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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ul 18. 2021

필기시험 한번도 못 붙었지만, 어느덧 기자 7년차입니다

시험이 사람의 모든 능력을 평가할 순 없다

나의 컴플렉스 중 하나는 일명 '공채'를 보고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편집기자' 직군을 따로 뽑을 때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직군은 필기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2년 반 동안 필기시험을 통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가능성 제로'의 취준생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컴퓨터로는 글을 그럭저럭 쓸 수 있지만, 손글씨로 쓰는 것은 매우 어려워했다. 심지어 연필잡는 법이 바르지 못하고 악필이다. 스터디를 할 때는 항상 가장 늦게 마무리를 해서 지탄을 받아왔고, 필기 시험때만 되면 거의 대부분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써서 떨어졌다. 논술이든, 작문이든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손으로 쓰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기자되면 전부 노트북 이고지고 다니면서 쓸텐데, 왜 아직도 구닥다리처럼 손으로 글쓰는걸로 시험을 볼까 싶었지만, 서술형이 있는 대부분의 시험들이 그러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어찌어찌 기자는 되었고, 이제 시험을 위한 글을 쓰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언론사 시험에서야 혹은 공모전에서야 글에 점수를 매기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글의 가치는 점수로 판단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 묘한 안도감을 준다. '줄 세우기'를 통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니까. (언론사 조회수를 따지는 이도 있겠지만, 그게 퀄리티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종종 학창시절로 돌아가 시험보는 꿈을 보고 그저께도 그랬는데, 학교 시험에서 국어 시험을 망치는 꿈이었다. 실제로도 국어는 꽤나 자신있는 과목이었기에 절망감에 휩싸였는데, 여느때처럼 스스륵 꿈에서 빠져나오면서 눈을 뜨면서 가슴을 쓸어내기리도 했다. 알게 모르게 '점수'가 살아오면서 큰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글쓰기는 그냥 못 쓰면 못 쓴대로 짜증이 날 뿐, 남과 비교되는 점수는 없으니 다행이다. 


모범생들이, 즉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시험을 잘 보던 사람들이 글을 꼭 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든다. 지식이 많다고, 통찰이 깊다고 꼭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을 좀 더 높여줄 뿐. 그리고 한 번 잘 쓸 수는 있지만 계속 잘 쓰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글쓰기의 어려움이자 동시에 큰 매력이다. 매번 새로 시작해야 하고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싫지만, 동시에 이것이 명백한 노동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다. 

요즘 나오는 공정 타령을 볼 때마다 뭐 어쩌라는 건지 싶다. 대학입학시험을 잘 봤고, 그래서 어떤 시험이든 기술적으로 잘 볼 수 있게 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이야기로밖엔 안 들린다. '전 국민의 프로듀스101' 같은 거랄까. 살아가면서 계속 점수로 매겨져야 공정하다는 이야기인데, 다들 두렵지도 않은건가 싶다. 줄의 마지막에 위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선 상상해본 적이 없는걸까. 다들 스스로에 대해 과신한다. 계속 똑똑할 거라고, 계속 건강할 거라고, 계속 승리할 거라고.


사실 우리네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영역에서 시험과 점수로 규정할 수 없는 '실력'은 존재하고, 실력을 계량화한다는게 무의미한 경우도 많다. 솔직히 글쓰기만 하더라도 왜 누군가는 매끈하게 써도 인기가 없는지, 왜 누군가는 좀 투박하게 써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나는 줄 세워지는 게 매우 두렵다. 자신이 없다. 10~20대에 보게 되는 몇 가지 시험으로 인간의 '급'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나는 그럭저럭 적응하기도 또 낙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줄 세우기'식 시험이 개인의 능력을 꼭 정확하게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했고, 이점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므로, 한때는 평가 기준을 다양화시켜야 한다는 움직임도 커졌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 명문대생들이 주도하고 야당이 뒷받침하던 '공정 담론'을 통해 '다양한 평가기준'의 미덕은 힘을 잃었다. 애초에 시험이나 경쟁이라는 가치도 '대학 입시' 정도로 표상되는 세상이다 보니 그렇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또는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디서나 시험을 보고 등수나 등급을 매기면 되는 줄 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에게 필기시험을 세 차례나 보게 했다는데서 정말 교만한 인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본인 책상에 있는 쓰레기도 안 치우고 사는 인간들이, 시험을 잘 보면 남들을 모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고 산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쓸 것이다. 그러나 '기자력'이나 '글빨'을 측정하는 시험이나 경연이 있다면 굳이 하고 싶진 않다. 광탈할 게 뻔하다. 누군가는 나보고 나약하다고 하겠지만, 각자의 고유성이 중요한 영역에서 굳이 경쟁하면서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고 싶지도 않다. 부디 이 사회가 시험봐서 점수 매길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이미 '모든 영역'에서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고 있다. 제발 그만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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