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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Nov 07. 2019

언론사 부장님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혐오' 조장하는 기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메갈리아'부터 현재의 '82년생 김지영' 현상까지, 지난 몇년간의 '페미니즘 리부트'에 맞춰 언론의 젠더 이슈 보도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졌는가를 따져 보면, '전혀 아니다'. 특히 미투 보도 이후부터는 오히려 사회적인 갈등을 확산시키는 주범이었다고 본다.


얼마 전, 언론재단에서 수습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일이 생겨서 과거 보도들을 찾아보니, 대체 무슨 목적으로 쓴지도 파악이 안 되는 기사들이 너무 많았다.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찾는 '공론장' 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다. 젠더 이슈 보도에선 한 쪽의 극단적 입장만 전하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식의 '조회수 확보' 보도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성폭력 사건 보도에선 피해자의 보호와 사건의 해결, 나아가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는 보도는 극소수였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미투 보도를 하고,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하며,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상황을 '기레기라서' 혹은 '언론들이 조회수에 혈안이 돼서' 등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론의 기사 생산 구조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불법촬영, 불합리한 성폭력 판결에 관한 사건 보도가 굉장히 늘어났다. 이는 체감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 언론사에서 '젠더'가 화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과거에는 기사화시키지 않던 사건들을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다. 다만 '문제적 사건'을 보도한 이후에 구조적 문제를 짚는 기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그 소수가 영향력 있는 주요 매체들에서 온 기사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인 부분. 


- 젠더 이슈가 하나 터지면, 각 언론사의 온라인 팀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조회수를 끌어당기려고  혈안이 돼있다. 이번에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82년생 김지영' 후기가 화제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무려 통신사까지 '공인'도 아닌 이의 감상문 하나로 기사를 쏟아낸다. 심지어 위키트리는 심지어 작성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이 취사병이라고 주장하는 이의 네이버 댓글하나를 인용해서 기사를 썼다. 이는 '정보'로서 가치 있지도, 사안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조회수 때문에 쓰는 기사다. 이렇듯 균형감을 아예 상실한, 일방의 의견을 전달해주는 것은 '사회적 갈등'만 더욱 심화시킨다. 


공인도 아닌, 지상파 아나운서처럼 '공공의 입'도 아닌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영화평을 어째서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보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니까 '기사 쓰기 참쉽다'라는 이야기 나온다. 네이버 댓글 하나를 인용해 기사를 썼다.

- 기본적으로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매체의 난립, 온라인용 기사의 난립이 가장 큰 문제다. <위키트리>, <인사이트>, 혹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군소매체들처럼  '조회수'를 통한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매체들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배제한 채 기사를 쓴다. 게다가 소위 10대 일간지 등 주요매체에서도 온라인 팀을 운영하면서 지면에 실리는 기사들과 전혀 다른 양상의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온라인 팀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얼마나 화제가 되는 일을 잘 캐치해서, 빨리 기사로 써서 조회수를 확보하냐는 것일뿐.


- 보통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자들이나 교수들은 '온라인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설리 추모’ 칼럼을 실은 매체들의 상당수는, 온라인에서는 설리의 인스타그램 하나하나를 기사화했던 곳이다. 매체에 따라 사정이 다르겠지만, 상당수의 가십성 기사는 회사의 주류인 ‘공채 출신 출입처 기자’가 아니라, '비정규직 기자'가 쓰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이들도 있지만,  고민할 여유도 없이 쓸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설리의 죽음 이후에도 주요 일간지 온라인팀은 계속 연예인 가십 기사를 쓰고 있다.


- 문제는 온라인팀이 없는 매체가 ‘클린’하다며 높은 평가를 받는 구조도 아니라는 점이다. <한겨레>는 가십 기사를 생산하지 않고,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심층적인 보도를 하는 매체다. 하지만 조회수 기사를 안 쓴다는 이유로 특별히 좋은 평가를 듣는 것도 아니고, ‘기레기’ 소리를 안 듣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온라인 팀을 운영하며 '조회수 기사'를 쓸 경우 그에 따른 광고 수익은 꽤나 크다. 결국 언론사들이 저널리즘을 지키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수익’을 좇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 그렇다면 '지면 기사'는 문제가 없냐? 그렇지 않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편파 수사 이어 편파 판결" 절망에 빠진 여성들>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마치 워마드를 '여성계'의 대표처럼 내세우며, 안희정 1심 항의 집회에 나오는 이들과 문재인 탄핵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동일집단인것처럼 묘사했다. <조선일보>의 명지전문대 교수 성폭력 보도는 피해자들이 나서서 "보도가 아니라 폭행, 당신들이 2차가해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성폭력 보도 원칙을 '단독'이라는 미명 하에 완전히 어긴 경우였다. 또한 조선일보는 페미니즘 선생님으로 화제가 된 '최현희' 교사에 대해 왜곡보도를 해 정정보도문까지 쓰기도 했다. 정정보도문을 보니 사실관계에 맞게 쓴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어"

국민일보<“자칫 여혐 동조자로 찍힐라”조심스런 남성들>(온라인 판 제목: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 동아일보 <"오해 살 일 말자" 여고에도 펜스룰>도 황당한 기사다.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에서도 언론은 남성을 대변하고 있는 황당한 현실이 이 기사 두 개에 잘 드러난다. 진보 언론을 제외하고는 젠더 이슈를 다루는 시각이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앞서 이야기한 조선일보의 명지전문대 보도 같은 경우, 성폭력 보도에 있어서 “어떤 수를 쓰든 찾아와”식 언론 문화가 얼마나 큰 해악을 불러오는지 잘 드러낸 사례다. 피해자의 보호보다는 당장의 정보 확보를 중요하게 여기니, 성폭력 보도에서 지켜야 하는 윤리적 부분에 둔감하게 된다. 한밤중에 전화를 하거나 집에 찾아가면서까지 취재를 하고, 이로 인해 취재나 보도 자체가 2차피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미투 보도때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성폭력 폭로 글을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은채 실명 공개한 채로 보도한 적도 많다.


- 현장에서 뛰는 저연차 기자들이 성폭력이나 젠더 이슈 관련 기사를 쓰면, 제목에 피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거나, ‘ㅇㅇ녀’, ‘성추문’ 등의 단어를 넣어서 기사를 망치는 데스크(관리자)들도 있다. 특히 지면에 실리지 않는 온라인 사건 기사에서 함부로 제목을 짓는 경향이 심하다. 최근에는 썸네일이나 바이럴 문구에서도 젠더 감수성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현장 기자들은 이에 대해 통제할 수가 없다. 대표적으로 노컷뉴스가 왁싱숍 살인사건에서 “#강간을_시도했지만_미수에_그쳤다 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해 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결국 제목 짓기부터 유통 과정까지 기자가 개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과정에서 2차피해를 입히거나 성차별적 용어가 쓰일 경우, 비난은 바이라인에 달린 저연차 기자들이 받게 되는 것이다. 강의에서 내가 수습기자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기자로서의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젠더 감수성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제목의 경우 데스크들이 자극적이고, 남성중심적 시각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저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 여성 기자들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부서의 데스크는 대부분 남자 일색이다. 그래서 젠더 관련 보도를 ‘여성 기자가 주로 해야 하는 일’처럼 사소화하는가 하면, 데스크임에도 ‘젠더 부문’에서는 전혀 ‘데스킹’을 못하고, 오히려 더 남성중심적 시각을 기사에 녹여낼 가능성이 크다. 강의를 들은 기자 분들이 내게 했던 말은 “우리보다는 언론사 부장들이 이런 거(젠더감수성 관한 강의) 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였다.


- 위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의 해결책은 회사 내부에서의 논의 및 자정 노력, 성폭력 전문기자 제도 마련, 젠더 데스크(한겨레)등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현 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나쁜 기사’를 쓴 매체 기사가 ‘네이버 검색에서 노출이 안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누가 그 ‘나쁜 기사’를 스크린하고, 또 평가할 것이며, 네이버가 이 정책에 응해줄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폭력 보도라면 모를까, 젠더 이슈의 경우 ‘나쁜 기사’의 기준도 세우기가 애매하다.  


- 뚜렷한 해법은 누구도 제시할 수 없다. 다만 어뷰징 기사의 난립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균형감각 있고 합리적으로 젠더 이슈를 다루는 기사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개인의, 조직의 각성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최소한 '주요 매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현재의 페미니즘 흐름을 받아들이고 젠더 이슈나 성폭력 보도를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원칙은 세워야 한다 (온라인이든 지면이든). 바꿀 수 있는데서부터 바꿔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 나온만큼 제발 언론사 부장님들 '젠더 감수성' 교육 좀 받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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