황을 어디선가 스치듯 봤을 수도 있다. 그는 내 기사를 읽고 기자 이름이 박정훈이라서 한 번 더 눈길을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매우 평범한 '박정훈'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그러나 유일하고 고유했던 그의 세계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저물었다. 


수만 명의 박정훈들이 일어나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걸 상상한다. 나는 늦잠을 자고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노트북을 켰다. 누군가는 날씨가 좋아서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기도 할 것이며, 누군가는 직장에 나가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것이다. 부자도 있고 빈자도 있으며, 어린이도 있고 노인도 있으며,  원망과 조롱의 대상도, 찬사와 환호의 대상도 존재한다. 모두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이름이, 수많은 기억으로 이뤄진 우리의 삶을 묶는 명명이 '박정훈'이라는 점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을 소개하거나, 이름이 불릴 일이 많아서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쉽게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2학년 4번 박정훈 학생을 잊지 않겠다. 그의 세계가 온존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국가의 부실한 시스템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는 그저 '먼저 떠나서 아쉬운 사람'으로만 남을 뿐이다.


모든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얼핏 보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키고 싶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가닿을 수 없는 이름들이 하나하나 다시 호명되어 그들의 삶이 '304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세계가 있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지키고 싶다. 그것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고유한 존재들을, 더는 인간의 오만과 부주의로 만든 사고로 잃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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