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말'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합니까?
허지웅씨의 글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씁니다. 25일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n번방 사건'이 '증오범죄'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넷상의 '젠더갈등'을 통해 여성을 대리경험한 세대가 가지는 증오범죄"라고요.
이 지적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기성세대 남성들을 'n번방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이 문제를 특정 세대의 남성 문제로 단순화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n번상 사건'은 소라넷, 불법촬영, 버닝썬 등의 사건 등 한국 남성들이 만들어온 '강간문화'의 한 유형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본질적으로 여성을 성적도구화한 남성문화가 변화하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는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허지웅씨는 이것을 '남성'이 아니라 '세대'의 문제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지적은 명백하게 잘못됐습니다. 'n번방'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사건이 일어났을뿐, 남성들은 계속해서 성착취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더 문제적인 것은 '젠더갈등'이라는 말입니다. 일단 ‘젠더갈등'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의 반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젠더갈등'이라는 말은 굉장히 중립적인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백래시' 현상이나 다름 없급니다. 그렇다면 원인을 (최근의) '젠더갈등'에 놓는다는 것은 결국 남성을 '이해해주는' 분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남자들이 그럴만하다'는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젠더갈등'이 비교적 덜했던 그 시기, 불법촬영물들을 보고 커뮤니티에서 낄낄대던 남자들도 '복수심'에서 그랬던 건가요?
이어서 "치유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겁니다(...)남녀갈등을 부추기는 남성의 말들과 여성의 말들을 지켜보며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는 말에서 저는 여성이 아님에도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치유합니까? 젠더갈등을? 이것은 허지웅씨가 아래에 쓴 '사이좋게 지냅시다 따위'의 말입니다. 젠더갈등의 주요한 해결책은, 남성들이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성평등적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또 일부 남성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이좋게 지냅시다'고 말하는 이들이 오히려 젠더갈등을 키우고 있는것이고요. 약 26만명이 텔레그램 단톡방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젠더갈등의 치유'가 해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치유'라는 말은 오로지 피해자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대해 언급할때만 쓰여야 합니다.
그리고 허지웅씨는 n번방 사건을 '증오범죄'라고 앞서 지적했는데, 뒤에는 마치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남성의 말들과 여성의 말'이 그 증오를 확대시키는것처럼 말합니다. 현 n번방 사건에 ‘여성들, 특히 페미니스트의 책임도 있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제가 너무 글을 곡해하는 것일까요?
젠더갈등으로 인한 증오범죄라는 분석이 일단 틀렸고, 그러니까 졸지에 'n번방 사건'의 원인을 '여성들의 말'에서 찾게 되는 일까지 벌어진겁니다. 허지웅씨는 다른 글에선“성착취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괴롭고요. 이건 단지 성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인성교육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완전한 대실패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려고 해당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n번방 사건'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해법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티 페미니스트들에게 하나의 ‘레퍼런스'를 줄 뿐입니다. 부디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이라도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여주시길 당부드립니다.