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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08. 2020

'아직도 '남성의 성욕 해소'가 걱정되신다면

'n번방 성착취 사건'을 보면서도 '야동 못 볼까봐' 걱정하는 사람들 

최근 본 기사중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지난달 29일에 나온 중앙일보의 n번방 운영자 인터뷰였다. 제목은 <"전 사형이 마땅합니다"···'n번방' 내부고발 대학생의 고백>이었는데, 내용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가해자로서 속죄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하는 사람을 인터뷰했다면, n번방이 어떤 구조인지, 또 그곳의 실태가 어떤지를 전달해주는 게 우선이다. 그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주관적인 분석 등을 굳이 전달해줄 필요가 없다. 면죄부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그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전했다. 이 가해자(내부고발자)는 언론 인터뷰를 꽤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래에 인용한 내용처럼 'n번방 사건'이 음란물 웹사이트 차단 정책의 부작용'이라고 입장을 밝힌적은 처음이다. 둘 중 하나다. 타매체에서도 그런 말을 했지만 지면에 언급되지 않았든가, 아니면 중앙일보에서만 편하게 자기 주장을 펼쳤든가. 어느쪽이든 중앙일보는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옮기면 안 됐다.


<또한 “음란물 웹사이트 차단 정책이 n번방 사건이라는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무작정 음란물 웹사이트를 차단하니 유통 시장이 음성화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성매매에 대해서도 “단속할 거면 확실히 단속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합법화해 제도권 안에서 철저히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은 비판적으로 언급되거나 반박당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가해자의 말이라고 해도, 이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중앙일보 지면에 이러한 내용이 실린 것에 힘을 얻는다. 아마 추후 n번방 관련 입법이 되고, 성착취 영상 공유에 대한 단속 및 제재 등의 조치가 이뤄질 것이다. 그때 남성들은 '남성의 성욕을 억압한 것이 n번방이라는 성착취 구조로 이어졌다'는 식으로 '남성문화 책임론'을 탈피하면서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이 기사가 분명 다시 한 번 언급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성욕'이 억압받는다는 느낌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러한 정서는 과거에는 공개적으로 '남자의 아랫도리 일은 불문율'이라는 말로 일컬어졌고, 2000년대 이후부터 남성들은 '성적 엄숙주의'를 깬다면서 섹스에 대해, 성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게 '쿨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택광 교수는 '성해방'을 외쳤던 진보남성의 성의식을 성해방과 사회해방을 동일시했던 '프로이트적 좌파 담론'이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언제서부터인가 남성의 성욕을 매우 자연스럽고, 긍정적이며, 그래서 종종 '분출해줘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야동 문화'는 지상파에도 공공연히 등장할 정도로 큰 힘을 얻게 됐다.


동시에 남성들은 겉으로는 여성에게도 '성해방'을 '허했다'. 혼전순결 지키지 않고, '쿨하게' 섹스하고, 성욕을 드러내면서, 포르노를 함께 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성해방은 젠더에 의한 위계, 정조 관념,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당시 남성들이 말하는 '성해방'은 지극히 남성들만을 위한,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과 그로 인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목일뿐었다는 것을 이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은 성인사이트에 대한 단속, 규제 등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고, '야동(여기서 야동은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서 만든 성인물과 불법촬영물 등등 전부를 통칭, 뒤에서 구분하겠음) 못 보면 어디서 성욕을 푸냐'고 이야기해왔다. 심지어 야동이 성범죄를 줄인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야동을 보며 성욕을 푼다'는 것은 매우 일상적이고 공공연한 행위로 정착되어 갔다.


2006년에 웹하드에 일본 성인비디오를 1만 4천편 올려서 '음란물 유포죄'로 구속된 '김본좌'가 구속됐을때 남성들의 반응은 지금 돌이켜보면 충격 그 자체다. 댓글로 그를 응원하고 팬카페까지 만든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본좌 가라사대 시리즈'를 만들어 개그 요소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김본좌'는 경찰 진술에서 "최근 2년간 최신작 음란물을 올려달라는 네티즌의 성화 때문에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떳떳하게 말했다고 한다. 여성을 착취하고 종속시키는 내용이 전부인 포르노를 공유하는 사람을 '본좌'라고 떠받들던 문화가 있었으니, 지금까지도 남초 커뮤니티에서 '야동' 못 보는 것을 세상 무너지는 일처럼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반면 남성들은 '여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성들에겐 '야동'을 즐기는 문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은 성욕이 없다거나, 성인이 되어서 뒤늦게 발달한다든가, 여성은 청각에 더 민감하다(?)라는 등 별다른 고민이나 관심 없이 넘어가왔다. 어쨌든 여성들은 남성들이 그렇게 끔찍히 생각하는 '야동'을 보지 않고도 잘 살아왔다. 그런데 남성은 왜 '야동'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인가?


2000년대, 여성이 어떤 성적 욕망을 표출하거나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주로 '야오이(やおい)'라고 불렸던 BL(Boys Love)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소프트한 팬픽부터, 포르노에 가까운 '하드 야오이'까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하드 야오이도 공공연하게 이야기됐던 게 사실이다.


'하드 야오이'를 포르노라고 본다면,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를 적어도 '가상'이라는 전제하에서 즐겼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그 안에는 '나'로 대입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뿐더러, 야오이에는 만화나 소설, 잘해봐야 애니메이션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다르다. 남성들의 '야동문화'는 '이것은 픽션입니다'와 같은 경계 구분을 깨버렸다. 일본 등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서 만드는 영상들도 기본적인 서사구조도 갖추지 않은채 가학적인 성관계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섭외해서 섹스신을 만드는 것처럼 구성을 하면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영상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남성들은 p2p나 웹하드를 통해서 다운받거나, 성인 사이트를 통해 사진이나 영상을 본다. 이 구조는 합법과 불법, 동의와 비동의가 전혀 구분이 안 되는 구조다. 마구잡이로 클릭하고 다운받는 가운데 무엇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국산(한국) 영상'이라고 공유되는 것들은 대부분 불법촬영되거나 당사자의 동의없이 퍼트린 영상이 대다수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와 같은 영상들을 보면서, '야동문화'를 긍정하게 되고, 지키려고 하고, 불법촬영 영상까지도 성욕을 푸는데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한 채로 소비되며, 그러면서 남성들은 자신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직접 불법촬영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있어야 할 자리는 수많은 불법촬영물 시청을 통해 무뎌지고, 그 틈을 '호기심'이나 '성욕'이라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명분'이 채우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관계나 타인의 몸을 찍는 불법촬영을 '할 수 있는 일처럼' 느끼게 된 환경에서 남성들이 자라왔다.


혹자는 앞서 언급한 n번방 운영자처럼 이렇게 말한다. '포르노 합법화'를 해야, 오히려 불법촬영 영상이 줄어들고, 청소년에게 무분별하게 공급되는 영상들을 차단할 수 있으며,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담론의 양지화?)을 바꿀수 있다고.


일단 포르노가 합법적으로 제작된다고 했을때 과연 그것에 청소년들이 접근 못할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포르노 합법화는 전체적인 시장을 키우고, 다시 불법촬영물이 공공연히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본의 경우를 비쳐보면, 한국 역시 사실상의 성착취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포르노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보나마나 남성의 시선에 부합하는 포르노가 양산될텐데, 무슨 '인식 개선'이라는게 되겠는가 말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반 '포르노 합법화'를 주장하는 남성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남성은 야동을 보며 성욕을 푼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한다. 남성의 성욕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욕구인양 여겨지고, '야동'에 환장하는 남성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던 사회가 지금까지 어떤 남성들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의 성욕은 여성의 성욕보다 절실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마구 풀어내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의 성을 실제로 착취해서 만들거나, 혹은 그런 행태를 따라한 영상을 보면서 성욕을 해소한다면, 나는 그러한 욕구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이 성욕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분명한 기준을 세우자면 불법촬영되거나 성착취 구조에서 만들어진, '피해자'가 있는 영상은 절대로 공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강력하게 제재하고 차단하고 엄벌을 해야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뒤따르는 교육이나 사회적 움직임도 수반되어야 하겠고, 남성들의 엄청난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n번방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되는 지금 남성문화의 '청산'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뿌리를 잘라내지 못해서 다른 방식의 디지털 성착취를 방조하는 격이 된다.


불법촬영 영상과 수많은 포르노가 없어진 자리에서 남성들이 무엇을 만들고 소비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가정을 해보더라도 지금처럼 '성욕 해소'를 이유로 여성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며, 무수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상황보다 더 나빠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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