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훈 Oct 06. 2019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한가?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 나온 뒤 두 곳의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공통적으로 받았던 질문 중에 인상깊었던 게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냐"와 "남성 페미니스트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였다. 아마 내가 페미니즘 책을 낸 남성을 인터뷰한다고 하더라도 저 질문은 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하지 못하지만, 생물학적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조건'은 하나 달린다. 먼저 '반성' 하는 것,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 반성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남성으로서 누려온 특권들, 남성으로서의 우위를 기반으로 저지르거나 용인했던 남성 집단의 폭력적 행동들을 성찰하고, 그것들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똑같은 일을 또 반복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도록 설계된 가부장제 구조다. 가만히 순응하는 것만으로도 '여성혐오 사회'에 일조하며 공고한 권력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성평등이라는 '당위'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성 페미니스트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대해서는, 나는 남성들의 원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희정 등 자신을 '의식있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페미니스트'의 이름만을 빌린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불신하고 못 미덥고 '올려치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신뢰를 쌓아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단순히 '선언'이나 '시혜적 연대'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 끈질기게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하며 같이 목소리를 내며, 동시에 언제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남성집단을 관찰하고 비판해야 한다. 오랜 시간 실천적 자세를 견지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선 여성들이 불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되는 '운동'이 어디 있겠는가. 끊임없이 끈질기게 하면 된다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정'이란 무엇인가: '남자'라는 특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