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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Dec 29. 2018

20대 남성 대통령지지율 추락, 젠더갈등이 원인이라고?

그래서 페미니즘을 포기하란 말인가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리얼미터 17일자)이 논란이다. 지지율 조사 결과를 발표한 리얼미터를 시작으로 다수의 언론이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기조'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킨 것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꼽는다.


그런데 '성평등 기조',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정부의 호응이 20대 지지율을 하락시켰다는 근거는 사실상 단 하나다. 얼마전 리얼미터가 '공공의 창' 의뢰로 조사해서 발표한 '공동체 관련갈등 조사'다. 조사 결과 20대의 57%가 가장 심각한 한국사회 갈등을 '성갈등'으로 지적했고 (전체 21%), 페미니즘 운동 지지여부를 묻는 항목에서도 20대 남성의 76%가 반대했다. 이 조사 결과가 파생되어 20대 남성의 지지율 이탈 이유가 '젠더 갈등'인양 굳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의 분석에는 허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위의 조사에서 30대 남성의 66%가 페미니즘 운동에 반대했다. 그런데 3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은 54.9%다. 페미니즘 반대 비율은 고작 10%가 낮은데, 지지율은 20대 남성 29.4%보다 25%나 높다. 또 하나, KBS 기사에 인용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을 비교한 갤럽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살펴보면 6월까지는 여성과 남성이 거의 동일하게 80%을 넘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는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 정책을 펼치지 않아서 지지율이 저렇게 높았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KBS 사이트 캡처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지지율 곡선은 다르지 않다. 남북정상회담-지방선거-북미회담, 평양회담때 올라갔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핵심 키는 '북한'이었고, 이는 20대 남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80%일때는 없던 상대적 박탈감이 29%때는 갑자기 생겼나? '젠더 문제', '페미니즘' 같은 키워드로만 지지율 하락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20대 남성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구멍은 맞다. 떨어질 때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진다. 


9년의 보수정권, 그리고 일베


무엇이 20대 남성의 지지 이탈을 가속화시켰는가. 먼저 지지율의 결정적인 요소인 '북한'에 대한 20대 남성의 생각에 주목하고 싶다. 한겨레21이 지난 2월 문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들로만 여론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대북관을 묻는 질문에 20대 남성(54.2%)이 20대 여성(29.5%)보다 '북핵 해결을 위해 협력보다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왔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와의 지지도 차이가 설명이 되는 결과다. 심지어 문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의 생각이 저정도라면, 북한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20대 남성 사이에서 '그럼 그렇지' 식의 생각이 확산될 수밖에 없을듯 하다.


또 지지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당연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이중 20대 남성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은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 '여성만을 우대한다' 등이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인터넷 공간의10~20대 사이에서 '젠더 문제'는 가장 큰 화두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빼앗기고 잃어왔던 것을 되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원래 자신들의 몫을 빼앗긴다는 착각에 사로잡혔고, 이 페미니즘 흐름에 조금이나마 호응하려는 정부도 못 마땅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 정부가 박근혜-이명박이니 더욱 그런 풍경은 낯설수밖에. 사실 경제문제야 20대 여성과 남성이 체감하는 게 크게 다를리 없다. 기회의 불평등? 일자리? 그런 부분이라면 여성이 더 지지율이 낮아야 한다. 경제, 부동산, 일자리 등은 20대 남성이 20대 여성보다 딱히 불만을 가질 이유를 찾기 어렵다. (물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일자리 등을 빼앗긴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이다) 아무래도 20대 남성이 지지율 상수인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북한 이슈가 견인하지 못할땐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의 불만이 문재인 정부로 향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런데 대체 20대 남성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적대적 대북관과 안티 페미니즘, 이 두가지를 전부 공유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10대~20대 남성들이 즐겨하던 '일베'다. 일베는 정확하게 '무엇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 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명백한 특징이 두가지 있었다. '진보진영 공격'(반 북한)과 '여성혐오'다. 


2014년 9월, 세월호특별법제정 반대와 종북척결을 주장하며 특정 손모양으로 '일베인증샷'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일베 회원들  ⓒ오마이뉴스 이희훈


인터넷 상의 모든 진보의 역량을 모아 벌인 촛불시위가 실패하고 탄압받은 후 사회 보수화, 진보 억압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됐다. 이 배경에서 일베가 탄생했고 성장했다. 아마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행위, 북한과의 관계가 좋거나 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성혐오는 말할 것도 없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욕설을 제외하고 제일 많이 언급된 주제어는 '여자'였다. 일베는 '혐오해도 괜찮아'라고 부추기는 곳이었다. 정부가 '인권' 따위는 내팽겨치는 상황에서, 일베 유저들은 가장 흔하고 편한 혐오의 대상으로 여성을 지목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묵인 하에 일베는 젊은 남성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부의 일탈이 아니다. 일베는 동시접속 2만명~3만명을 찍던 곳이었다. 여기에 일베 논리를 받는 파생 사이트나, 사실상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디씨 주요 갤러리들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세력이다. 최근엔 일베 자체의 커뮤니티는 약화됐지만 '일베에서 공유하던 생각'들이 유튜브, 아프리카등 개인방송의 핵심 콘텐츠가 되고 있다. 이렇듯 10대~ 20대 남성들은 진보적인 가치들을 습득하기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성평등 정책을 흔들지 마시라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정상회담이나 북미관계 개선 등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는 것 이외에 뚜렷한 당장의 답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보수신문을 비롯해 언론사들의 기사들은 20대 지지율을 근거로 마치 문재인 정부의 여성 정책이 큰 문제가 있고, 그것을 어딘가 바로 잡아야 지지율이 회복될것처럼 이야기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으로, 여성들이 비교적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하던 때로  '백'하는게 옳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기사는 결과적으로 성평등 정책 반대 여론을 만들게 되고, 정부나 여당 내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킨다.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지도 못했는데 자꾸 흔들어대는 꼴이다. 그나마 성평등 정책 실현에 있어서 9년만에 정부 구실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만족스럽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와중에 정부가  20대 남성의 비위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건 백래시나 다름 없다. 물론 조심스럽게 20대 남성을 재단하지 말고,  20대 남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고 말하는 칼럼도 있었다. 총론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군 가산점 부활'이라면 듣고 그대로 실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남혐'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언론들은 너도나도 여혐에 대항한 '남혐' 현상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혐'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티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북한과의 관계처럼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도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 페미니즘 운동은 최근 몇년간 아주 빠르게 사회를 변화시켰으며, 여성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 정말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20대 남성'도' 챙겨달라? 명백한 통계들로 드러나는 차별을 깡그리 무시하는 그런 기사도 안 썼으면 좋겠고, 실체없는 '박탈감'을 채워주라고 외치는 야당의 외침도 그만 들었으면 한다.


20대 남성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선 길게 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소위 '진보진영'이 이번 논란을 '혐오 문화'에 대한 고민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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