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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Dec 11. 2018

무통분만=불로소득? 진짜 '불로소득자'는 따로 있다

무료로 가사·돌봄 노동을 제공받은 한국의 가부장들

얼마 전 이외수 작가가 "불로소득이나 무통분만으로 얻어지는 소득이나 기쁨을 기대하지 마라. 그대는 도둑놈과 똑같은 처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SNS에 써서 논란이 됐다. 출산의 고통을 줄여주는 무통분만 주사를 불로소득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는 굳이 말해 무엇하랴.


이 작가는 비판이 일자 "적합한 단어를 제안해달라고" 말했고, 결국 페이스북에서는 '무통분만'을 '무임승차'로 바꿨다. 그런데 더 적합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가부장의 삶'이다. 평범한 가부장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불로소득의 추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로소득이란 가사·돌봄 노동을 제공받는 것을 뜻한다. 실제 소득은 아니지만, 따로 구매하려면 돈이 든다. 또한 이는 더 많은 연봉이나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형의 자산이나 다름 없다. 

이외수 작가의 트윗

가족모델의 표준으로 신화화된 '남성 부양자 모델'에 근거해 남성은 여성에게 가사와 감정적 돌봄을 제공받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휴식과 재충전을 돕고, 남성이 이끄는 가족의 유지를 도와주는 보조자 노릇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노동은 전부 '무보수'로 이뤄진다. 그러니 남성들은 어떠한 '노동'을 제공받는다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냥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10월이 되어서야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통계청이 무급 가사노동가치를 평가했다. (2014년 기준) 무보수 가사 노동의 가치는 GDP의 24.3%에 해당하는 361조원 가량이고, 여성은 이중 272조원을 차지한다. 연봉으로 따지자면 여성은1076만원, 남성은 342만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임금격차가 세 배를 조금 넘는 반면, 시간으로 따지면 남성은 가사노동 53분, 여성은 214분을 해서 네 배차이가 난다. 이유는 통계청은 남녀간 임금격차를 반영해서 남성의 임금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만약 '숙련도' 나 '노동강도' 등까지 따져봤을 때는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이 높아야 맞겠지만, 그런것들은 조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의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자체의 가치가 전체적으로 저평가됐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첫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상당수의 남성들에게 매년 1000만원 이상을 무상으로 지급받는 상황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증명해줄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혹자는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니 이미 가사노동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 이전부터 '도시 중산층'을 제외하고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온전히 구현되지 못했다. 일용직에 종사하는 서민이나 농촌에서 여성들은 안팎에서 이중삼중의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심지어 IMF 이후에는 대량실직 사태 등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든든한 아버지'의 신화가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맞벌이가 보편화됐음에도 구체제는 위력을 떨치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집안에서 가사·돌봄 노동은 여성이 책임지며, 남성은 '도와주는' 보조자에 불과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몰빵'을 해줄 이유가 거의 없어지고 있음에도 자원의 '남성 집중'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남성들이 가사노동을 안 하거나 적게하면서 얻는 이득은 굉장히 거칠게 표현하자면 '불로소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이 가사·돌봄 노동을 전담으로, 혹은 더 많이 하는게 맞다는 시각은 존재한다. 책  <잠깐 애덤 스미스씨 ,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주류경제학이 이런 성차별적 관점을 옹호한다고 지적한다.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밀턴 프리드먼의 말 "공짜 점심은 없다"에 살짝 바꿔 이렇게 말한다. "공짜 돌보기는 없다"



이 책은 애덤스미스의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은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남성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애덤스미스의 모델이 남성과 상반되는 역할을 해주는 여성이(감성, 의존적, 복종 등) '경제적 인간' 옆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이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인프라로 간주된다"며,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여성이 집안일에 맞게 태어났다"는 전제로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 등의 학자들은 여성을 희생시키는 가족 구조에는 의문을 갖지 않은채, 성차별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에 급급하다고 주장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여가 시간을 집안일에 많이 쓰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피곤해진다. 베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설명도 내놓았다. 여성의 수입이 더 낮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가족 전체로 볼 때 손해가 덜하다는 설명이다." (59p)


위의 말은 시카고학파뿐만 아니라, 한국 주류 남성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채용차별, 유리천장, 임금차별 그 모든 성차별은 '여성은 가사·돌봄에 남성보다 더 적합하다'는 인식을 깔고 간다. 실제 저 논리대로 사회는 흘러간다. 회사에서는 여성은 '육아'를 해야하니 중요한 일을 못 준다고 하고, 자연스레 승진에서도 차별받는다. 또 한편에선 경력단절과 임금차별 등으로 남성보다 수입이 낮은 경우가 많으니 자연스레 집안일을 많이 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현실이 이러니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비혼'을 이야기할수밖에 없다. 어떻게 봐도 기혼 여성이 된다는 것은, 특히 출산은 커리어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출산을 감행하는데,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주사를 맞았다고 '불로소득'이란다. 여성들이 분노할수밖에 없다.


지난해 KBS <살림하는 남자들2>에 잠깐 나온 이외수 작가를 보면 '가사 노동'을 거의 못한다. 40년 동안 아내가 그의 밥을 차려주고, 집의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하며 '뒷바라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명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생계부양형 모델'에 부합하는 가부장도 아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가 공짜로 제공받은 노동의 가치, 즉 불로소득 역시 꽤 클듯하다. 


남성들이여, 설거지 조금 '도와준다'며 생색 좀 내지 마라.

남성들이 무형의 불로소득을 기반으로 일에 집중하면서 안정된 사회적 기반을 획득할 때, 여성들은 남성과 가족에게 공급하는 가사·돌봄 노동을 하며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짐을 감수해야 한다. 남성들의 사회적 성취를 온전히 '그 남성의 것'이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이유다.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에 가까운 노동을 통해 '무상'으로 얻은 자원에 대해선,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보이지 않고 티가 안 나더라도 계속 남성이라서 얻는 불로소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하건대 '공짜 돌보기는 없다'.  언제까지 여성의 기회와 자원을 빼앗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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