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훈 Nov 28. 2018

'식탐남'의 탄생

그들은 왜 음식 앞에서 공감능력이 사라질까

온라인 상에서 규탄의 대상이 되는 '한국남성' 중 유독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부류가 '식탐남'(식탐충)이다. 혼자 닭다리 두 개 먹는 남성의 이야기는 예사다. 네이트판에선 아내 몰래 명절음식을 혼자 주차장에서 먹었다는 '주차장 우걱우걱남', 여친 몰래 짜장면 밑에 깐풍새우를 숨겨놓았다가 들킨 '깐풍새우남' 등 다양한 식탐남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먹는 것에 욕심이 많다고해서 비난받는 게 아니다. 식탐남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배려 없음'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 마는지 신경조차 안쓰고, 자신의 식사에 도취된다. 식사를 할때만큼은 아내나 애인이 걸리적거리는 존재, 내 몫을 빼앗는 이에 가깝다.


그런데 과연 이 '식탐남'의 사례는 매우 예외적인 일에 불과할까? 물론 네이트판에 올라오는 수준의 남성은 드물겠지만, 식사할때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성이 '특이 케이스'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다. 그런데 오빠는 밥을 5분이면 다 먹는다. 입도 커서 정말 빨리 먹는다. 신혼 초 손이 느려서 찬을 내놓기도 바빴는데 오빠는 이미 다 밥을 먹어버렸더라. 그게 너무 서운했다"  - 이민정, 11월 25일 sbs <미운우리새끼> 중


"남편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많이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갔고, 음식 두 개를 시켰다. 그런데 남편이 내 것까지 다 먹어서 난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래서 음식 더 시킬까라고 했더니, 남편이 나는 배부르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끝이었다. 나에게 '배고프냐 더 시킬까'라고 물어보지 않더라" - 한고은, 4월 23일 sbs <동상이몽 2> 중


배우 이민정과 한고은이 묘사하는 남편들의  행동에서 '지 입만 입인줄 아는' 남성들의 한 단면을 본다. 물론 두 배우 모두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아주 가벼운 문제로 여길순 없다. 특히 비교적 평등한 관계로 보이는 한고은 부부 사이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조금 놀랍게 느껴졌다.


네이트판의 전설적인(?) 식탐남 고발 글


이렇듯 '먹는 행위'를 통해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대체로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같이 닭을 먹으면서 닭다리 두 개를 다 먹거나, 음식을 숨겨두고 혼자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여성들이 눈에 띌 정도로 존재했다면 진작에 혐오단어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안녕하세요>에서 '식탐녀'로 나온 이도,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먹는것일뿐, 남자친구의 몫을 빼앗는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체로 '식탐남'들은 '타인의 몫'을 고려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아래, (정치학자 전인권의 표현에 의하면) '동굴 속 황제'로 자라온 한국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면모는 여러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식탐남' 역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기질의 발휘와 더불어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학습되고 용인된 태도가 결합된 결과다.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집에서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음식 차별을 받아왔다. 치킨을 시키면 퍽퍽한 가슴살이나 목을 먹고, 남동생을 먼저 주고 남은 반찬을 먹었다는 여성들의 하소연은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여전히 가족 안에서 아들은 '아버지 다음'의 식탁 서열을 가지고 있고, 딸들처럼 살이 찌는 것을 걱정해 '과식' 혹은 '폭식'이 금기시되지도 않는다.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먹을 것을 두고서 눈치 봐야 할 일이 아들들에겐 많지 않았던 것이다.


또 아들들이 보고 자라는 것은, 또 지향해야 될 모델은 '앉아서 받아먹는' 아버지였다. 남자들이 평소에는 '사회화된 태도'로 식사를 하다가도, 집에서 유사엄마(이들의 애인이나 아내)와 있을 때는 갑자기 '먹방 모드'가 되는 배경이다. 반면 음식의 양에 대해, 그것의 분배에 대해 고민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들은 자연스레 '타인의 식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새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나 "우리 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나 꼬리만 드셨다"는 이야기가 '진정한 모성의 모습'처럼 받들어졌다. 그런데 가부장제 하에서 딸은 어머니와 함께 대가리나 꼬리를 같이 먹는 존재지,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살코기를 먹는 존재가 아니다.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식탁 위 공감능력'의 막대한 차이를 불러온다. 


KBS JOY <연애의 참견> 11화, 식탐남 사연 중


어머니가 희생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맛있는 것을 온전히 받아먹는' 습관을 유지하면 '식탐남'이 된다. 김치찌개 안에 돼지고기만 골라먹는, 부대찌개에 햄만 골라먹는, 단 한번만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했다면 감히 못할짓을 하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식탐남'을 만드는 구조나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9월에 논란이 된 SKT의 광고문구 내용은  "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마" , "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였다. SKT가 <한겨레>에 "자연스러운 가족의 풍경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취지와 달리 오해를 받았다”고 해명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 가족에서 아들은 '먹여주고 싶은', '먹기만하면 되는' 존재인가보다.


나도 워낙 음식을 빨리, 많이 먹는 편이라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흡입'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고기나 전골 등을 먹을 때, 의식적으로 음식을 상대방에게 떠주거나, 어떻게 나눠먹어야 할지 고민하려고 한다. 습관은 무섭고, '눈치보며 먹지 않았던' 내가 언제든 7살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식탐남' 현상은 가부장제가 타인, 특히나 가장 친밀한 이에 대해 배려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가족 안에서의 남성의 모습이 달라지고, 변화된 남성성이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지 못하면, 이런식의 '괴기스러운 남자'들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남성을 어린 아이에서 머물지 않는, 타인에 공감할 줄 아는 시민으로 키울 방법을 고민해 나갈 시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이씨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