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한 말에 정색하기
저는 '깻잎논쟁'이 재미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 'ㅇㅇ논쟁'이 유행처럼 곳곳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포맷은 '깻잎 논쟁'이다. 여자친구/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깻잎을 못 떼고 있는 다른 이성을 위해 깻잎을 잡아줄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된다/안된다를 논하는 것이다.
깻잎을 잡아주는 게 어떤 섹슈얼한 텐션이 있는 행위인가 싶었지만, 워낙 신박한 논쟁이라 관심이 갔다. 사실 뚜렷한 답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긴 하다. 애초에 미심쩍은 관계라면 조건반사적인, 또는 호혜적인(?) 행동도 의심스러워 보일 따름이다. 하지만 대체로 이상하게 볼 행동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이 '깻잎논쟁'이 뻗어나가는 걸 보면서 ㅇㅇ논쟁이 일종의 '테스트'처럼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에 있듯 새우논쟁, 롱패딩논쟁, 블루투스 논쟁, 소주논쟁 등이 있는데 이 질문들이 함의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성애자의 연애를 기준으로) 연애 중인 당신이 이성친구와 가까이 지낼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를 묻는 것이다.
결국 이 논쟁에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여지'를 안 주는, 그래서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안된다' 지지파다. 나같아도 연애 초반에 상대방이 이런 질문을 해왔다면 내 생각이 어떻든 '안된다'를 택했을 것이다. 그게 ‘한 눈 팔지 않겠다’라는 신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에서의 관계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성친구끼리 친밀함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전혀 성적이지 않고 우정의 표시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ㅇㅇ논쟁은 결국 "너는 어디까지를 소위 '의심 가는 행동'으로 규정하냐"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려고 든다.
논쟁을 가장한 이 테스트가 작동하는 방식은 결국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한 방송인은 예능에 나와서 '깻잎논쟁'을 이야기하며,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연애 혹은 결혼을 했다면) 이성간에 술 먹는것 역시 안 되고, 대화도 기분 나쁘다고 했다. 유머러스하게 지나간 부분이지만 조금 씁쓸했다.
개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이 더 이상 주류적이어서는 안 된다.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없다', 혹은 ‘술과 밤이 있는한 남녀간에 친구는 없다'라는 명제는 위험하다. 남성이 여성을 동료나 친구로 보지 않게 되는 일이 과연 좋을까? 남성이 여성을 나와 동일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성적인 존재'로만 인식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 지금껏 어떤 문제가 일어났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남성에게 여성은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평가하거나 쟁취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또 하나, 여성과 남성이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없다면 '남성 지배' 사회는 절대로 깨질 수가 없다. 나는 저러한 생각을 가진 남성들에게서 아주 자연스럽게 '펜스룰'이 작동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고 그러니까 남성에게만 일을 시키고, 남성들만 만나고, 남성들만 챙기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남성이 끌어주고 당기는 사회는 끊임없이 남성 기득권만을 재생산하고, 여성을 배제시킨다. 이렇듯 남성과 여성을 계속 분리하려고 하는 수많은 고정관념들은 '가부장제의 수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라고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정색하고 달려들고 싶진 않다. 그런데 어느덧 그냥 웃기지가 않게 되어버렸다. 결국 ㅇㅇ논쟁의 핵심은 애인이 아닌 이성들끼리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것인데, 이런 구도가 영 못 마땅한 것이다. 연인간의 '신뢰'를 소위 남사친/여사친의 존재가 위협한다는 수많은 '가정'들이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거리를 좁히고 평등하게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